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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기사승인 2017.12.03  15: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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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고전1:4-9
(2017/12/3, 대림절 제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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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여러분의 일로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면에 풍족하게 되었습니다. 곧 언변과 온갖 지식이 늘었습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서 이렇게도 튼튼하게 자리잡았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은사에도 부족한 것이 없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날에 여러분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있도록, 주님께서 여러분을 끝까지 튼튼히 세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가지게 하여 주셨습니다.]

•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나?
주님의 은총과 평강이 우리 가운데 임하기를 빕니다. 교회력의 첫 주간인 대림절을 맞이했습니다. 기다릴 대待, 임할 임臨, 마디 절節로 형성된 대림절은 말 그대로 우리 가운데 임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영어로는 Advent라고 하는 데 그 단어는 ‘오심, 도착’을 뜻하는 라틴어 adventus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큰 힘을 가진 이의 도착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가 오면 불의한 것을 바로잡고, 사람들을 괴롭히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줄 거라고 믿어지는 분을 기다리는 것은 대개 세상에서 짓밟힌 이들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즐겨듣던 이야기 가운데 ‘암행어사 박문수‘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관리들의 가렴주구에 시달리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감정이입이 되어 마음 졸이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모순이 극대화되어 가는 순간, 어린 우리는 아버지의 입에서 터져 나올 한 외침을 기다리며 숨을 죽였습니다. “암행어사 출두요”. 이 한 마디를 들으면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불의한 자들이 징치되고 정의가 바로 서게 되었습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 세상의 불의가 한 순간에 해소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점점 깨달았습니다만, 그때 느꼈던 해방감만큼은 잊을 수 없습니다. 세상이 너무 어수선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내다보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신약성경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계시를 증언하시는 분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 내가 곧 가겠다.” 거기에 대해 우리는 마음을 다해 화답합니다.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계22:20) 대림절은 이처럼 옛 세계가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기를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대림절의 풍습 가운데 하나가 가정마다 대림환(advent wreath)를 만드는 것입니다. 대개는 소나무나 전나무 등의 상록수를 사용합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의 상징입니다. 호랑가시나무 혹은 월계수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고통과 박해 속에서도 기어코 승리한다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둥근 원은 시작도 끝도 없는 주님의 영원하심과 주님을 통해 주어지는 영원한 삶을 상징합니다. 솔방울이나 열매는 믿는 이들이 거두는 열매로서의 생명과 부활을 상징합니다. 가족들끼리 모여 대림환을 만들면서 그 뜻을 새기고, 저녁마다 촛불을 밝히며 고난 가운데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림절을 그저 의례적인 절기로만 맞이한다면 삶의 새로움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 바른 기다림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기다려야 할까요? 뭔가 혹은 누군가를 기다려 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기다림에는 기쁨과 설렘도 있지만 조바심과 두려움, 더 나아가 쓸쓸함도 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은 그 장소를 떠날 수도 없습니다. 길이 엇갈리면 안 되니까요. 어떤 의미에서 기다림은 우리에게서 자유를 앗아갑니다. 그런데 그 부자유가 싫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기다림의 대상이 가져올 기쁨과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해 한용운은 ‘복종’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이러해야 합니다. 주님을 마음 깊은 곳에 모실 때 우리 삶이 든든해집니다. 허망한 열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막연한 기다림은 우리 영혼을 파리하게 만듭니다. 가브리엘 마르께스의 소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았다>의 작중인물인 대령은 날마다 항구로 나가서 뭍으로부터 오는 소식을 기다립니다. 그는 15년 동안 군인 연금 수령 대상자가 되었다는 전갈을 기다리지만, 그 기다림은 번번이 실망으로 끝나고 맙니다. 대령은 쓸쓸하게 발걸음을 돌리다가 먹을 것을 찾아 거리를 헤매는 수탉을 보고 혼잣소리처럼 말합니다. “친구, 인생은 쓸쓸한 거라네.”

