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권력이 작동되는 방식

기사승인 2018.07.18  01:08:35

공유
default_news_ad1
article_right_top

권력은 한계 혹은 제한을 철폐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권력은 절대 권력을 지향한다는 말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특권에 익숙해지고, 말의 권능을 과신하는 순간 권력은 반드시 타락하게 마련이다. 이 참담한 이야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다. 사무엘하 11장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보내다’라는 단어가 그것이다. 이 단어야말로 권력이 작동되는 방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윗은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냈고(1절), 목욕하는 여인이 누군지를 알아보기 위해 전령을 보냈고(3), 그 여자를 데려오도록 전령을 보냈다(4). 전선에 있던 우리아를 보내라고 요압에게 지시했고(6), 우리아가 집으로 들어가도록 보냈고(8),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냈다(14). 그의 권력 행사는 제한이 없다. 사람들은 그의 의지를 저항 없이 수행한다. 우리아는 죽었다. 다윗의 범죄를 문제 삼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다윗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12장은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셨다(1)는 구절로 시작된다. 이것은 다윗의 권력이 절대적일 수 없음을 암시한다. 욕망, 범죄, 범죄의 은폐기도, 살인 교사, 전투를 가장한 처형에 이르기까지 권력은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잊고 있는 분이 있었다. 그 모든 일을 보고 계신 하나님 말이다. 과도한 욕망은 우리에게서 하늘을 앗아간다. 누군가를 욕망 충족의 대상으로 여기는 순간 하늘은 저만치 멀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그들의 행위를 잊지 않는다.

다윗의 이런 몰락은 많은 이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어쩌자고 성서 기자는 믿음의 용장인 다윗의 몰락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기록했단 말인가? 이미 있는 기록을 지울 수 없기에 사람들은 이 사건을 다른 방식으로 읽어내려 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스는 이 이야기를 다윗의 범죄 이야기가 아니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로 읽으려 했고, 다른 교부들은 밧세바의 목욕을 예수 세례의 예표로 해석함으로 구원사적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 이 사건은 많은 화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작품은 벌거벗은 밧세바의 육감적인 나신을 보여준다. 다윗은 등장하지 않거나, 아주 작게 그려진다. 그런 구도는 다윗의 범죄가 밧세바의 도발로부터 야기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성폭력 문제가 아주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성폭력을 경험했던 여성들이 수치와 두려움을 무릅쓰고 그 사실을 폭로할 때, 그들에게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꽃뱀이라는 혐의를 씌우거나, 왜 그때 저항하지 않았느냐고 꾸짖기도 한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성폭행을 경험한 여성들이 그 순간 저항력이 마비되는 ‘긴장성 부동화’(tonic immobility)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폭력적 상황이 주는 강력한 스트레스, 혹은 긴장과 공포로 인해 모든 것이 얼어붙어 버리는 것이다. 그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성폭행의 피해자들은 저항하기도 어렵고, 또 저항하면 더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 폭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다는 자책에 빠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권력 관계의 불균형 속에서 일어나는 일일수록 그런 경향은 더욱 뚜렷하다. 연예계나 종교계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했던 이들은 성범죄를 저지르면서도 그것을 범죄로 인식하지 못한다.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능력은 그들에게 아예 없는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제한되지 않은 권력은 지배당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권력자 본인의 심성도 파괴하게 마련이다.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는 사무엘하 11장을 소재로 하여 여러 점의 소묘를 남겼다. 렘브란트는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을 은폐하려는 다윗의 초조한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전선에서 온 전령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다윗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있다. 왕 앞에 머리를 깊이 숙이고 있는 전령의 손에는 편지가 들려 있다. 우리아가 전사했다는 보고서일 것이다. 그의 팔에는 죽은 이의 군복과 무기가 걸려 있다. 그것은 우리아의 죽음을 입증하는 증거인 동시에 다윗의 범죄를 드러내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렘브란트는 그 전령의 바로 뒤에 나단을 배치하고 있다. 다윗에 비해 왜소한 체격이지만 그는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의 당당함이다. 렘브란트가 이들 소묘를 남긴 때는 그가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인생 막바지였다고 한다. 젊은 날의 허영심이 다 스러진 후, 세월과 더불어 자기 몸과 마음에 달라붙어 있던 모든 군더더기가 덜어진 후,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의 마음과 깊이 접속되었던 것이 아닐까?
('권력 중독에서 벗어나기' 中에서)

 

김기석 vorblick@dreamwiz.com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