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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기

기사승인 2018.10.16  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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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주간도 안녕하셨습니까? 진부령은 연일 쌀쌀해져가고 있습니다. 교회 맞은편인 도로 건너에 드디어 새로운 가족이 이사를 들어오고 커피숍이 문을 열었습니다. 주일 오후에 궁금해서 견딜 수 없어하는 큰아이와 가게 구경을 가보니 가게의 냉장실은 아직 조각 케잌이나 쿠키 등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커피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손님들이 가득했습니다. 주인은 커피를 내리고 레몬즙을 짜느라 정신이 없어 보여 인사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가게를 나왔습니다. 부디 새로이 이사를 온 가족들이 이 마을에 잘 적응하고 오가는 손님들도 많이 드나들어 장사도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조만간 한산한 날 저와 아이들도 그 가게에 정식으로 인사를 가야겠습니다.

  작은아이는 가끔 자기가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기도 하고 어른들이 2층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으면 혼자서 라면을 끓여먹기도 합니다. 지난주에는 꽤 많은 양의 설거지 거리를 혼자서 설거지하고 차곡차곡 잘 엎어 두었습니다. 쌀을 씻고 밥을 짓는 것도 일찍 배웠고 달걀 후라이도 혼자서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마음이 내키고 배가 고프고 남편이나 제가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는 것들입니다. 평일에도 이틀 저녁은 예배시간 동안 아이들 둘이서 있으니 급하면 어떻게든 합니다. 부쩍 자라가는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또 고맙습니다.

   큰아이는 지난주에 학교에서 그림그리기를 하는데 자기 그림이 너무 평면적이어서 속상하다며 제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한 학년 아래 동생의 그림은 창의적인데 자기 그림은 입체감이 없고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괜찮다고, 잘 하고 있다고, 그리고 좀 못 그려도 괜찮다고 위로를 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해 줄 말이 없었습니다. 사실 저도 학창시절에 사적인 미술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수채화나 정물화를 잘 못 그렸습니다. 뭔가 독창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있으면 아주 가끔 잘했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아주 드문 일이었습니다. 미술시간은 숙제가 없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림을 그리면 되는 시간이었기에 마치 여가시간처럼 느껴져서 미술시간을 좋아했을 뿐 잘 그리는 그림은 저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래도 큰아이는 진부령으로 이사를 온 이후 분교 복식수업 선생님께서 미술을 전공하신 분이셔서 자주 학교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저보다 그림 솜씨가 훨씬 좋습니다. 다만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큰아이는 아무래도 정해진 틀을 깨는 것을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러다보니 풍경화 역시 ‘그러해야만 하는 색과 모양’을 고집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거나 속상함을 토로하고 며칠이 지난 토요일 아침에 저와 차를 타고 가는 중에 큰아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제 그림이 많이 좋아졌어요. 선생님이 산을 그리려고 하지 말고 산을 따라해 보라고 하셔서 그렇게 했더니 지난번보다 좋아졌어요.”하고 말했습니다. 스스로 보아도 만족스러운 그림이 나왔나 봅니다.

   저는 ‘산을 그리려고 하지 말고 따라해 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내내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도대체 큰아이의 선생님은 어디서 그런 지혜를 배우는 것일까요? 혹시 미술 교수방법에 그렇게 쓰여 있는 것일까요? 선생님은 큰아이와 3학년 여학생(선생님의 딸)과 함께 비밀일기도 씁니다. 절대 보지 말라고 해서 저는 들여다보지 못하지만 언뜻 언뜻 큰아이가 말하는 것을 보면 선생님도 그 일기장에 속마음을 소상히 쓰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밤에는 “엄마, 선생님이 내 일기에 글을 달아주신 걸 보고 나는 선생님이 나를 정말 이해해 주시는 것 같았어. 위로받는 것 같았어. 엄마 아빠한테도 말 못하는 건데 선생님은 나를 알아주셔.”하며 일기의 내용(자신의 속마음)은 절대 저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그렇게 신뢰하는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이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운으로 남은 선생님의 말씀을 한 주간 곰곰이 생각해보니 ‘산을 그리려고 하는 것’은 내가 주체이고 산이 객체가 되는 것이지만 ‘산을 따라하는 것’은 산을 주체의 위치에 두고 내가 객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산을 그리려거든 내가 주체가 되어 끌고 가지 말고 산이 주체가 되게 하여 나는 따라가라는 말씀입니다. 쉽고 가벼운 길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산을 따라하는 것’, ‘산이 주인이 되게 하는 것’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하지만 제가 주체가 되어 살고자 하니 마음처럼 되지 않고 힘이 듭니다. 예수님은 분명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말씀하셨는데 말입니다. 큰아이가 전해준 분교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주인이 되고 제가 그저 따라가면 그것이 바로 삶의 명화를 그리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하루, 주인의 자리에 앉으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홍지향 ghdwlgi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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