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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고?

기사승인 2017.12.05  00: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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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혈통 면에서는 순수한 유대인이고 그는 유대교 중에서도 엄격함을 자랑하는 바리새파의 유대교인이라고 자랑했다. 그리고 그 당시 최고의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다고 말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이 사도 중의 사도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 바울이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고? 그런 듣도 보지도 못한 말을 무슨 근거로 한단 말인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바울이 그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그를 곤경에서 구해준 로마 시민권에 대해서는 자랑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큰 도움이 된 로마 시민권을 왜 자랑하지 않았을까?

실상 로마 시민권은 그가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그는 그의 몸에 가시가 있다고 그의 약점을 언급한 일이 있지만, 로마 시민권은 그런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약점이었다. 그의 로마 시민권이 왜 그렇게 큰 약점일 수 있었는가? 정말 그랬다면, 이 사실이 바울의 삶과 신학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 사도바울 Apostle Paul, 렘브란트, 1633년, 캔버스에 유채, 137 x 112 cm, 빈 미술사 박물관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집품


로마와 유대인

로마가 다른 민족을 지배할 때의 기본 정신은 패자까지도 자신들과 동화하는 데에 있었다. 로마가 동화 정책을 쓴 것은 일차적으로 피정복민들의 반발심을 무마하여 로마의 지배에 순순히 복종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나아가서 로마 제국 전체 시민들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세계의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고 할 만큼 로마가 광대한 식민지를 다스리던 제정 로마 시절에 유대도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로마의 지배를 받던 여러 민족 가운데에 유대민족만이 동화하기를 거부했다. 유대 민족은 그들의 지배자인 로마만이 아니라 어느 다른 민족과의 동화도 거부했다.

니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것은 그들의 종교 때문이었다. 유대교의 십계명에서는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는데, 로마나 다른 이방인들과 동화한다는 것은 바로 그들이 섬기는 다른 신을 인정하고 섬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특히 다신교를 믿는 로마인들은 여러 곳에 신당을 세우고 심지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같은 황제들까지도 신으로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유일신을 섬기는 유대인들은 로마의 동화 정책에 응할 수가 없었다.

로마에서는 동화를 거부하는 유대가 독립국으로 존속하는 조건으로 유대교 제사장들에게 정교일치의 통치방식을 바꾸라고 요구했다. 유대인 출신 헤롯을 왕으로 세우자 그가 완전한 전제군주 체제를 수립하면서 제사장들이 국정에 간섭하지 못했다. 헤롯이 유대 왕국을 삼분하여 세 아들에게 나누어 준 후에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중부에서 유대인들이 제사장들의 신권 통치를 요구하며 들고 일어났다. 그러자 로마는 이 중부 지역을 직할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예루살렘에서는 제사장들이 사법을 맡는 것을 인정해 주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유대법을 따르고, 죄를 지은 경우에도 유대법에 따라 재판을 받았다. 다만 사형 판결이 난 경우에는 로마 황제의 대리인인 유대 주재 장관이 허가해야만 사형을 집행할 수 있었다. 예수가 처형될 때에도 예루살렘 제사장들로 구성된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당시 유대 장관인 본디오 빌라도가 집행을 허락하는 절차를 밟았다.

로마가 제국 안에 사는 이민족을 로마인과 동화시키기 위해서 취한 구체적인 방책은 그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는 것이었다. 로마 시민이 되면 여러 가지 혜택이 있었다. 로마 의회에서 투표할 수 있었고 공직을 맡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로마 시민과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고 그 자녀들은 로마 시민이 되었다. 특히 로마 시민은 고문하거나 채찍질하지 않았고 반역죄가 아니면 사형선고를 받지 않았다. 반역의 혐의가 있으면 로마에서 심리를 받고 사형선고를 받더라도 십자가형은 면했다.

카이사르가 정한 법에 따라서 의사와 교사는 민족에 관계없이 로마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는데, 제정 시대가 진행되면서 이 제도는 로마제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유대인은 우수한 민족이라서 의사와 교사를 많이 배출했지만, 이 특전을 활용한 사람은 놀랄 만큼 적었다. 로마인이 되면 로마법을 지켜야 하고 로마법을 지킨다는 것은 우상에게 절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로마 시민권자가 된다는 것은 우선적으로 종교적으로 배교자였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로마 시민권은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부유한 유대인들 가운데에는 로마 시민으로서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 시민권을 돈을 주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민족 반역자로 취급되었다. 우리는 예수님이 활동하던 때에 세금을 거두어서 로마에 바치는 세리가 죄인으로 취급 받았던 것을 알고 있다. 그 당시에는 어떤 형식으로든지 로마에 동조하는 사람은 민족을 배반한 죄인이었다.


