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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깃꼬깃한 지폐 한 장

기사승인 2018.02.13  12: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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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을 보내며

설날을 앞두고 명절 잘 쇠라며 성도 한 분이 음식과 봉투 하나를 들이밀고 가신다. 따스한 사랑의 손길을 느끼며 왜 옛날 생각이 나는 걸까. 명절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라 그럴 것이다. 사랑의마을에 있을 때의 이야기다.

책을 읽고 있노라니 어렴풋이 창문 밖으로 실루엣이 지난다. 거의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닌지라 이상한 생각이 들어 실루엣이 사라진 쪽으로 가보았다. 어르신 한 분이 내가 살고 있는 방문 밖에 오롯이 서계신다.

어르신을 안으로 모셔 들였다. 무엇인가 용무가 있는 것 같아 어떻게 오셨는지 물었다. 주머니로 손이 들어가더니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 코밑으로 내미신다. 돈에서 시큼한 시장 냄새가 난다.

“명절도 다가오는데….”

분명히 들은 말은 이 말뿐이다. 계속 알아들을 수 없는 지난 이야기들을 펼쳐놓으신다. 두서없이 이곳으로 왔다 저곳으로 가신다. 지금 이야기에서 과거이야기로 가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가끔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간간이 ‘예’라고 응수한 것뿐이다. 의미는 모르지만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그런….

진한 인생과 고초가 서려있는 구겨진 지폐 한 장, 만신창이가 된 삶이 묻은 시큼한 냄새를 그대로 간직한 지폐 한 장, 그것을 소중하게 받아든 나는 눈물만큼 아린 기도를 담아 아련한 추억으로 물든 어르신의 숨찬 손을 꼬옥 쥐었다.

식사를 하는데 또 다른 어르신이 퉁명하게 말씀하셨다.

“목사님, 식사하고 교회에서 나 좀 봐유.”

식사를 마치고 교회로 와 기다리고 있는데 떨리는 손으로 가까스로 지팡이를 잡고 어르신이 교회 문을 밀치신다. 당겨야 열리는 문을 굳이 밀며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 애처로워 달려가 문을 열어드렸다. 좀 전에 있었던 언짢았던 일들에 대하여 두서없이 늘어놓으신다.

듣는 것에의 인내를 한참 시험하신 후, 어르신은 신문지로 둘둘 만 그 무엇인가를 내미신다. 마른 인삼이 들어있다. 요리법까지 일장 연설을 하신 후 홀연히 가버리신다. 그보다 먼저 두 어르신은 봉투에 촌지를 담아 들이밀고 가신다.

그 어느 명절보다 그때의 그 기억이 나를 감동시켰다. 행복은 양이 아니라 질이라는 것을 일깨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렸다. 이런 모진 사랑이 넘실대는데 그 누가 행복하지 않으랴. 흔히들 그러지 않는가. 말씀을 전하면서 은혜를 끼친 게 아니라 오히려 은혜를 듬뿍 받았노라고. 부흥강사들이 그런 말을 남기고 가곤 한다.

나야말로 어르신들에게 말씀을 전하면서 은혜를 끼치는 게 아니라, 그들을 통하여 은혜를 늘 체험했었다. 어눌하다. 이해가 늦다. 반은 듣고 반은 못 알아듣는다.

내가 지금 목회하는 현장도 좀 다르긴 하지만 비슷하다. 나이 든 분들이 많은 시골교회이기 때문이다. 꼬깃꼬깃 구긴 지폐만큼이나 시큼한 인생을 살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진한 사랑, 진한 삶의 냄새가 배었다는.

 

   
▲ 김학현 목사

김학현 nazunja@gmail.com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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