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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배신을 생각하라

기사승인 2018.02.17  19: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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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2장 1-6절

유다의 배신을 생각하라

 

가. 배신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3절,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 성도는 주님을 배신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배신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의 하나였다. 여기서 ‘하나’는 열둘 중에 속해 ‘있다’(에이미, 현재분사)는 말인데 이는 그가 예수님의 착실한 제자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들락거리지 않았다. 삼 년을 주님과 함께 하고서도 배신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주님을 배신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수제자 베드로도 주님을 배신한 적이 있다. 예수님이 재판을 받는 곳에 멀찍이 따라갔던 베드로는 한 여종이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라고 하자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고 주님을 부인하였다(마26:69-70). 자만심을 버리고 조심해야 한다.

* 열둘 중의 하나는 의미가 크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내 속에도 배신의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열둘 중에 하나의 가능성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성도들도 언제 배신할지 모르므로 항상 조심해야 한다.

 

나. 사탄의 유혹을 방심하면 안 된다.

3절,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 유다가 주님을 배신한 이면에는 사탄의 유혹이 있었다. 사탄이 가룟 유다의 마음에 들어가 주님을 배신하도록 부추겼다. 여기서 ‘들어가다’(에이스에르코마이)는 ‘공유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사람이 사탄과 뜻을 공유하다보면 주님의 길과 어긋난 길을 가게 된다.

* 사탄은 베드로의 마음에 들어가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더 소중하게 여기도록 유혹하였다. 결국 베드로는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강력하게 항변하다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는 책망을 받았다(마16:23). 사탄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에도 들어가 성령을 속이게 하였다(행5장). 사탄과 뜻을 같이하면 안 된다.

* 사탄은 사람의 약한 것을 파고 들어온다. 사탄에게 허점을 보이면 안 된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사탄을 대적해야 한다. 바울은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권면하였다(엡6:10). 사탄의 유혹을 방심하면 안 된다.

 

다. 자기중심적인 신앙을 경계하라.

4절,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줄 방도를 의논하매...”

* 사람이 사탄의 유혹을 받아 주님을 배신한 것은 주님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욕심 때문이다. 주님의 뜻을 앞세우고 그의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할 성도가 자신을 뜻을 이루기 위하여 주님을 이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베드로가 그리했고 유다가 그리하다가 주님을 배신했다.

* 유다는 열심당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예수님을 앞세워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애를 썼다. 그는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 되기를 원했다. 그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왕의 행차로 준비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이 되어 로마 총독부를 치신 대신 성전을 숙정하셨다. 결국 유다는 자기중심적인 신앙으로 인해 주님을 배신하였다. 자기중심적인 신앙을 경계해야 한다.

*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하셨다(마16:24). 여기서 ‘자기를 부인하고’는 금욕생활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씀이다.

 

라. 배신하기는 쉽지만 결과는 쓰다.

5절, “그들이 기뻐하며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 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은 삼십을 받았지만 돈의 욕심 때문에 배신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유다는 자신의 뜻을 따라주지 않는 예수님께 복수를 한 것이다. 은 삼십은 사실 노예 한 사람의 값에 불과하였다. 그는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세우려고 열심히 따라다녔으나 결국 실망한 나머지 예수님을 노예 한 사람의 값을 받고 팔아버렸다. 그는 사실 얻은 것이 없다.

* 유다는 예수님이 정죄됨을 보고는 은 삼십을 돌려주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마27:3-4). 대제사장들은 그 돈을 핏값이라 하고 성전 금고에 넣어두는 것은 옳지 않다 하여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았다. 그의 배신(마라)은 쓰디쓴(마라) 비극으로 끝났다.

* 누가는 유다의 최후를 소상하게 보여주었다.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행1:18). 그는 예수님의 열두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으나 은총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그 직무를 대신할 맛디아로 교체되었다(행1:26).

황광민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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