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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꾸는 꿈

기사승인 2018.11.03  02: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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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2019년 세계교회협의회의(WCC) 정의평화 순례에 대해 나누고 계획을 세우기 위해 태국 치앙마이에 다녀왔다. 매우 뜻깊은 자리였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그곳에서 소수 민족을 위해 선교 사역을 하시는 한 선교사와의 만남이었다. 예정에 없었던 짧은 만남이었지만 여운이 길었다. 왜 그럴까 되짚어 보니 그분이 꾸는 꿈이 나의 마음을 뜨겁게 했고 나도 그의 꿈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주일 모처럼 집 근처 초교파 교회에 출석했다. 목사님의 설교는 늘 대화와 토론으로 이어진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유독 젊은이가 많이 출석하는 교회다. 설교의 주제는 요셉의 꿈이었다. 요셉처럼 늘 꿈꾸는 사람이 되라는 식의 교훈적 설교가 떠 올라서 그랬는지 그리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목사님의 설교는 달랐다. 요셉은 자신만이 아닌 형제나 다른 사람과 함께 꿈꾸는 법을 긴 세월을 거쳐 배웠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요셉은 혼자만의 꿈을 꾸었다. “형님, 내가 꾼 꿈을 한번 들어보셔요. 우리가 밭에서 곡식단을 묶고 있었는데,  갑자가 내가 묶은 단이 우뚝 일어서고 형들의 단이 나의 단을 둘러서 절을했어요. 형님, 들어보셔요. 또 꿈을 꾸었어요. 이번에는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나에게 절을 했어요”(창 37:6-8). 그러나 형들은 요셉에게 “네가 우리의 왕이 되고 싶은게로구나”하고 그를 나무라며 미워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 요셉은 자신의 꿈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창 50:20). 요셉의 이야기는 단지 자신만의 찬란한 미래를 위해 꾸는 꿈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꿈꾸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내가 꾸는 찬란한 미래의 꿈이 혹시 다른 사람에게 차별과 폭력이라면 과연 그 꿈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지난 9월 유엔 총회에서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는 트럼트 미 대통령의 연설을 듣는 세계의 지도자들은 비웃음으로 냉대했다. 왜 그랬을까?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성과를 치하하는 것은 비웃음의 대상이 아니다. 트럼프가 지속적으로 강조한 “위대한 아메리카를 다시 만들겠다”꿈이 다른 나라에게는 위협과 폭력으로 다가온 것은 아닐까? 트럼프는 국제사회의 상식을 깨뜨리는 말과 행동으로 국제정치와 외교 지형을 뒤흔들었고,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협박과 위협도 스스럼없이 해댔다. 다자간 국제협정도 미국우선주의 앞에서는 찢어버리면 그만인 종이 쪼가리로 전락했다. 세계 최강대국으로서의 위상에 걸맞는 국제적인 책임감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더 밝은 내일을 꿈꾼다. 어떤이의 꿈은 주변 사람의 가슴의 뜨겁게 하지만, 어떤 이의 꿈은 형제와 이웃을 위협한다. 종종 어린이에게 “너의 꿈이 뭐니?”하고 물으면 대체로 직업의 종류를 들어 답하는 경우가 많다: 선생님, 경찰관, 연예인, 과학자 이런식이다. 그러나 꿈은 막연히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상상하는 것이어야 한다.

김진양 pastorjin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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