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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반의 갑질

기사승인 2018.03.10  23:5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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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꾀로 인해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되었다. 속이는 자가 더 크게 속이던 자를 다시 속인 셈이다. 결국 야곱은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를 많이 거느리게 되었다. 라반의 아들들은 묘하게 돌아가는 사태를 수수방관하지 않았다. 그들은 고종 사촌인 야곱이 아버지의 모든 소유를 빼앗아 자기 소유를 불렸다고 판단했다. 지난 날 아버지가 야곱에게 한 부당한 행위에 대한 반성은 물론 없다. 라반도 안색이 달라졌다. 이전에 노련하게 야곱을 달래던 여유가 사라졌다. 야곱은 결국 떠날 때가 다가왔음을 깨닫고는 아내들을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자기의 계획과 입장을 털어놓는다.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창31:6-7a). 이 고백 속에 야곱이 그 동안 억눌러왔던 씁쓸한 감정이 다 녹아들어 있다. 결국 야곱은 가족들을 솔가하여 고향으로 돌아간다.

야곱의 말과 행동은 정당한가? 적어도 야곱의 입장에서는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외삼촌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라반과 그 아들들의 생각은 조금 다를 수 있다. 그들은 야곱이 불의한 속임수로 자기들의 재산을 강탈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차가 발생하는 것은 서 있는 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2008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르 클레지오가 서울을 배경으로 하여 쓴 소설의 주인공은 ‘빛나’라는 인물이다. 전라도 어촌 마을 출신인 그는 딸이 더 나은 교육을 받기 원하는 부모들의 염원을 품고 서울로 유학을 온다.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았지만 다행히 고모가 그를 품어준다.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는 사촌 동생을 보살펴주는 것이 그에게 기대되는 역할이었다. 숙제도 봐 주고, 방을 정리하거나, 집안일을 돕는 것도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사촌 동생은 도저히 통제 불능의 아이였다.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면 고모의 비난도 따라왔다.

“배은망덕한 년 같으니. 너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네가 서울에서 살 수 있게 얼마나 도와줬는데, 여기가 아니었다면 너는 길거리에서 거지처럼 살았을 게다. 이 집이 싫으면 고기잡이하는 전라도로 돌아가지 그러니. 시장에서 생선 비늘 긁고 내장이나 따면서 살란 말이다.”7)

어쩌면 라반의 마음이 이랬던 것이 아닐까 싶다. ‘고향에서 말썽을 부리고 도망 나온 녀석을 살뜰하게 거둬주고, 딸들까지 줬건만, 이렇게 뒤통수를 치다니.’ 야곱의 마음은 아내들에게 한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그는 가족 간의 연대감을 지켜야 할 의무를 진 외삼촌으로부터 종처럼 취급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셈법이 다르기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양비론으로 이 사태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라반의 문제는 무엇일까?

경제학자들이 인간이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 한 연구 가운데 독재자 게임Dictator game이라는 게 있다. 학자들은 실험 참가자들을 갑과 을로 나눈다. 10만원의 돈을 받은 갑은 그 중 얼마를 을에게 줄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을은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다. 실험 결과 갑에 속한 이들 가운데 60% 정도는 기꺼이 을에게 돈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평균 액수는 대략 가진 돈의 20% 정도였다. 학자들은 이 게임 결과를 가지고 인간에게 이타적인 면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은 게임의 룰을 바꾸어 보았다. 일종의 빼앗기 게임이다. 을은 1만 원을 이미 갖고 있다. 갑은 본인이 가진 10만 원 중의 일부를 을에게 줄 수도 있고 을이 가진 1만 원을 빼앗을 수도 있다. 이번에도 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결과는 놀라웠다. 먼저 했던 독재자 게임에서 돈을 나눠 가졌던 다수의 갑들이 두 번째 게임에서는 을의 돈을 빼앗는 결정을 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처럼 돌변하는 이유는 프레임이 우리의 의사 결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행동경제학에서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독재자 게임에서 실험 참가자들은 이타심을 평가받는다는 인식을 하고 그에 순응합니다. 반면 두 번째 게임에서는 빼앗는 행위가 허락되었기 때문에, 죄책감 없이 상대방의 돈을 빼앗는 결정을 합니다. 빼앗는 행동이 허락되지 않았다면 조금만 주고 말았을 수도 있습니다. 갑의 욕망은 ‘갑질’ 할 수 있는 위치에 선 순간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는 분석입니다. 자신이 을의 위치에 있을 때에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갑질 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면 갑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기가 쉽지 않습니다. 갑을관계 자체가 구조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8)

이런 실험 결과를 라반의 경우에 대입해 볼 수 있겠다. 그는 선의로 조카를 보살폈다고 생각했지만, 갑의 위치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이 구조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았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그의 눈을 가려 정의와 공의의 원리를 외면하게 했다는 말이다. 양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가는 목자의 마음을 내면화하고 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이란 욕망의 인력에 끌리는 자신의 모습과 한계를 직시하면서, 하나님의 은총 앞에 자신을 바치는 행위가 아니던가? 하나님의 마음과 접속한 이들의 으뜸 되는 특질은 공감과 연민이다. 처음부터 라반이 야곱을 수단으로 삼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조카에 대한 최초의 반가움이 스러지고 난 후부터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카를 수단으로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렇기에 자꾸만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 가져가야 한다. 13세기 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시인인 루미는 “소용돌이치는 버릇이 물에 들었거든/바닥을 파서 바다까지 길을 내어라”9) 하고 권한다. 마찬가지다. 우리 몸과 마음에 밴 나쁜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는 우리를 하나님께 돌려보내야 한다. 라반은 먼 데 있지 않다. 어쩌면 우리 자신이 누군가에게 라반인지도 모른다.

 

김기석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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