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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기사승인 2018.01.09  00: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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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방학을 했습니다. 친구가 없는 동네에서 겨울방학과 봄방학  7주 가량을 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1월 첫 주에는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캠프를 신청을 했고 이후 읍내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4일간의 만들기 프로그램을 신청했습니다. 작은아이는 늘 장난감 총을 가지고 “친구 00이를 초대하자”며 졸라댑니다. 큰아이는 엄마와 함께 발도르프 인형 만들기를 해보자고 요청했습니다. 일하러 나가는 저는 일상의 큰 변화가 없지만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남편은 앞으로 두 달간 자기 시간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지난 주 아이들이 4박 5일간 겨울 캠프를 떠나고 난 후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습니다. 1987년 1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에서 이한열 열사의 사망 그리고 6월 10일 민주항쟁까지의 과정을 사실에 기반 하여 만든 영화 ‘1987’을 관람하였습니다. 마치 오랜 옛날에 일어난 어이없는 사건처럼, 혹은 소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끔찍한 스릴러처럼 전개되는 내용이 우리의 현대사에 실재하던 사건이었다는 것이 더 아찔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민주주의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하여 얻게 된 것이라는 사실, 이런 날이 오리라고 꿈 꾼 사람들을 통해서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1987년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큰언니가 중학교 1학년, 작은언니가 초등학교 5학년,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남동생은 5살이었을 때입니다. 제가 사는 세상은 작았고 학교와 선생님, 마을 아이들이 저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텔레비전에서 대통령의 담화가 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 직선제 포스터가 붙고 홍보 문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들은 그저 포스터에 장난 그림을 그리거나 포스터를 다트 삼아 돌을 던지며 ‘그림 맞추기’ 놀이를 할 따름이었습니다. 뉴스를 보시는 아버지가 여당 야당 이야기를 해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청소년 시절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대학에 진학할 때면 아버지는 “대학 가면 데모하지 말라.”고 단단히 이르셨습니다. 제가 대학을 갈 때도 아버지는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현재 저희 아버지와 저의 정당 지지성향은 완전히 다르지만 왠지 ‘1987’ 영화를 보면서 그 당시 아버지가 사시던 세상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87년은 아버지가 42세 이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20대와 30대는 제3공화국부터 제4공화국까지였고 누군가 억울하게 죽었다 해도 그 억울함을 풀 수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니 부모들은 너나없이 자녀들이 대학에 입학하면 데모를 할까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옳고 그름을 생각하기 이 전에 ‘내 자식만은 지켜야 한다.’는 긴박한 마음들을 가질 수 있었겠다 싶었습니다.

   제가 대학을 입학했던 1997년은 IMF 구제금융을 요청한 해였습니다. 모두들 취업이 어렵다며 대학을 입학하자마자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늘었습니다. 당시 제가 입학한 대학에서 학생운동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인문학부에 입학한 고교동창생은 학생운동에 열심이었습니다. 학생시위가 있는 날이면 경찰들이 정문을 지키고 학생증을 검사했었습니다. 스크럽을 짜고 최루탄을 맞고 있는 그 친구를 보면서 그 용기와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는 그 친구는 착하기 그지없는 눈물 많던 소녀였기 때문입니다. 1987년에 비하면 덜 엄혹했던 시절이었지만 여전히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애쓰던 그 친구는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은 강하고 독한 성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 촛불을 드는 사람들은 뭔가 자기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할 것이라는 편견, 힘이 없는 사람의 항거는 곧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이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영화를 보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가 믿고 바라는 대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 그리고 많은 이들이 한 마음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고 안타깝게 여겼다는 점이 가슴에 깊이 남았습니다. 타인의 아픔에 ‘이제 그만하면 됐다. 그만 좀 하라.’는 차가운 시선을 보내지 않고 ‘저 사람의 죽음이 바로 나의 죽음이다.’라고 느끼고 함께 세상을 바꾸어 준 이들에게 감사합니다.

   ‘당연히’ 그냥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숨 쉬는 공기와 낮과 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모두 그냥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세상이고 누군가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사회입니다. 받는 것에 익숙해져 더 받지 못한다고 투정하지 말고 값없이 받은 것들에 감사할 줄 아는 오늘 하루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홍지향 ghdwlgi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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