바울의 로마 시민권

바울은 로마 시민이었는데, 그의 시민권은 그가 취득한 것이 아니고 세습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 로마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었다. 바울처럼 세습에 의해서 취득할 수 있었고, 돈을 주고 사는 방법도 있었고, 로마를 위해서 공을 세우면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다. 바울의 경우에는 다소라는 큰 도시의 부자였던 그의 아버지가 시민권을 샀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든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서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는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 어려움을 모면했다. 빌립보의 행정관들이 그를 매질하려고 할 때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밝혀서 그 매질을 면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도 로마 시민이기 때문에 채찍질을 당하지 않았다. 그가 로마로 압송된 것은 로마 시민으로서 황제 카이사르에게 직접 재판을 받겠다고 상소한 것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당시 유대 사회에서 로마 시민권을 가진다는 것은 두 가지 면에서의 배반 행위였다. 먼저 로마의 다신교를 섬기겠다는 서약이기 때문에 여호와 신앙을 버리는 배교 행위였고, 여호와의 선민인 유대 민족을 버리는 민족 반역자였다. 유대 사회에서 로마 시민권자는 신앙과 민족을 버린 이중의 배반자였다. 따라서 로마 시민권을 가진 바울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자신의 유대 혈통을 내세우고 가말리엘의 문하생이라는 것을 자랑했지만, 그가 위급한 경우가 아니면 자신이 로마 시민이라는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면에서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라는 사실을 가능하면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바로 이 약점 때문에 그는 자신의 혈통이나 교육 배경, 그리고 사도로서의 위치를 더욱 내세우지 않았을까?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1:14)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세습에 의해 얻은 로마시민권이 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지나치게” 그리고 열심히 유대교를 믿는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할 때 그도 그 박해에 앞장서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의 “열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바울을 곱게 보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 자신이 그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는 배신자의 아들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매국노 이완용의 아들들에 대한 반감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완용의 아들들은 단지 정치적인 배반자의 아들이었지만, 바울은 종교적이면서 정치적인 이중의 배반자의 아들이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바울에 대해서 우리가 이완용의 아들들에 대해서 갖는 나쁜 감정 이상의 반감을 가졌을 것이다. 따라서 그가 유대교 신앙을 위해서 아무리 열심을 낸다 하더라도, 로마 시민권자로서의 아킬레스건은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었다.

니오노 나나미는 당시에 유대인들 중에 예외적으로 로마 시민권을 획득한 사람들이 일부 있었다고 말하면서 “이런 사람들은 현대의 이스라엘 사람들한테도 배신자로 낙인찍혀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현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조차 로마에 빌붙었던 로마 시민권자들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다면, 바울이 살던 당시에는 그 반감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할 만하다. 나나미는 바울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바울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었을 것이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유대교 지도자들이 그를 한사코 죽이려고 한 표면적 이유는 바울이 이단자 예수를 선전한다는 것이었지만, 그가 로마 시민권자라는 사실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가진 민족 배반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로마 관헌들 앞에서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가 로마 시민임을 밝혀서 로마 관헌들의 보호를 받을 때 유대인들의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면, 바울에 대한 유대교 지도자들의 폭력적이고 집요한 반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40명의 매복자들까지 자원하여 나서서 바울을 죽이려고 했을 것으로 보인다.


마치면서

구약의 신명기 사관에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는 복을 받고 불순종하는 자는 벌을 받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유대인이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한 그는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벌을 면할 수 없는 죄인이었고, 민족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따돌림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독교의 중심에는 예수를 믿으면 아무리 악한 죄라도 용서받는다는 십자가의 복음이 자리하고 있다. 믿기만 하면 어떤 죄라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은 죄인 취급을 받았던 바울에게 매혹적인 복음이었다.

그가 유대교를 버리고 기독교의 사도가 되어 이신칭의 교리를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만하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는 말씀은 바로 바울 자신이 갈구하던 복음이었다.

바울은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약함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죄 사함의 능력을 “크게 기뻐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바울의 기독교인으로서의 삶과 그가 내세운 믿음의 신학을 로마 시민권자라는 그의 아킬레스건과 결부시켜서 생각할 만하다. 바울이 유대교를 버리고 기독교인이 된 것,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고 지방에서 활동한 것, 유대인에게 전도하기보다는 이방인에게 전도한 것, 율법을 비판한 것, 그가 이신칭의를 내세운 것 등은 로마 시민권자인 그를 유대인들이 박대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죄인이 의인으로 인정받는다는 구속의 교리는 기독교 신학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역설이다. 로마 시민권자로서 유대 사회에서 큰 죄인이었던 바울이 사도 중의 사도가 되었으니, 바울은 이 역설을 몸소 실현한 사람이다. 그의 신학은 바로 이 역설 위에 세워졌다.

 

최재석 jschoi@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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