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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다워야 목사다"

기사승인 2018.03.11  14:3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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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 제도의 변천과 미래

개신교 목사직은 불과 500년 전 종교 개혁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다. 웬만한 유럽의 대학교들보다 그 역사가 짧다. 본래는 사도들 이후 무려 1500년이나 기독교에 존재하지 않았던 명칭의 직분이다.

그래서인지 혹자는 목사가 직분이 아니라 직업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장로나 집사처럼 직접 성경에 명시된 다른 직분과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교회 직분의 계급적 변질

한글 성경엔 오직 단 한번 '목사'라고 번역된 단어가 나온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엡4:11)." 신약 성경의 다른 구절들은 동일한 원어 '포이멘'에 대해 모두 '목자(sheperd)'로 번역하였으나, 유독 유일하게 여기서만 '목사(pastor)'로 다르게 번역했다. 그게 단순한 번역 실수였는지 아니면 거기에 무슨 특별한 의도나 사연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리고 사도 시대나 교부 시대 등 초기 교회의 역사에 있어 여기에 언급된 이 포이멘(목자)의 직분을 받아 누군가 사역했다는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물론 목자라는 그 직분이 실제로 무슨 일을 했는지도 정확히 모른다. 다른 장로나 집사처럼 그것이 교회의 항존직으로 계속 존속한 직분은 아니었다.

그런데 본문의 문맥으로만 보자면 포이멘은 '가르치는 자'라기보다는 오히려 목동처럼 '돌보는 자'에 더 가까운 뜻으로 보인다. 가르치는 자인 교사는 별도로 나란히 언급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약 성경의 포이멘이 오늘날 목사직의 기원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다면 그건 매우 순진하거나 다소 과장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현행 목사직은 종교 개혁 이후 수 백년 동안 꾸준히 그 교권적 권한을 스스로 확대하고 강화하여 왔다. 그래서 일각에선 "새 목사는 옛 사제를 예쁘게 포장한 것이다"는 자조적인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결국 근자에는 개신교 내에서 아주 독보적이며 초월적인 직분이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역사적으로 성경의 원리를 무시하며 종교 권력을 추구한 상당수 교권주의자들의 노력과 공로도 무시할 수 없다.

2세기의 교부 이그나티우스는 비록 악의는 전혀 없었으나 결과적으로 기독교 직분의 무당적 제사장화에 매우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우리는 감독을 주님으로 여겨야 마땅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따르듯 감독을 따라야 합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여러분은 감독을 하나님의 분신으로 여겨야 합니다."는 말도 했다.

게다가 전직 이교 연설가였던 교부 키프리안은 더욱 심했다. 그는 "감독에겐 하나님 이외에 다른 상관이 없다"고 가르쳤다. 아울러 감독은 하나님께만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었다. 여하튼 그의 영향으로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셔서 종료된 구약의 제사장, 성전, 제단 그리고 제사 의식이 신약 교회에 거의 이단 수준으로 다시 부활했다.

박해 시대가 끝나고 기독교가 공인된 4세기에 가서는 더욱 충격적인 변질이 있었다. 감독이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있는 대제사장으로 높여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어찌 보면 나중에 천년을 넘게 지속한 중세 직분의 계급적 타락은 벌써 2세기 초부터 예고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루터와 칼뱅의 한계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중세 사제 제도를 폐지한 개혁자 루터나 칼뱅 또한 그런 변질의 한계에서 크게 자유롭지는 못 했다. 루터는 "모든 목사의 입이 그리스도의 입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은 목사의 말을 사람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칼뱅은 "태양과 음식과 물이 영양을 공급해서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것보다, 목사의 직책이 지상에서 교회를 보존시키는 데 있어 더 필수적이다."고 하며 목사직을 찬양했다. 그가 비록 민주적인 장로제를 도입했다고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목사의 비중을 너무 크게 두었기 때문에 실상은 2세기 교부들의 졸작인 '단일감독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루터는 천국의 열쇠가 모든 신자에게 속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의 사용은 교회에서 직책을 맡은 사람들에게 국한했다. 이처럼 이미 초기 종교 개혁 시대에도 개신교 목사직은 사실상 가톨릭 사제와 별로 다르지 않게 다분히 계급화하여 신도들 위에 군림하는 우월적 존재로 시작했다.

