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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의 노래

기사승인 2018.09.21  22:4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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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양에 관한 설교나 세미나를 하게 되면 찬양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곤 합니다. 성경을 문자로서만 읽었을 때에는 찬양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가 창세기 4장 21절의 유발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지만 성경의 행간을 읽는 눈이 트이게 되니 그보다 조금 앞에 놓여있는 창세기 4장 초반부의 아벨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벨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지낼 때 어떤 형태로든 음악적인 것이 있었으리라는 상상이지요. 그리고 이제 성경 너머에서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니 창세기 1장 1절에서부터 태초의 찬양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4장에는 가인과 아벨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첫 번째 제사의 이야기로서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가 아니라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창세기 4장 3~6절에 그 단서가 있습니다.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우리가 쉽게 오해하는 것과 달리 가인의 제물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가인의 마음이나 태도에 관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벨에 비추어 가인을 보면 우리는 가인의 문제에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가인이 몹시 분해했고(5절) 하나님께서도 이 분하여 한 것을 다시금 문제 삼았음을 분명히 집어 주고 있습니다(6절). 이로 미루어 볼 때 분해하는 것이 가인의 문제점이었으며 그의 제사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 큰 걸림돌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가인은 언제나 화 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안에 화가 가득하고 사람과 상황의 좋은 점보다 미운 점과 부정적인 점을 먼저 보느라 늘 불만이 많고 자기주장만 강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성질 그대로 결국 그는 동생을 쳐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분해하는 것은 생명을 죽이는 일입니다. 분해하는 사람의 호흡은 어디를 향합니까? 대부분의 분노의 대상인 사람을 향합니다. 또는 성난 황소의 콧김처럼 땅을 향합니다. 호흡의 결이 하늘을 향하지 않고 성난 황소처럼 숨을 쉬고 쉽게 분해하며 화내는 사람의 찬양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가인의 중요한 특징이 또 하나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말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아우를 죽이는 인간의 첫 살인을 한 살인자 주제에 하나님께 거짓말로 말대꾸를 꼬박꼬박 하고 잘못이 다 드러난 후에도 한 술 더 떠서 ‘벌이 무겁다, 사람들이 나를 죽일 것이다’ 등 말이 참 많습니다. 반면 아벨을 보십시오. 저는 성경을 읽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성경에는 아벨의 말이 한 마디도, 단 한 마디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착한 것인지 미련한 것인지 아벨은 한 마디 말없이 조용히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며 양의 첫 새끼를 제물로 드립니다. 형의 해코지에도 한 마디 반응이 없습니다. 물론 일상적 대화는 했겠지요. 그러나 성경이 아벨의 말을 한마디도 기록하지 않은 것에는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아벨의 제사, 아니 그의 노래를 기뻐 받으셨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아벨과 같이 마음이 고운사람, 묵묵히 예배드리는 사람,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잘 하는 사람, 사람의 칭찬 보다 하나님의 칭찬을, 사람의 위로 보다 하나님의 위로를,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랑하는 사람의 찬양을 하나님은 더 기뻐 받으십니다.

 어느 날 히브리서를 읽다가 깜작 놀라 무릎을 쳤습니다. 창세기가 아벨의 말을 기록하지 않은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히브리서 11장 4절

 창세기에서는 한마디 말이 없었고 억울하고 허망하게 죽은 것 같았지만 아벨은 믿음으로써 지금도 살아서 여전히 우리에게 참된 노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수많은 말들과, 과시하고 싶은 마음과 억울함을 하나님 앞에서 녹여내는 사람, 사람으로 침묵하며 믿음으로 말하는 사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노래를 기쁘게 들어 주십니다. 쉬운 한 마디로, 하나님은 착한 사람 편입니다.

 

조진호 jino-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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