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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기사승인 2018.08.13  22: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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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주간도 건강하셨습니까? 저는 지난주에 아이들과 함께 친정에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친정에 가도 짧게 머물고 떠나기가 바빴고 아이들이 어려서 어딘가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번 방문에는 언니들과 조카들이 함께 모여 아이스링크와 롤러스케이트장, 박물관, 야시장 등을 다녀왔습니다. 날이 덥기는 했지만 여유 있게 아이들에게 대구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는 두 언니가 저를 따돌리고 몰래 놀러 나가기가 일수여서 저는 5살 어린 남동생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자라고 보니 다양한 측면에서 언니들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아이들을 기르는 일부터 정서적인 지지까지, 자매가 있다는 것은 언제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변치 않는 친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기르고 있기에 함께 모이면 시끌벅적하고 정신이 없어 제대로 대화를 할 시간도 없지만 언니들을 만나면 마음에 편안함이 깃듭니다.

   아이들에게 대구에 가서 가장 즐거웠던 것이 무엇이냐 물어보니 야시장을 꼽았습니다. 야시장은 저녁 8시가 넘어 나가서 밤 12시에 시장이 문을 닫을 때까지 구경을 했습니다. 먹거리 가게가 많았지만 공예품을 감상할 수 있는 가게도 있었고 시장 곳곳에 거리공연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저녁을 미리 먹고 나간 아이들도 눈앞에 펼쳐진 현란한 음식들 앞에서는 절제가 어려웠습니다. 배가 부른 상태에서 간식거리를 더 사서 먹은 아이들은 배가 아프다면서 또 먹을 것을 찾았습니다. 지쳐서 잠이 들것 같았던 6살 조카도 졸음을 쫓아가며 구경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저녁 9시만 넘으면 씻고 잠을 잘 준비를 하던 아이들에게는 자정을 향해 달려가는 밤거리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지금의 친정이 있는 대구의 한 마을에서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자랐습니다. 언젠가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저의 친정은 대구 속의 시골이라고 볼 수 있는 그린벨트 안에 자리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개발규제가 풀리기 시작했고 아파트와 관공서 그리고 학교가 들어섰습니다. 저희 친정집 앞에 도로가 나고 맞은편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습니다. 이번 방문에는 친정집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해 내비게이션을 켜고 새로 난 도로를 찾아야 할 정도로 마을의 옛 모습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객관적인 사실인지 저의 주관적인 기억인지 알 수 없는 옛 집들의 위치와 마을의 정경을 찾아볼 따름입니다.

    해마다 조금씩 사라져가는 옛 마을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서 큰아이와 마을 산책을 다녀왔는데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250년 된 느티나무 한 그루만은 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거슬러 계산해보니 조선시대와 일제 강점기에도 그 느티나무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는 그 느티나무의 옹이에 들어가기도 하고 나무 가지에 올라가서 뛰어내리기도 하고, 시멘트로 만들어진 나무 아래 쉼터에 앉아 놀기도 했습니다. 땀이 절로 나는 한여름에 마을에서 가장 시원한 곳은 단연 그 느티나무 아래였습니다. 마을 아이들은 느티나무 아래 모여 풀을 찧으며 소꿉놀이를 하거나 전래놀이를 했습니다. 마을 아이들은 이제 모두 어른이 되었지만 저 아닌 그 누구라도 고향을 찾게 되면 한번쯤 찾아가 볼 추억이 깃든 나무입니다. 지금은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 울타리가 쳐져 있고 사람들의 접근을 제한하고 있어 저로서는 다소 아쉽습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은 시간을 따라 변해갑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변화를 막을 수도 없고 막는 것이 능사도 아닙니다. 보이는 것들은 변해가고, 변하지 않는 것은 제 기억 속에 있습니다. 지키고 싶은 옛 추억은 과거 속에서 아련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저에게 기억할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250년 동안 세상이 변하고 사람들이 변해도 느티나무는 성장했고 든든히 그 자리를 지켰기에 지금 저에게 ‘고향’의 표지가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 저 역시 세상이 변해도 제가 발 딛고 있는 땅에서 묵묵히 뻗어나가는 사람이 되어 누군가에게 작은 신앙의 표지가 될 수 있기를 감히 기도합니다.

홍지향 ghdwlgi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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