우리의 기다림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이들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일입니다. 주님이 병든 이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고, 죄인들의 벗이 되신 것은 이 한 가지 목표로 수렴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이들은 생명이 함부로 유린되는 현실에 저항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고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는 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줄기에서 잘린 가지에는 열매가 맺히지 않는 법입니다. 주님과 접속되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생명과 평화라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주님 안에 있는 이들은 모든 것이 풍족하다고 느낍니다. 늘 결핍감에 시달리는 사람의 특색은 인색함입니다. 인색함은 물질만 아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인정하기를 꺼리는 마음도 내포합니다. 주님 안에 있을 때만 인색함이라는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주님을 만날 곳이 어디인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며칠 전 우리 교우 한 사람이 페이스북에 쓴 글을 읽었습니다. 포항에 가려고 기차표를 예매했고, 30분 정도 일찍 서울역에 도착하여 느긋하게 책을 보며 출발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 확인해보니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표였습니다. 불과 8분밖에 남지 않아 결국 그는 그 차를 타지 못했습니다. 저도 똑같은 경험이 있기에 그 심정을 잘 압니다. 엉뚱한 곳에 가서 기다리면 안 됩니다. 주님은 당신이 어디로 오실지 우리에게 힌트를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주님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진정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면 지금 춥고 배고픈 이들에게 마음을 두고 그들 곁에 다가서야 합니다. 이것이 대림과 성탄 시기에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 회복의 시간을 내다보며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어떤 꿈을 품고 살아야 할까요? 한비야 씨는 긴급구호 사역 경험을 기록한 책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서 훗날 주님 앞에 서는 날 단 한 마디의 말을 들으면 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애썼다.’ 소박하지만 도전이 되는 말입니다. 주님의 일을 성심껏 수행한 사람만 꿈꿀 수 있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주님이 나타나실 날에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말이 참 무겁습니다. 게으르고, 자기중심적이고, 욕망에 휘둘리기 일쑤인 우리로서는 언감생심처럼 여겨지는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목표를 이루는 게 불가능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희망의 뿌리가 우리가 아니라 우리를 끝까지 튼튼하게 세워주실 주님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가지게 해주신 신실하신 주님이 우리 희망의 뿌리입니다.

하지만 타성에 젖어 그런 삶의 목표조차 세우지 못하는 게 문제입니다. 대림절은 우리 마음은 물론이고, 각박해진 삶을 돌아볼 것을 요구합니다. 죄와 허물, 이기심과 그릇된 습성의 더께가 앉은 마음, 무정한 마음, 사나운 마음, 인색한 마음을 자꾸만 닦아내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하라는 초대입니다. 신앙 체험을 ‘breakthrough‘ 곧 ‘돌파’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오시는 주님은 이미 익숙해진 우리 삶에 균열을 내고, 우리의 자아와 자기중심성을 깨뜨립니다. 주님을 모신다는 것은 바로 그런 가능성 앞에 서는 일입니다. 어느 때부터인지 도시인들은 웬만하면 자기 집에 다른 이들을 초대하지 않습니다. 자기 사생활을 공개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익숙해진 삶(routine)에 누가 틈입하는 것을 허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말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의 안일한 삶을 돌파하여 우리 삶을 뒤흔드시길 원합니까? 먼저 이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사실 자기의 흉한 마음과 몰골을 바라보는 것도 힘들고, 인정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이 없다면 주님을 기다린다는 말은 허구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대림절은 은총의 시간입니다. 우리 존재를 새롭게 할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울면서라도 우리 마음을 닦아야 합니다. 늦었다고 지레 포기하면 안 됩니다. 함석헌 선생의 시 ‘님이 오신다’는 주님 맞을 준비를 하지 못해 허둥대는 이들을 향해 주님이 주시는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애 이 애 걱정마라,/나도 같이 쓸어주마,/나 위해 쓸자는 그 맘/내가 쓸어 너를 주고,/닦다가 닳아질 네 맘 내 닦아주마.”

은혜입니다. 주님을 모시기 위해 마음을 여십시오. 몸과 마음을 닦으십시오. 골짜기는 메우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하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하십시오(눅3:5). 올해 대림절이 우리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회복의 시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당당뉴스 leewaon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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