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나들이를 했다. 미세 먼지가 지나간 터라 가을하늘은 가을답게 푸르렀고, 서울시내는 서울답게 사람으로 붐볐다. 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내려 대한문에서부터 걸었다. 한가롭게 수문장 교체식을 구경했고, 정동제일교회 앞까지 차 없는 길을 어슬렁거렸다. 때 이른 점심은 가을의 별미 추어탕을 먹기로 일찌감치 정하고 왔다.
중명전 골목의 남도식당은 점심시간이 한참이나 남았지만 개점 11시 반과 함께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먹을 수 있었다. 워낙 입소문이 난 터라 점심시간이면 벌써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서기 때문이다. 수도권 변두리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서울시내만의 진풍경일 것이다.
지난 여름에 서울나들이를 모의하였다. 군포지방 행사 중인데 그날따라 몇몇이 여담삼아 서울 한복판에서 지내던 청년시절을 이야기 하였다. 그 추억담은 행복한 신학생의 여적(餘滴)처럼 느껴져서 듣기 좋았다. 이야기가 맴돌면서 남산 아래, 또 청계천 변 그리고 광화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뜨거운 볕이 수그러들면 옛 추억의 동선을 따라 기억을 답사하기로 약속하였다. 그것이 현실화된 것이다.
정동을 나선 일행 네 사람은 이전만 해도 별로 공통분모가 없었다. 그러나 길을 함께 나서면서 조금씩 공통점을 찾았다. 우리는 시청 앞을 지나 남대문에 들렀다. 시장 초입에서 불 난 듯이 바쁜 호떡집을 보고 놀랐고, 침체된 경기가 언제 이야기냐 싶을 정도로 그득한 낮 시장의 인파 때문에 또 놀랐다. 요즘 서울의 명물이 된 만리현으로 통하는 서울역 위 고가를 산책하였고, 다시 되돌아와 명동으로 들어섰다.
명동 가톨릭센터에 운집한 서점들을 돌며 한 참 시간을 보냈다. 그곳은 성물의 남대문시장과 같았다. 그 중에는 오늘 새벽 대통령이 바티칸을 방문하면서 교황에게 선물한 작품을 만든 최종태 교수의 십자가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예전부터 군침을 삼키던 소품들이다. 창밖으로 명동성당이 오롯이 내다보이는 커피숍에서 한담을 나누면서 한껏 여유를 부렸다. 그리고 청계천을 걸으며 옛 수표교교회 자리를 더듬었고, 예정된 종점인 광장시장에 들러 새참을 먹은 후 나들이를 마쳤다.
걸으면서 헤아린 것은 과거의 길만이 아니었다. 곧 자원은퇴를 하는 A선배는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당장 일행 모두에게는 미래의 길을 찾는 것이 관심사였다. 요즘 목사 둘만 모이면 걱정한다지만, 아무도 밑바닥을 볼 수 없는 은퇴이후의 삶은 이미 다가 온 내일이었다. 최근 비난을 한 몸에 받는 어느 대형교회를 반면(反面)교사로 삼아 뒷 담화도 나누었다. B선배가 꺼낸 신(新)성직매매의 ‘현실성’에 대한 우려도 결코 남 이야기는 아니었다.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만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기억의 시렁에 얹어둔 달콤한 과거와 달리 곧 닥칠 미래는 쓴 커피처럼 익숙하지 않게 마련이다. 내일의 집에 대한 걱정은 오늘의 집에 대한 염려와도 겹친다. 출가하거나 하지 못했거나 아버지로서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자녀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고, 미련은 많으나 기회가 부족한 60대 목회자의 회한이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C선배의 말처럼 목사들은 은퇴할 시기를 두고 결심이 들쭉날쭉 한단다.
가을산책은 높은 하늘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남산만큼 우리를 부풀게 하였다. 돌아보면 옛 청년시절 우르르 몰려 다녔던 뜨거운 가슴은 오늘을 있게 한 자부심이었다. 따져보면 지금 우리 연배보다 한참이나 어렸을 그 당시 선배목사들은 얼마나 어른다웠는지, 한 세대 차이를 거슬러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 되었다. 과연 우리는 과거에서 미래를 잇는 징검다리 노릇을 하고 있는지, 다음 세대를 위해 현재의 노둣돌을 든든히 놓고 있는지, 희망을 말하는 기회였다.
서울의 광화문과 남대문과 명동의 골목길을 걸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선 4대문 안 옛 교회들을 연결하여 순례 코스를 만들면 어떨까? 광화문 4거리에 있지만 들러 볼 엄두는커녕 종종 등을 돌렸던 감리회관 로비에 서점을 내거나 찻집을 차리거나 전시를 통해 오가는 이들이 말을 건네게 해도 고마울 것이다. 누구보다 먼저 감리교인들에게 공감과 소통, 자부심의 장터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끼리 어깨를 부딪치며 걸으면서 길은 길로 이어지고, 삶은 삶과 연결되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동역(同役)관계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공유하는 그런 사이일 것이다. 그래서 동역자가 아닐까? 내친 김에 더 자주 걸었으면 한다. 학연이니 동향이니 세대니 과거를 똑같이 소유한 그런 동류만이 아닌, 불안한 미래를 답사하려는 세대와 세대 ‘사이’도 나란나란 거리를 활보하면 좋겠다.
송병구 sbkbochum@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