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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직업제에 관한 생각

기사승인 2017.12.08  02: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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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뉴스에 글을 쓰면서 필자의 글에 직업 목사제(생활비를 교회에서 전적 부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의견을 댓글로 제시한 네티즌이 있기도 하여 대안교회를 표방하는 교회의 담임 목사로서 이에 대한 견해를 논해 보아야 할 필요성도 있고 현대 교회에서 전임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점차 비등해 갈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여 한 사람의 의견을 제시해 본다.

이미 작은 교회에서는 교회 여건상 자연스럽게 목회자가 자신의 생활을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 들기도 하고 아니면 목회자 부인이 생활을 위해 생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것은 전임제이지만 교회에서 생활비를 충당하지 못하니 궁여지책으로 일어나는 일이기에 전임제의 틀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성직이 전임 즉 직업이 된 것이 신구약을 통틀어 전통적으로 굳어진 제도였음을 알 수 있다.

구약의 레위지파나, 초대교회의 사도들 중 바울을 제외한 대부분은 직업적 사역이었다.

중세시대는 말 할 것도 없고 한국교회의 역사는 직업적 목사 제도다.

우리나라에서 목사의 직업을 갖는 것은 가난의 상징이 되었던 시절이 대부분이었다.

교회가 기업화 되었다고 비난 받는 지금에야 일부 목사들이 부를 누리고 있어 목사의 직이 가난을 업고 가는 길이라는 것이 사라진 듯하다.

 

목사직을 전임 즉 직업제로 할 것이냐 아니면 바울의 텐트 목회처럼 할 것이냐에 대한 대답을 필자는 직업제 즉 전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을 먼저 밝히고 싶다.

 

다양한 직업군에서 각자 하는 일을 생각해 보면 목사의 직임이 한량해 보이기도 하여서인지 무위도식하는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목사가 교회의 공 예배 설교만 하는 것이 아니지만 설교의 양도 사실 과다한 것임은 사실이다. 부목사가 없는 교회를 기준으로 하여 살펴보면 주일 오전, 오후 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모이지 않거나 한 달에 1회 모이는 교회도 많음) 새벽기도회(6-7회)를 포함하면 설교 횟수가 10회는 족히 된다. 일주일에 10회의 설교가 일 년 내내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배를 시간마다 담당하기 위해서는 규모가 있는 교회가 아닌 다음에는 담임자 한 사람이 다 담당해야 한다.

큰 교회에서는 부교역자가 아니어도 평신도 설교자를 세워 설교를 분담 할 수 있지만 작은 교회는 그러한 형편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실은 작은 교회 일수록 목사는 전임제로 일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설교의 소중함과 그에 따른 설교자의 자격 등은 논외로 하더라도 한 주에 10회 이상 설교가 이루어져야 하는 개체교회에서 목회자가 전임으로 이 일을 감당 할 수 없는 교회는 정상적 예배가 이루어지지 않아 교회의 기능을 잃게 된다는 사실이다.

목회자가 직업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새벽기도회나 수요, 금요 등 저녁기도회가 어려워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직업 중에서 상담적 일들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본다.

정신적 심리적 법리적 의학적 다양한 분야에서 상담과 도움이 펼쳐진다.

목사의 활동 중 상담과 치료, 위문 등 다양한 효과가 이루어지는 심방을 빼 놓을 수 없다.

심방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일이 허다하다.

긴급환자를 비롯 각종 사건사고 마다 목사의 도움이 절실 할 때가 많은 것이다.

특히 수술을 앞둔 환자나 임종을 맞이한 이들에게 목사의 존재는 너무도 중요한 것임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긴급한 상황이 아니어도 타인을 찾아 위로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정신적 여력과 체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목사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이 모든 일들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도움이 꼭 필요한 시점에 함께 하지 못한다면 심방이나 상담은 불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목회자들은 24시간 대기하고 있는 사람과 같은 상황이 되어 있다.

거기에 설교를 위한 독서와 명상 또한 개인의 영성을 위한 기도 등 한 사람의 목회자가 해야 할 내용이 사실 많은 것이다.

목회 활동에 대한 가치를 돈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목회자가 자비량으로 목회를 하기 위해서는 목회 활동의 제한이 너무 많아 정상적 목회가 있을 수 없다. 목회의 가치와 의미로 볼 때 손실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대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딤후 2:3~4).

위 말씀에서 보듯 목사는 일용할 양식을 주님께 맡기고 목회활동에만 전념해야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다. 목사 전임제인 상황에서 작은 교회 교역자가 우선 급하다고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의식주를 책임져 주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난 종종 자립이 되지 않는 교역자들과 이러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주님 바라보고 목회만 하는 것이 목사의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어려운 일이고 배고픈 일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손가락질 당할 일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목사가 가야 할 길이라고 하는 것을 나의 30년 목회를 통하여 고백하고 싶다.

가난을 평생 짊어지고 가는 길이라도 다른데 눈 돌리지 않고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것이다.

목회자에 따라서는 돈을 잘 벌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스스로 가난한 길을 걸어가는 이들이 많이 있다.

필자도 힘든 시절에(물론 지금도 힘들다)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소개 받은 적이 있다. 분명 돈이 될 수 있는 일에 적잖이 흔들렸다. 먹고살기도 힘든 때여서 더욱 고민이 되었지만 거절하며 돌아섰다.

지금도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이러한 고민에 종종 빠질 것이다.

그러나 목사는 가난한 길이다. 배고픈 길이다.

하나님의 부르신 소명에 감사하며 맡기고 길을 가며 때를 따라 채워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대부분 목회자 가정은 목사 한사람 기준으로 목사의 월급을 계산하기에 목사부인도 다른 직업을 갖지 않는 것이 보통이어서 사실 경제적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 직업이다.

공무원 30년 차면 본봉만 약 300만을 받는다. 기타 급여를 제외하고... 그러나 한국 목회자 중 30년 목회 경력자 중 본봉만 300을 받는 이들은 15% 미만도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목회자는 웬만한 교우들보다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이 보통이다.

교회의 운영상 모든 교회에서 목회자는 헌금에 가장 앞장서는 것이 상례이다.

이러한 이야기 까지 쓰면서 현실적 이야기를 해 보았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목회의 길이 배부른 길이 아니고 배고픈 길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오세영 목사

오세영 sumkim070@hanm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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