우리는 16세기 종교 개혁에 있어 루터나 칼뱅의 헌신적 기여를 결코 과소 평가하지 않는다. 그들은 부패한 중세 교회로부터 보다 바른 신학을 제시하고 이끈 큰 일을 했다. 그러나 그 점이 그들의 치명적인 다른 오류들까지 모두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본다.

당시 개혁자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안수한 목사를 대단히 특별한 존재로서 진리를 전하는 '입'으로 생각했고 나머지 성도들은 단지 그것을 듣고 순종하는 '귀'가 되면 옳다고 믿었다.

입으로는 '만인제사장'의 기치를 높이 내걸었지만 실제 그 사역에 있어서는 신약 교회의 원리를 벗어나 성도를 이원화하여 '사역을 하는 사람(사역자)'과 '사역을 받는 사람(피사역자)'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사상은 오늘날까지 개신교에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성경은 모든 신자가 다 평등한 제사장이라고 가르쳤건만 이들은 성도의 고귀한 신분을 격하하여 '평신도'라 부르고 그들 위에 존재하는 더 높은 대제사장적 계급 구조를 만들었다. 이른바 수 천년 기독교 역사의 고질적 불치병인 '성직주의'가 이때도 또 다시 발병한 것이다.


   
진리는 교리의 시녀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목사 제도 자체를 무조건 부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또한 목회자 개인을 공격할 의도도 없다. 누구도 목사직이 개신교 성장에 기여한 그 헌신적 수고를 폄훼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특히 목사직을 은사의 하나로 보고 목사가 신약 성경의 '가르치는 장로'나 '교사'의 직무를 담당한다면 그건 더욱 바람직하다.

아울러 지상의 교회는 필요시 특정 직책을 만들어서 성경의 원리 안에서 적절히 운용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게 큰 잘못은 아니다. 그리고 칼뱅 당시로서는 매우 강력한 교권의 목회 제도가 필요했던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현재 이 땅에는 신실하고 충직한 목회자들이 아주 많다.

다만 나는 아무런 성경적 근거 없이 삼권을 장악하고 제왕처럼 군림하는 현행 '담임목사' 제도는 가능한 빨리 퇴출시키고 '공동 목회'를 도입해야 옳다고 확신한다. 이 세상 어느 정상적인 집단이 특정 개인에게 독점적으로 설교권, 축도권, 안수권, 성례권, 당회장권, 목회권을 주며 인사, 행정, 사업, 재정까지 월권하고 홀로 중세 교황처럼 군림하게 하는 곳이 있는가. 그건 사교집단의 사이비 교주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교회의 사역자는 직분이지 직업이 아니다. 장로도 직업이 아니고 집사도 직업이 아니다. 유대교의 스승인 랍비들도 모두 자원봉사로 사역했다. 그런데 왜 반드시 목사만 직업이라고 주장하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모자라 원로 목사가 되어 죽을 때까지 교회 돈을 가져가는 건 대체 어떤 신앙의 사역 정신에서 나온 발상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온라인에 차고 넘치는 게 설교다. 교회당은 더 이상 설교를 들어주는 유일한 장소가 아니다. 내 교리와 내 제도만이 진리라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진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나 교리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진리는 영원하나 교리는 절대적인 게 아니다. 교단마다 교리가 다르다. 루터도 바꾸었고, 칼뱅도 바꾸었고, 그리고 웨슬리도 바꾸었다.

목사는 사람이 만든 제도다. 목사가 교인들보다 특별히 더 성스러운 존재가 될 근거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일부 목회자들은 그 터무니 없는 무당제사장 행세를 즉시 버려야 옳다.

지금은 목사의 품성과 자질을 묻는 시대가 되었다. 성도 아래에 있는 목사는 좋은 목사고 성도 위에 있는 목사는 나쁜 목사다. 더구나 일부 신앙공동체들은 이미 목사를 예전처럼 절대적인 직분으로 간주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과거 특정 시기에 사람이 필요해서 만든 이 목사 제도는 앞으로 또한 언제든지 사람이 다시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늘 겸허하고 두려운 마음을 지녀야 할 것이다.

진리는 교리나 제도의 시녀가 아니다.

"목사가 목사이면 다 목사냐, 목사가 목사다워야 목사지." - 이용도 목사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신성남 canavillag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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