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나가자' 부대와 '안나가' 부대

기사승인 2017.12.01  00:12:45

공유
default_news_ad1
article_right_top

한국의 역사상 요즘처럼 누가 ‘구속 되었네. ‘불구속 되었네’하는 일로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때가 없었을 것이다. 특별히 구속을 놓고 전국민이 왕년의 검찰 실세 우家와 현재 검찰의 게임을 스포츠 중계를 보듯 관심을 넘어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그런가 하면 마땅히 구속이 되어야 할 사람이 불구속이 되면 마치 축구경기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공이 실수해서(?) No Goal이 되어버린 것처럼 아쉬워 하기도 한다. 지금 나라의 앞날이 걸려 있는 적폐대전에서 몇 번의 No Goal이 벌어져 국민들의 상심이 적지 않다. 이것은 아직도 적폐팀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불길한 징조이기 때문이다.

호주의 일일 관광 코스 중에서 옛날 감옥에서 죄수 번호표를 들고 상반신 기념 사진을 찍는 행사가 있다. 페이스북에 친밀한 지인 하나가 죄수 번호표를 들고 웃으며 찍은 사진을 올렸기에  “죄수가 뻔뻔하네”라고 농담으로 댓글을 달았다. 그랬더니 재치 있게 “죄목이 ‘떳떳한 죄’이거든요.”라고 답글을 달았다. 답글을 본 순간 웃음과 동시에 생각나는 인물이 있었다.

1953년 생 김병곤은 71년 서울대에 입학하여 한사회(한국사회연구회)라는 70년대와 80년대를 학생운동역사의 대표적인 서클(동아리)지도자로 치열한 삶을 시작했다. 74년 민청학련 사건의 주동자로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최후진술의 첫 마디에서 “영광입니다!”라고 했다. 옆자리에서 같이 사형선고를 받았던 김지하도 그 이야기에 깜짝 놀라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의 뜻은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나에게 사형이라는 큰 선물을 주어서 영광입니다”라는 말이었다. 박정희 유신정권 아래서 애초부터 애들 장난 같은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87년 교도소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 석방되어 2년 동안의 투병 끝에 ‘90년 12월 7일,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실상은 세상의 모든 죄는 ‘떳떳한 죄’가 아니라 ‘부끄러운 죄’이다. 그러나 ‘부끄러움’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지 않음’일 때도 있다.

20 여 년 전 어느 날 부천의 역곡역에서 비교적 한산한 낮 시간이었는데 플랫폼에서 앞에서 걸어오던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갑자기 우뚝 서더니 놀란 듯이 “지 목사님 아니십니까?”하고 물었다. 그는 목회를 하면서 대학원에 다니는 목사같아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누구인지 잘 기억나지를 않아서 자신이 없게 “그런데요?”하니까 그 친구는 내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내가 어떻게 지 목사님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살았었지?”하고 혼잣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와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신학생 때 나를 알았는데 졸업 후에 평범한 목회를 하면서 완전히 잊었었다며 나를 보자 시대를 고민하던 자신의 학생 때가 떠오른 것이었다.

또 한 번은 페이스 북에서 아는 후배님이 있기에 친구 신청을 했더니 “부끄럽게 살고 있습니다.”라는 아주 인상적인 답글을 보내왔다.

페이스 북에서 만난 후배나 전철역에서 만난 후배가 왜 부끄러움을 느꼈을까? 내가 그들을 부끄럽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떳떳한 것인지 알 수 있는 사람만이 부끄러움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부끄러움이 너무 많은 사람이어서 어디에 나서기가 두렵다.

그런데 요즘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동네가 ‘자유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수저론’은 한국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것이다. 나는 흙수저도 아닌 무수저였다. 고등학교까지는 어찌어찌 하여 억지로 마칠 수가 있었지만 대학은 도저히 다닐 형편이 못되어 야간대학을 갔었고 그나마 도중하차하게 되어 더 돈이 들지 않는 신학대학을 가서 10 년이나 걸려서 겨우 졸업을 했다. 정상적으로 대학을 졸업했다면 아마도 나는 목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목사가 되어 빈민운동을 하게 되어서 내 아이들도 나와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서 호주로 오기로 마음을 먹었고 덕분에 아이들은 무난히 하고 싶은 만큼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사회나 수저의 차이는 있을 수 밖에 없지만 한국처럼 역사가 깊은 나라가 태어날 때 쥐어진 숫가락으로 삶이 결정된다는 것은 분노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늘이 도와서”라고 밖에는 표현할 말이 없는 사건들 덕분에 오랫동안 왜곡되고 뒤틀린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움직임이 꿈틀거리는 이 때에 반동의 물결이 밀려 오고 있다.

인류역사에는 언제나 낡은 세계를 고수하려는 세력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세력과의 갈등과 긴장이 존재했다.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구세력의 방해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하자고 했을 때 끝까지 반대 했던 세력은 이집트 사람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인 패장이라고 부리던 현장 공사 감독들이었다. 이처럼 역사는 항상 '나가자' 부대와  '안나가'부대의 세력 갈등 속에 처해있다. 2차 대전 때 유대인들이 강제수용소에서 해방 될 때 해방을 두려워했던 사람들도 카포라고 했던 유대인 간수보조원들이었다. 유명한 불란서 대혁명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안나가’부대인 앙시앙 레짐(구체제)에 끌려가면서 몇 번씩이나 뒷걸음질 쳤었다.

지금 한국 사회의 ‘안나가’ 부대는 보수언론을 나팔수로 해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다. 이들의 절박한 몸부림으로 역사는 또 얼만큼 뒷걸음질 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된다. 그렇게 된다면 무수저나 흙수저들의 고통과 한탄은 그만큼 깊어질 것이다.

구약에는 예언자 전통과 제사장 전통의 2 가지 전통이 있다. 예언자 전통은 언제나 바른 소리를 하다가 코피가 터지는 것이고 제사장 전통은 현실을 인정해서 배를 불리는 편이다. 원래 예언이라는 것은 앞 일을 내다 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었다.

현실 교회는 대부분 예언자 전통이 아닌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 전통에 서있을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곳에는 재물이라는 떡고물이 있기 때문이다. 보수 기독교계가 온 국민이 찬성하는 종교계 세금 부과 반대에 왜 그렇게 목을 메었던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보다 재물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 아닌가?

 

지성수 sydneytaxi@hanmail.net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