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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표정

기사승인 2017.09.09  00: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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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신경학 전문의 올리버 색스(Oliver Sacks)는 신경과 뇌의 장애가 일으키는 신기한 증상들을 자신이 겪었던 병례를 중심으로 소개하는 여러 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의학계의 계관 시인’이라 불릴 만큼 문학적 소양이 뛰어난 의사였던 그의 책은 늘 베스트셀러에 오르곤 했는데, 그의 유명세는 단순히 그가 소개한 신기한 증상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모든 저서들은 환자들에 대한 그의 애정, 끝내 회복이 불가능하더라도 환자들의 삶 속에서 존엄을 지켜주려는 그의 숭고한 노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의 저서들이 지닌 이러한 특징은 독자들을 인간 본질에 대한 성찰로 이끌었고, 그와 그의 저서들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 중 <깨어남>(Awakenings)은 로버트 드 니로와 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사랑의 기적>(Awakenings)이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뭐니 뭐니 해도 그가 경험한 여러 병례들을 모아 놓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꼽을 수 있는데 그 중에 나오는 ‘대통령의 연설’은 언어상실증 환자들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를 담고 있다. 그것은 언어상실증 환자들이 병동에서 배우출신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단체로 시청하고 있었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대통령은 배우출신답게 빼어난 화술과 수려한 매너로 감동적인 연설을 선사했다. 그런데 그 연설을 들은 언어상실증 환자들은 거의 대부분 폭소를 터뜨렸던 것이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언어능력을 상실한 환자는 그 반대급부로 어투, 화자의 표정, 말의 빠르기, 말의 리듬과 멜로디, 억양과 음조를 파악하는 능력이 더욱 발달하게 된다. 쉽게 설명하자면, 전혀 모르는 외국어라도 대충 눈치로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언어상실증 환자들의 경우는 이때 그 ‘눈치’가 고도로 발달한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올리버 색스는 언어상실증 환자들이 화자의 표정이나 몸짓, 태도에 나타나는 거짓과 부자연스러움을 일반인과 비교할 때 더욱 민감하고 정확하게 파악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이 환자들은 일반인들이 감동을 받았던 대통령의 연설에서 단어와 문법구조가 완전히 배제된 다른 요소들만을 통하여 대통령의 말이 우스꽝스러운 거짓말이라는 것을 간파했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기에 그들은 더욱 말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말은 의미보다 표정이 중요할 때가 더 많다. 들리는 말은 표정이 있지만 쓰인 글은 표정이 없다. 그리하여 문자는 언제나 말보다 더 큰 오해를 실어 나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말의 뜻과 더불어 말이 지닌 표정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성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주로 의미에 치중해서 성경을 읽고 해석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말의 의미보다 표정이 아닐까? 이것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는 아마도 예수께서 검을 사라고 하신 명령에 보인 제자들의 반응과 이에 대한 주님의 대답을 들 수 있을 것이다.(눅 22:35-38) 검을 사라는 주님의 비유적 말씀에 제자들은 실제로 검을 두 자루 꺼내며 말했다. “여기 검 두 자루가 있습니다.” 이를 보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족하다.” 이 족하다는 말이 칼이 두 자루니 우린 충분해,라는 뜻일 리가 없다. 어쩌면 이 말은 제자들의 몰이해에 대한 주님의 실망과 넋두리 같은 말일 것이다. “됐다.”, “그만 하자.”에 가까운. 다행히도 말씀은 육신이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이 짓는 표정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축복을 얻었다. 그러니 말씀의 뜻을 넘어 이제는 그 표정에도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보자. 말씀의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이진경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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