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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은혜 앞에서 지나간 모든 은혜는 무효다.

기사승인 2018.01.13  00: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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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군을 통솔하는 지휘관으로서 절대적 식량부족에 직면한 군 병력의 끼니를 해결해야만 했던 이순신 장군의 절박한 마음을 작가 김훈은 그의 작품 <칼의 노래> 속에서 이 서늘한 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그 앞뒤의 문장을 함께 늘어놓으면 뜻은 더욱 선명해진다.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흔히 우리는 무언가를 반복하거나 계속하면 시간과 함께 뭔가가 쌓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아무리 매일 매순간을 반복해도 마치 저 끼니처럼 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현실도 분명히 있다. 이런 현실 가운데 어쩌면 경건이나 은혜 같은 신앙의 현실도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경건이나 은혜가 반복되고 계속되면 우리는 그런 것들이 우리 삶 속에 점점 쌓여간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 오래오래 지속되면 우리는 소위 신앙의 연륜이 쌓였다고 서로를 향해 칭송을 돌리는 것이다. 결국 신앙과 관련된 것들이 우리 안 어딘가에 쌓여있다는 믿음은 쉽사리 안심과 자만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러나 정말 그런 것일까? 받아온 은혜나 지속된 경건이 쌓여 있으면 앞으로 닥칠 신앙의 위기를 그 쌓인 것을 통하여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신앙과 관계된 것들은 매 끼니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닥쳐올 끼니 앞에 지나간 모든 끼니가 무효이듯이, 우리는 매일 매순간 새로운 은혜와 경건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나간 모든 경건과 은혜는 다가오는 경건과 은혜 앞에서 모두 무효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은혜의 가장 확실한 성경의 상징은 ‘만나’일 것이다. 매일매일 새롭게 내리던 만나는 말 그대로 끼니였다. 지나간 모든 만나는 닥쳐올 만나 앞에서 무효였다. 방랑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과연 내일도 만나가 내릴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 그들은 만나를 쌓아두려고 했다. 그러나 만나는 결코 쌓이지 않았다. 쌓여있던 모든 만나는 썩어서 무효가 되었기 때문이다. 은혜는 바로 이런 종류의 것일 것이다. 쌓여있던 은혜로 영혼의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새로운 은혜로 영혼의 매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종류의 것 말이다. 이 만나를 이어받아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이르셨다. “우리에게 매일 단 하루치의 양식만을 주시옵소서.”

내 안에는 무언가가 다른 사람보다 많이 쌓여 있다는 삶의 태도를 우리는 꼰대라고 부른다. 만일 쌓아온 은혜로 앞으로의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또한 그것으로 교회 안에서 인정받겠노라고 털끝만큼이라도 생각한다면 나는 바로 신앙의 꼰대일 것이다. 쌓인 경건이나 은혜가 앞으로의 영적 삶을 올바로 경영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매일매일 새롭게, 오늘은 오늘의 은혜와 오늘의 경건이 필요하고, 내일은 내일의 은혜와 내일의 경건이 필요하다. 다가오는 은혜 앞에서 지나간 모든 은혜는 무효일 테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빌 3:13-14)

 

이진경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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