요즘처럼 내가 이렇게 작고 초라해 보인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새로 대통령이 된 문재인 때문이다. 그가 대통령이어서도 특별히 잘나서도 아니다. 그는 당선이 확실시되자 먼저 광화문 광장으로 달려가 군중과 함께 했다. 대통령이 되어 처음 청와대로 가던 날엔 홍은동 자택 앞에서 대선 과정에 자신을 경호했던 경호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배웅 나온 주민들과도 한 사람 한 사람 악수를 나누었다. 그러며 스스럼없이 셀카도 찍었다. 그 후로 대통령의 국민들과 찍는 셀카는 통상적인 것처럼 되었다.
5.18 기념식에서도 그는 별났다. 80년 5월 8일 바로 그날, 광주에서 태어난 김소형 씨의 타지에서 일하던 스물아홉 살 젊은 아버지는 기다리던 딸의 출생 전화를 받고 한밤중에 광주로 달려갔다가 계엄군의 총탄으로 희생되었다. 그런 그녀의 사부곡(思父曲)에 기념식 참석자들은 울었다. 문 대통령도 울었다. 그리고 그는 말을 마치고 단에서 내려온 그녀의 뒤를 따라가 꼬옥 안아 주었다. 그녀는 말했다. “아빠가 안아 주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별난 일은 또 있었다. 기념식을 마치고 대통령이 탄 차가 식장을 빠져 나가는데, 뒤에서 119 구급차가 왔다. 대통령 차와 경호 차량들이 도로변으로 비켜서고 경호원들이 바삐 움직이며 길을 터 주어 구급차는 달려 나갈 수 있었다. 그 차에는 기념식에 참석했다가 호흡 곤란을 일으켜 쓰러진 50대 남성이 타고 있었다.
별난 사람은 또 있다. 그의 아내 김정숙 씨이다. 영부인을 보고 누구누구 씨라니 무슨 망발이냐 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영부인’이라 하지 말고 ‘여사’라는 호칭으로 불러 달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도 부르기가 싫다. ‘친절한 정숙 씨’ ‘유쾌한 정숙 씨’의 ‘정숙 씨’라 부르는 것이 더 좋다.
허름한 조끼에 슬리퍼 차림으로 집 앞에 나온 정숙 씨는 배고프다는 민원인을 나면이라도 드시고 가라며 데리고 들어가는가 하면, 청와대로 이사를 갈 때는 여염 아줌마들이 평상시에 편히 입음직한 옷차림으로 직접 가방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그녀는 어디를 가나 평범하고 마음씨 좋은 동네 아줌마였다.
별나기는 문 대통령의 측근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가 당선되자 그의 복심이라는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은 “제 역할을 딱 여기까지”라며 “비워야 채워지고, 곁을 내줘야 새사람이 오는 세상 이치에 순응하고자 한다”는 말을 남기고 장기체류 목적으로 뉴질랜드로 떠났다. 또 한 사람의 최측근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도 “정권교체는 이루어졌고 제가 할 일을 다 한듯합니다. (중략) 저의 자유를 위해 먼 길을 떠납니다”며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스승의 날에는 비서진을 통해 고교시절의 은사 이희문 선생님께 전화를 시도했으나 거부당해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했다. 그러나 은사님은 “공무에 바쁜 대통령이 왜 전화를 하느냐”며 나무라셨다. 그 제자에 그 스승 아닌가.
이러한 대통령을 보는 국민들은 행복해 한다. 그러나 다는 아니다. 쇼가 아니냐며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딴은 맞는 말이다.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이 세상사인데, 앞으로 어찌 될지 누군들 알겠는가. 그러나 다대수의 국민들은 그런 대통령을 보며 앞으로는 좀 더 나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인간은 누구도 천사일 수 없다. 누구에게나 험과 티가 있으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그 정도의 차가 너무 커 자신이 너무 작고 초라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렇게 기분이 좋으니 어쩌랴. 바보 노무현처럼 “야, 기분 좋다!” 하고 외치고 싶다.
임종석 seok9448@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