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세월호 엄마아빠들과 함께한 11일 여행(12) "심훈 사진 앞의 기억독서대"

기사승인 2018.10.10  22:13:25

공유
default_news_ad1
   
 

12.열 두 번 째 이야기(5월 14일/월요일) - 심훈 사진 앞의 기억독서대


들꽃교회에서의 모임을 마치고 우리 일행 9명은 들꽃교회의 교인이며 워싱턴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서혁교님의 집에 묵게 되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그의 아내인 심영주님은 간담회 현장에서 구입한 세월호독서대를 당신네 가족사진이 놓여있는 예쁜 테이블 위에 정성껏 올려놓았다. 어느 틈에 준비했는지 독서대 위옆에는 촛대와 기도 손십자를 올려놓았고, 예은이에게 보내는 예은이엄마 박은희전도사의 노란색 편지가 올려 있었다. 예은이가 천국에서 이 테이블을 본다면 큰 위로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우리 일행 9명을 충분히 호스트할 만한 집이니 규모가 상당하였다. 넓은 거실 한 쪽 벽에 윤극영 선생의 ‘반달’ 노랫말이 표구된 액자가 걸려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복제품이 아니라 윤극영 선생이 친필로 쓴 진품이었다. “어? 윤극영 선생의 반달이 여기...에?” 하는 나의 말에 심영주님이 “윤극영 선생님은 저희 할아버님과 사촌이세요. 그래서 그 액자가 저희 집에 있는 거예요.” 하였다. 그러면서 바로 오른 쪽의 액자를 보라고 하였다. 오른쪽에는 심훈의 사진과 함께 그의 시 ‘그날이 오면’이 가지런한 궁서체로 쓰여져 액자 속에 담겨있었다. 심훈 선생이 심영주님의 친할아버지이고 윤극영 선생은 심훈 선생의 사촌 동생이라고 하였다. 심훈 선생의 ‘그날이 오면’을 궁서체로 쓴 분은 북한에 사는 이각경 선생인데 북한에서 유명한 서예가이며 서혁교.심영주 부부가 북한을 방문하였을 때 이각경 선생이 할아버지의 시를 써 주신 것이라 하였다.

 

   
 

 

순간 어떤 촉이 왔다. “대한민국에 서예가 중에서 궁서체로 유명했던 분이 이철경님 선생인데(가수 서유석의 어머니), 혹시 이각경 선생이 이철경 선생과 형제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글씨체가 너무 닮았어요.” 했더니 심영주님이 “맞아요 이각경 선생님이 이철경 선생님의 친 여동생이예요.”라고 대답해 주었다. 이런, 나의 특출한 통박!(이걸 좋은 말로는 통찰력이라고 한다.^^)

중학생 때 교회에서 빌려 읽고 크게 감동받았던 책 ‘상록수’의 저자 심훈의 손녀를 만나 그의 집에 하루 묵을 수 있게 된 것이 신기하게 생각되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하였다. 더구나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 최용신 전도사가 활동하던 안산 아닌가! 지금 이 시간에도 심훈 선생의 사진과 마주보는 곳의 테이블에 예은이를 기억하는 독서대가 놓여있을 것을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든든하다. 워싱턴에서 독서대를 가져간 분들의 집 어느 한 켠에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는 독서대가 있을 것을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감사드린다.

 

   
 

 

늦은 밤이었지만 부부는 과일과 다양한 음료들을 꺼내어주며 우리를 극진히 대접하였다. 때 마침 우리를 인도하고 있는 김찬국 목사의 생일이어서 세월호 엄마들이 어렵사리 준비한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생일축하노래를 불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늦은 밤까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두 분은 미국에서 통일운동을 하는 분들이어서 북한에 여러 번 다녀왔다고 하였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뉴저지에 사는 한 살 많은 사촌형과 하는 일이 비슷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불쑥 “혹시 김봉호를 아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두 내외가 깜짝 놀라며 “아니, 목사님이 그 형님을 어떻게 아세요?”라며 반색하였다. 오래 전부터 통일운동을 하며 교분을 쌓아온 관계라고 하였다. 세상이 넓고도 좁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렇게 서혁교님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은 그날은 “먼 곳에 살아도 한 두 다리만 건너면 모두가 다 아는 사람”이라는 말을 실감하였다. 그리고 좀 외람된 말이겠지만, 민족의 해방을 기다리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썼을 시 ‘그날이 오면’의 작자 심훈의 후손이 먼 이국 땅에 살면서도 통일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것을 보면서 “과연 심훈의 후손답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할아버지는 일제하에서 민족의 아픔에 울며 조국의 독립과 민족해방을 위해 글로 헌신하였고 할아버지의 후손은 민족분단을 가슴아파하며 통일운동을 하던 중 이 시대 가장 억울하고 가장 큰 아픔을 당한 세월호희생자와 가족을 배려하고 위로하고 있었다. 손주는 할아버지를 닮는 모양이다.(계속)

 

   
 

 

   
 

 

박인환 gojumool@hanmail.net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