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싸의 그레고리가 말하는 완전을 향한 여정(4)- 성자의 역할
이번주는 완전을 향한 길에서 성자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 보려고 한다. 먼저 성자의 역할에 대하여 그레고리는 대속의 희생제물과 질병의 치료자라는 관점을 강조한다. 나아가 그레고리는 성자를 완전을 향한 진보의 과정에서 신자가 서야 할 덕의 반석(the rock of the absolute virtue)으로 해석한다. 모세의 두 번째 시내 산 등정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출 33:21)고 말씀하시는데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또 다른 성경 구절에서 그 진보는 조용히 서 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너는 그 반석 위에서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모래언덕 위를 오르는 것처럼 끝없이 수고하는 자와 같다. 비록 장시간 발걸음을 내딛지만 모래 위에서의 발걸음은 언제나 아래로 미끄러진다. 그러므로 많은 동작에도 불구하고 진보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시편 기자의 말처럼 그가 진흙 구덩이에서 발을 들어 올리고 완전한 덕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둔다면 그가 바울의 권고처럼 그 덕 안에서 더 견고하고 흔들림 없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경주를 더 빨리 마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동방정교회의 기독론의 한 특성을 엿볼 수 있다. 동방정교회에서는 서방 가톨릭교회와 달리 성자가 성육신 한 이유에 대하여 모범자가 되기 위해서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우리가 가는 영적 여정에 모범자가 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럼, 왜 우리의 영적 진보에서 덕의 실천이 중요할까? 이것은 영성신학의 두 차원이라고 할 수 있는 수덕신학과 신비신학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좀 더 쉬울 것 같다. 먼저 수덕(修德)신학이란 덕의 성취 즉 성화를 추구하는 삶을 말하며 그 덕의 완전한 성취를 말하는 개념으로 완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신비신학은 하나님과 연합하고 그분의 뜻과 일치하는 영적인 최고의 단계를 말한다. 그런데 영성가들은 신비신학의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덕적 삶을 먼저 살아야 함을 강조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날마다 성화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연합하는 신비의 전제 조건인 마음의 고요(동방정교회에서는 이것을 무정념-dispassion-이라고 부름)에 이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마 5:8). 예를 들어 사랑이 부족해 시기심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성공에 대해 기뻐하지 못한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을 보면 기도를 통해 경험한 내면의 고요가 연못에 돌을 던지듯 금방 요동치는 것을 경험한다. 그것을 극복하려면 사랑이라는 덕에서 매일 자라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선한 생각과 축복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그래서 그것은 상대방을 위한 것 같지만 동시에 자신의 영적 진보를 위한 것이 된다. 그렇게 덕의 성취에서 날마다 진보할 때 비로소 자신의 영혼은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하기만을 온전히 갈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러한 영혼에게 자신의 뜻에 의해 하나님과 연합하는 지복(至福)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관상의 두 차원인 능동적 관상과 수동적 관상이라는 차원에서도 설명할 수 있다. 능동적 관상이란 모든 영적 에너지를 쏟아 영적으로 훈련된 삶을 살며 하나님만을 갈망하는 것이다. 물론 덕에 있어서의 진보도 요구된다. 그러한 삶을 살다보면 하나님에 의해 수동적 관상 즉 부어지는 관상(infused contemplation)의 단계를 경험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한다면 기도가 수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단계라고도 할 수 있다.
요약하면 그레고리는 완전에 이르는 길에 있어서 성자는 구속자와 치유자의 역할도 하지만 완전을 향해 달리는 신자를 위해 모범자의 역할도 한다. 성화의 과정에서 성자는 완전한 덕으로서 신자가 그 위에 서 있음을 통하여 흔들림 없이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덕을 실천하는 자만이 덕의 완성을 향해 더 빨리 진보할 수 있는데, 덕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덕이신 성자에게 토대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우리에게 덕의 진보를 위해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 하나님을 기대해 보면 어떨까?
김수천 sucheonkim62@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