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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이르기 전에 반드시 선택할 일

기사승인 2017.09.09  19: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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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하게 죽을 권리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미국 병원에서 채플린 인턴들이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환자들의 사전의료의향서(Advance Health Directives) 작성 시에 증인이 되는 것이다. 증인은 반드시 직계가족이 아닌 두 명의 제 삼자가 있어야 하는데, 병원의 다른 의료진들은 법적으로 증인이 될 수가 없다. 오직 채플린만이 그 역할을 할 수 있기에, 종종 증인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가 있었다. 이는 환자 의식을 잃게 되고, 더 이상의 치료가 생명을 연장하는 데에 효과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무의미한 연명의료 거부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다.

보통 환자들은 중대한 수술을 앞두고 있을 때 이를 작성하거나, 병세가 악화되어갈 때 가족들과 의논하여 이를 작성하기도 한다. 몇 번 기도해 주기 위해 방문했던 한 흑인 환자가 있었다. 그 환자가 내게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 환자에게 하나하나 설명해 주며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을 도와주었다. 그의 딸에게 전화하여 대리결정권자로 세우고, 드디어 연명치료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결정하는 부분에 이르렀다. 환자는 어떻게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사전의료지향서 작성을 포기하였다. 오랫동안 생각해 오지 않았다면 쉽게 작성하기 힘든 부분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더 이상의 치료가 생명연장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할 때는 연명치료중단이나 호흡기제거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심폐소생술을 거부하는 환자들의 차트에는 DNR(Do Not Resuscitate) 라벨이 붙게 되며, 호흡에 이상이 생겨도 코드블루(긴박한 상황에서 심폐소생이 필요한 경우 부르는 코드)를 부르지 않는다. 즉, 그냥 편안히 죽게 내버려 달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이기도 하다.

나는 인간의 존엄하게 죽을 권리(Right to die with dignity)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이 권리가 지켜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해보아야 한다. 본인의 의식이 분명히 살아있을 때, 자신이 어떻게 죽고 싶은지에 대해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이것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존엄사의 법제화

 

우리나라에서 존엄사에 대한 논의의 시발점은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12월 4일, 한 환자가 보라매병원 중환자실에 후송되었고, 환자의 심각한 상태를 감지한 의료진들은 보호자의 동의 없이 바로 수술을 실시하였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이 나고 환자의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화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날 환자의 보호자가 찾아와서 경제적인 이유를 대며 환자를 퇴원시키고자 하였다. 의사들은 퇴원 시 발생할 문제를 지적하며 보호자의 요구를 거부했지만, 결국 보호자에게 책임소재에 대한 각서를 작성하게 하고 퇴원시킨다. 환자는 퇴원 후 산소호흡기를 떼고 사망하게 된다. 결국, 이 사건으로 담당 전문의와 전공의는 살인죄의 종범으로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후 거의 모든 병원에서는 소생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퇴원을 거부하게 되고 존엄사에 대한 논란이 시작되었다.

그 후,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9년 법원이 처음으로 존엄사를 인정하면서이다. 이것은 ‘김할머니 사건’으로 유명하며, 당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할머니의 호흡기를 제거할 것이냐가 쟁점이되었다. 가족들은 김할머니의 평소 뜻에 따라 인공호흡기 제거와 무의미한 치료 중단을 요구했지만 병원이 이를 거부하면서 소송으로 번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에서는 김할머니의 존엄사를 인정하였다. 당시 김할머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지는 않았지만, 평소에 품위 있는 죽음을 원했던 할머니의 뜻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 사건은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결정이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에 부합되기에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하겠다.

이 사건에서 환자의 평소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법적 문서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환자의 의사를 확인한 것일까? 그것은 추정적 의사에 의해서이다. 환자의 평소 가치관이나 신념 등에 비추어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환자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되며, 환자가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연명치료 중단을 선택했으리라고 추정한 것이다. 환자가 평소 일상생활 중에 가족이나 친구에게 말한 내용, 평소의 생활 태도, 환자의 종교, 환자가 타인의 치료를 보고 보인 반응 등 이러한 내용을 종합하여 현재의 신체 상태에서 의학적으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는 경우 연명치료중단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렇게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추정적 의사만으로 호흡기를 떼는 것은 혹시라도 환자의 의사와는 다르게 악용될 수 있는 확률도 크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법적 문서인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에 대한 논의가 김할머니 사건 이후에 시작이 된 것이다.

 

법률의 제정

 

2016년 1월 8일 국회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을 의결하고, 정부는 2월 3일 이를 공포하였다. 이로써 1997년 서울 보라매병원 사건과 이에 대한 법원의 판결로 촉발된 연명의료에 관한 논의가 종결되어 무의미한 연명의료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고,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법률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를 통해 무의미한 연명의료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의 고통을 경감시키고,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만 19세 이상의 성인에게 이러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주는 하나의 법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법률의 의결과 공포 이후, 담당 정부 부처에서는 세부세칙 마련을 위해서 일 년 간의 노력을 거쳐서 2017년 3월 31일에 세부세칙 발표와 공청회를 가졌다. 보건복지부에서는 공청회에서 나온 여러 가지 의견들을 취합하여 드디어 2017년 8월 4일에 법률시행에 들어갔다. 먼저는 호스피스에 관련한 법률이 시행이 된 것이고, 2018년 2월 4일에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게 된다. 이에, 법적인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양식이 발표되었고,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으로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이 선정이 되었으며, 등록기관 신청을 앞두고 있다.

