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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씨의 타향살이

기사승인 2018.10.06  23: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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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가을 하늘 아래에서 ‘사랑의 집수리’에 참여하였다. 색동교회 연중행사인데 일 년에 두 차례 지역사회의 가난한 가정의 살림터를 수리해 주는 사업이다. 하루 종일 진행되는 집수리 현장에 대부분의 교우들이 자기 집 일처럼 들락거리면서 돕는다. 먼지가 켜켜 쌓이는 작업장이지만 마치 잔치집처럼 소란스럽고 풍성하다.

  대개 주민센터 사회복지사에게 집수리를 의뢰받는데, 그동안은 홀로 사는 노인이나 장애인 가정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베트남인 부부가 어린 두 아들과 또 시동생과 처제 등 사돈이 함께 살고 있는 6인 대가구였다. 다세대주택 2층으로 비록 작은 거실과 방 두 개에 불과하지만 인근 베트남인들이 함께 모이는 사랑방 역할을 한다고 들었다. 단지 한 가정의 집수리가 아닌 베트남공동체를 돕는 일이라니 보람이 더 컸다.

  법무부 이민정보과에 따르면 2017년 국내체류 외국인은 218만 명이며, 해마다 크게 늘어나고 있다(5년 간 연평균 8.5%). 이중 베트남인은 중국인(46.7%)에 이어 두 번째인데 장기와 단기 체류자를 합해 17만 명이다. 작년에 외교통상부가 발표한 해외공관별 한인인구 현황을 보면 유럽에서 한인이 가장 많이 사는 독일과 두 번째 영국이 각각 4만 명 안팎이고, 뒤 이은 프랑스까지 합해도 10만 명에 못 미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은 적지 않은 수이다. 중국인이든, 베트남인이든 얼굴과 체형이 우리와 비슷한 까닭에 우리 곁에 이렇게 많은 외국인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다. 달리 생각하면 유럽 한인들이 고유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한인교회와 언론 등 자신의 목소리를 강화한 것에 비해 베트남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아직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이란 폐쇄적인 환경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법무부 통계는 정상적인 입국과정을 통해 국내에 들어온 사람만을 수치화한 것이다. 취업이든, 유학이든, 결혼이든 그들이 법적 정당성에 따라 권리를 보장받는 것은 당연하다. 마치 독일에 살고 있는 한인들이 주거, 교육, 의료, 세제 등의 시민적 권리에서 차별받지 않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이를 굳이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인구대비 난민수용률이 세계 139위이고, 그나마 난민인정률은 1.51%(세계평균 24.1%)에 그치는 등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베트남 가정은 부엌의 싱크대와 방방의 벽마다 실용한국어를 베트남어 표현과 함께 정리해 둔 메모를 붙여 두었다. 당장 실전에서 응용하기에는 쉽지 않아 보였으나, 대부분 한국인에게 호감을 주는 메시지들이었다. 그만큼 한국인과 소통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다행히 한국-베트남 사이 경제교류가 급격히 늘고,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 감독의 인기까지 겹쳐 피차 호감도가 크게 웃자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외국인으로서 고달픈 타향살이는 두 나라에 사는 한인이든, 베트남인이든 모두에게 변함이 없을 듯하다.

  벌써 24년 전 일이다. 이탈리아에 첫 발을 디딘 홍기석 목사는 처음부터 진입장벽에 부딪쳤다. 문제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었다. 당시 한인사회는 유학생들이 대부분일 뿐, 가정이 이주하여 정착한 사례는 많지 않았다. 당장 어린 아들은 이탈리아 유치원에 다니길 거부하였다. 말은 물론 환경이 뒤바뀐 이탈리아 유치원에 다니는 일은 어린 아이에게도 큰 스트레스였다. 흔히 아이들은 외국생활에 쉽게 적응한다지만, 부대낌은 애와 어른이 다르지 않았다. 나무를 옮겨 심을 때 오는 ‘주접’현상은 예외가 없었다. 
   
  여러 날을 버티다가 아이는 결국 유치원에 끌려갔다. 하루 종일 유치원에서 시달렸는지 집에 온 후 제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엉엉 울음소리가 났다.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시렸을까? 저녁밥도 안 먹고 버티던 아이가 잠이 들었는지 조용하다가 갑자기 한 밤중에 큰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아이는 고래고래 애국가를 불렀다. 겨우 5살 때 일이었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한국인 중심의 공동체를 고집할 수가 없게 되었다. 심지어 특정 동네에서는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다양한 외국인 골목상권이 형성되고 있다. 이미 우리는 세계화 된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남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그 나라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해서 산다. 오죽하면 사르트르는 “이주민이 되기보다는 비참한 원주민이 되는 것이 낫다”고 했을까? 우리 사회는 그들의 타향살이를 돕는 공동체문화의 개혁이 절실해졌다.

  사랑의 집수리를 한 날, 베트남인 응씨 가정은 정말 행복했을 것이다. 도배를 하고, 새 가구를 들여서가 아니다. 늘 주눅이 들어서 산 한국 땅에서, 이렇게 친절한 한국인들을 한꺼번에 만났으니, 고향 하늘 아래보다 더 푸근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날 만큼은 우리 모두 날개 없는 한국인 천사였다.

 

송병구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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