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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의 꿈, 그리고 예수

기사승인 2017.09.14  0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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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가게 되면 마지막 날이 가까울수록 기념품이나 선물을 생각하느라 고민이 쌓여갑니다. 여행의 대미를 정신 사나운 쇼핑으로 장식하는 느낌이 들어 아쉽기도 하거나와 그렇게 사온 선물들도 대부분 쉽게 잊히곤 하지요. 그래도 작년에 스페인의 마을 라만차(La Mancha) 근처의 휴게소에서 구입한 장식용 접시는 저의 애장품이 되었지요. 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주고 산 그 작은 접시에는 하늘을 찌르는 긴 창을 한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먼 곳을 가리키며 말을 타고 가는 돈키호테와 그를 따르는 산초가 새겨져 있습니다. 돈키호테가 타고 있는 명마 로시난테는 늙어서인지 힘들어서인지 아니면 주인의 연이은 기행에 체념을 해서인지 몰라도 고개를 푹 숙이고 있고, 산초는 그의 몸무게 때문에 더욱 힘들어 보이는 당나귀를 타고 뒤따르고 있습니다.

 스페인 여행 중에 숙박하는 곳이 바뀔 때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가방에서 그 접시를 꺼내어 호텔 방 테이블에 세워 놓는 일이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가장먼저 그 접시를 꺼냈습니다. 그 접시는 지금 저희 집 거실, 그러니까 지금 제가 보고 있는 노트북 화면 너머의 책장 위에 놓여 있습니다.

 여행을 가게 되면 그 지역과 연관된 시나 소설을 한 권 들고 가는 버릇이 있습니다. 나가사키를 방문했을 때는 엔도 슈샤쿠의 ‘침묵’을 가방에 넣었고 스페인 여행을 가기 전에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도서관에서 빌렸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 책이 그렇게 두껍고 어려울 줄은 몰랐습니다. 어릴 적 즐겨 보았던 만화영화를 생각하며 어른을 위한 동화책 정도로만 생각했었지요. 아직도 그 만화영화의 주제곡이 생생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 노래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만화 주제곡에도 낭만이 깃들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돈키호테 돈키호테
아침햇살 빛난다 패기에 찬 기사여!
달려라 돈키호테 정의의 기사여!
실패와 모험은 성공의 비결
인정 많은 마을에 하룻밤 쉬어갈까
돈키호테 돈키호테!
달려라 달려 돈키호테!
정의의 기사 돈키호테!

 시대의 흐름에 뒤쳐진 한 미치광이 노인에 관한 유쾌한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는데 스페인에서 새롭게 만난 돈키호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 접시를 바라보며 돈키호테를 생각하면 나도 몰래 눈물이 고이고 마음이 벅차오릅니다. 세르반테스는 비정상적인 것들이 정상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이 세상을 돈키호테의 눈을 빌려서 바라보았고 미치광이의 특권을 빌어 그런 세상을 비판했던 것이었지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돈키호테의 이야기로 ‘불가능한 꿈/The Impossible Dream'이라는 노래로 유명합니다. 그 노래는 다음과 같은 대사로 시작합니다.

 Es la misión del verdadero caballero. Su deber. No!, su deber no. Su privilegio./그것은 진정한 기사의 임무이자 의무. 아니!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노라.

 돈키호테를 새롭게 만나게 되자 이상하게도 예수님이 오버랩 되듯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기사’라는 말 대신에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을 넣어 보았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의 임무이자 의무, 아니!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노라.’라고 말입니다. 이 대사에 이어지는 노래도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과 너무나 자연스레 어우러졌습니다.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Soñar lo imposible soñar.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
Vencer al invicto rival,
무적의 적수를 이기며,
Sufrir el dolor insufrible,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고,
Morir por un noble ideal.
고귀한 이상을 위해 죽는 것.
Saber enmendar el error,
잘못을 고칠 줄 알며,
Amar con pureza y bondad.
순수함과 선의로 사랑하는 것.
Querer, en un sueño imposible,
불가능한 꿈속에서 사랑에 빠지고,
Con fe, una estrella alcanzar.
믿음을 갖고, 별에 닿는 것.


 마지막 가사 ‘Con fe, una estrella alcanzar/믿음을 갖고, 별에 닿는 것’이 마음에 사무칩니다. 마음이 꿈을 통해 별과 닿아 있는 사람, 믿음으로 그 꿈을 끝까지 품어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예수였고, 우리가 닮아야 할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요?

 노래 좀 한다는 사람들은 저마다 멋들어지게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플라시도 도밍고, 브라이언 터펠, 프랭크 시나트라, 엘비스 프레슬리, 그리고 조승우.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1972년 영화 속의 피터 오툴의 연기와 노래가 가장 돈키호테답습니다. 그의 노래와 발성은 많이 어설픕니다. 분장도 어설프고 우습지요. 하지만 그의 눈빛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눈빛만으로 최고의 노래를 들려줍니다. 그렇습니다. 꿈꾸는 사람과 닿아 있던 그 별은 어느 새 그의 눈 속에 자리해서 반짝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참고로, 그 눈빛이 영화사상 가장 아름답게 푸르렀던 눈빛, 바로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눈빛이었다는 것을 아신다면 많이들 놀라실 것 같습니다.

 글을 마치기 전, 노트북 화면 너머의 파란 접시를 다시금 쳐다봅니다. 여전히 감동적이고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돈키호테의 꿈, 아니 예수의 꿈과 내가 함께 하고 있다니 말입니다. 세르반테스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이 땅의 교회는 여전히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어 보입니다. 그가 죽은 지 40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대부분의 교회들은 돈과 성장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높아지기에 급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땅 어딘가에는 갑옷을 차려 입은 돈키호테의 후예들이 불가능한 꿈을 눈빛에 머금고 여행을 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저는 오후 내내 낮은자리 교회에 넘친 하숫물을 퍼내었습니다. 그리고 두 분의 교인들과 수요예배를 드렸습니다.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는 로마서 13장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설교와 교제 가운데 그분들과 예수의 꿈을 소소하게 나누었습니다. 왜 아까 설교할 때에는 빛의 갑옷과 돈키호테의 갑옷을 연결하지 못했는지 아쉽기만 합니다. 그래도 오늘도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현실이 어두울수록 이상의 별은 더욱 빛나는 법이니까요.

 

 

*음악듣기 : 피터 오툴과 소피아 로렌의 ‘The Impossible Dream'

https://youtu.be/RfHnzYEHAow

 

조진호 jino-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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