사실, 이 법은 크게 두 가지의 법이 하나로 합해진 것이다. ‘호스피스완화의료법’과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이다. 먼저, ‘호스피스’관련한 법에서 대상 질환은 기존 암관리법에서 제시하는 말기환자 외에 비암성 질환인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선 간경화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로 확대되었다. 또한 호스피스 서비스의 지원도 기존의 입원형 병동에서 자문형과 가정형으로까지 확대하였고, 호스피스 서비스 제공기관으로 요양병원까지 인정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환자가 생명연장의 가능성이 전혀 없고, 급속도로 죽음에 임박한 상태(임종기)에 이르게 되었을 때 시행 가능한 네 가지의 불필요한 연명의료(항암제 투여, 혈액투석,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착용)의 시행여부를 자신이 스스로 미리 결정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 결정을 도울 수 있는 것이 바로 19세 이상의 성인이 누구나 작성 할 수 있는 법적인 문서인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한 오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법제화되는 과정에서 어려운 문제들 중 하나는 종교계의 반발이었다고 한다. 즉, 하나님이 주신 살아있는 생명을 인간의 결정으로 끊을 수 없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두 가지 차원에서의 오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법에 대한 오해이다. 법에 명시하고 있는 연명의료의 중단은 임종기 환자에 국한하고 있고, 연명의료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법은 최소한의 규정만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임종기는 담당의사와 전문의 1인의 소견으로 판정되는 데, 대부분의 경우 임종기는 판별하기가 어렵지 않다는 것이 의사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종교계에서는 의사라 할지라도 인간의 판단에는 한계가 있고, 신비적이거나 영적인 영역에서 봤을 때 기적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하기에 실낱같은 생명이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하기도 한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다. 생명의 소생의 기운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살려야 하는 것이 맞다. 또한, 김할머니 사건에서 보듯이, 분명 의료진은 호흡기를 떼면 김할머니가 곧 돌아가실 것으로 판단했지만, 할머니는 호흡기를 뗀 이후에도 6개월 이상을 살다 돌아가셨다. 의학이 인간의 생명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법의 취지이다. 이 법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죽음에 임박하여 자신의 의사를 표현 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을 때를 대비하여, 미리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 두자는 것이다.

둘째는 존엄사와 안락사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 오해라고 생각한다. 존엄사는 소생이나 생명연장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하거나 인공호흡기를 떼어 환자가 더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을 겪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반면 안락사는 생명연장의 가능성과는 무관하게 의학적 조치나 음식물 투여를 중단하거나 인위적인 생명연장 장치를 제거하는 소극적 안락사와 약물투여로 직접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가 있다.

 

존엄하게 살 권리, 죽을 권리

 

나는 이러한 소극적, 적극적인 안락사가 인간에게 주어진 존엄하게 죽을 권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배워간다. 우리에게 처해진 고난과 고통의 삶을 통해서도 우리는 삶의 목적이나 가치, 사랑과 행복, 감사와 소망에 대해 배우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죽음과 죽어감 또한 우리에게는 배움의 장이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은 성장의 마지막 단계라고 이야기하였다. 죽음은 죽어가는 환자에게뿐 아니라 그를 돌보는 가족들에게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삶의 귀한 가치와 의미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 그렇게 함께 겪어 나아가며 배워야할 시간들을 ‘이만하면 됐다’는 본인의 판단으로 쉽게 죽는 것을 택한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생명의 원리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믿는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게 살 권리가 있다. 또한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 그것은 아무리 죽어가는 환자라도 인격적인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권리 뿐 아니라, 말기환자가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호스피스에서 생을 마감하기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이며, 심폐소생술로 평안히 죽어갈 권리를 침해받지 않겠다는 것이며, 뇌와 심장의 기능이 이미 멈춘 상태에서 숨만 붙어 있도록 만드는 인위적인 장치를 거부할 권리이다. 물론 이와 반대의 결정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이러한 결정을 한다면, 이도 분명 존중해 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결정들이 존중받게 되려면, 살아있는 동안에 본인의 의사를 분명히 명시해야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죽을 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편안하게 가족에게 둘러싸여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고, 가족에게 부담을 적게 주면서 떠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이별을 맞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는 미리 죽음을 준비해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의 의사(意思)가 불분명한 경우에 의료진은 현존하는 의학기술을 동원하여 생명을 연장해야 한다는 윤리적인 압박을 받게 되어 인위적인 생명의 연장을 도모하게 된다. 환자가 급속한 임종단계에 이르게 되었을 때조차, 환자 자신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인위적인 생명 연장 장치에 의존하여 존엄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생명을 마감할 수 있다.

나는 어떻게 죽어가고 싶은가? 나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보는 것은 어떨까?

 

   
▲ 윤득형 목사 : 목회상담학 박사, 슬픔치유 상담가, 죽음교육 전문가

 

각당복지재단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실

 

각당복지재단 소속 웰다잉전문강사들로 이루어진 전문상담봉사팀이 매일 10시-5시까지 전화상담을 통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법을 설명하고, 양식과 매뉴얼, 그리고 보관증을 배포하고 있습니다. 교회나 복지관에서 이와 관련된 강의나 양식이 필요하신 경우 전문강사를 파견해 드립니다.

장소: 각당복지재단 회관 2층(서울시 종로구 경희궁 1길 29)

전화: 070-7166-5592~3(상담실) 02-736-1928(대표전화)

 

   
 
   
 

 

   
 

 

   
 

 

윤득형 yoonm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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