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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기사승인 2018.11.05  00: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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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주간도 안녕하셨습니까? 저희 집은 요즈음 노린재의 습격으로 집안 구석구석에 노린재들이 돌아다닙니다. 지난밤에 아이들과 저는 작은 방에 유칼립투스 오일을 뿌리고 노린재를 최대한 제거한 후 문을 닫고 잠을 잤습니다. 작은 방이 좁아 함께 자지 못하는 남편은 안방에서 잠을 잤는데 안방은 넓기도 하거니와 삼면이 외벽이나 다름없어 노린재를 아무리 잡아도 끝이 없습니다. 지난 밤 남편은 잠을 자는 중 천장에서 남편의 얼굴로 낙하한 노린재, 남편의 베게 위에 앉아 귀 옆에서 윙윙 소리를 내는 노린재 등으로 인해 세 번을 깼고 결국 새벽 2시도 되지 못하고 일어나 다시 잠들지 못했습니다. 노린재들이 어느 틈으로 들어오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의 동사하지 않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저희 온 가족들을 잠 못 들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에 정확함을 추구하는 업무 스타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업무 스타일도 다르다 보니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사전 조율 없이 일정을 바꾼다거나, 약속에 늦는다거나, 주어진 일을 하지 않고 넘어가는 일은 최대한 피하고 자료는 정확한지 확인합니다. 보통은 일을 잘 한다는 평가를 받지만 저 스스로는 일을 하면 할수록 자꾸 일이 늘어나는 기이한 피곤을 경험하게 됩니다.

  반추해서 생각해 보면 학창시절에 저는 과감하게 무언가를 선택하기도 하였지만 선택된 삶의 틀 안에서는 규칙적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학교에 지각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미리 말하지 않고 약속을 어기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한 번은 약속을 하고 친구가 오지 않아 6시간을 길에서 기다린 적도 있었습니다.

   며칠 전 어느 정부 공모사업 서류를 작성할 일이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서류 작성을 마치고 제출에 앞서 상사와 내용 점검 시간을 가졌습니다. 수정해야 할 부분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참여자 누적인원’에 대한 지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1월~6월 누적인원을 그 기간 내에 한번이라도 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는 인원으로 생각을 하였고, 이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다를 수 있어 공모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세 번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여 작성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상사의 의견은 이와 달라 ‘누적인원’은 월별 누적인원을 합산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제출 자료는 상사의 의견에 따라 작성하여 제출이 되었습니다.

  서류 접수는 잘 되었습니다. ‘누적인원’에 대한 이해는 아마도 공모서류를 작성한 다른 사람들도 각자 다를 것이었고 어떻게 써도 큰 문제는 없어 보였습니다. 문제는 제가 그 부분을 담당자와 세 번이나 확인한데 있었습니다. 저는 서로 이해를 달리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물어보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고, 상사는 어차피 이해를 달리할 수 있는 부분은 물어보지 말고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작성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해의 차이로 인하여 상사에게 저는 ‘교과서적으로 일하는 사람’으로 규정되기 시작하였고 계속 그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 원칙대로만 일해서는 안 된다.”는 조언과 함께, 커피를 마시지 않고 차를 마시는 것, 짧은 거리를 갈 때에도 안전벨트를 매는 것, 교육 중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술을 마시지 않는 것, 등등 모든 것이 ‘교과서적’인 것으로 해석되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난 주 상사와 함께 참석한 성격 상담에서도 저는 원리와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격으로 결과가 도출되어 “내 그럴 줄 알았어. 역시 그랬구만!”하고 모든 ‘교과서적임’에 ‘역시’라는 강조점을 더했습니다. 좀 인생을 즐기라는 사람들의 조언이 있었지만, 이 모든 ‘교과서적임’이 저에게는 편안하고 안전한 삶이며 저는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누리고 즐기며 살고 있다고 대답하려다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성격입니다. 그 성격이 지금까지 저를 피곤하게도 하였지만 주어진 길을 지킬 수 있도록 돕기도 하였습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을 성실하게 사용하고, 주어진 책임에 따라 희생할 수 있도록 한 힘, 말씀에 따라 삶을 돌아보고 ‘믿음 안에서의 바른 길’을 찾아가도록 돕는 원동력이 바로 그 성격입니다. 때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답답해 보이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성격은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그저 서로 다를 뿐이고 서로 다름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줍니다. 오늘 하루, 쉽게 저 자신과 다른 사람을 규정하지 않고 서로 다른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홍지향 ghdwlgi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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