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꼬리와 머리

기사승인 2018.11.11  01:26:03

공유
default_news_ad1
article_right_top

  요즘 감리교 역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모두의 낯을 붉히게 하다가 또 깊은 우울에 빠지게 하는 신종 전염병과 같다. 그동안 목회자와 관련된 성범죄가 없던 때가 드물었다. 얼마 전에 인천에서, 또 서울에서 잊을만하면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 때마다 한 개인의 일탈로 앞가림하였고, 어느 곳이나 음지에서 발생하는 사회병리 정도로 치부되었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돈, 이성, 이단’의 문제에 조심하라는 경고를 들어왔을 것이다. 종교인의 위선적 삶은 어느 정도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유혹받기 쉬운 환경’을 변명할 일은 못된다. 얼마 전 뉴시스 통신의 보도(2018.11.7.)에 따르면 지난 7년 간 성폭력 범죄로 검거된 전문직 1위가 종교인이고(5,261명 중 681명), 이 중에서 성범죄를 가장 많이 저지른 전문직 직업군 1위가 바로 개신교 목회자라고 하였다(경찰청 범죄통계, 2010년~2016년 11월까지).

  불과 며칠 전에 뉴스의 초점이 된 인천의 어느 청년부 목사가 10대 여성에게 저지른 장기간 ‘그루밍 성폭력’에 대해 교회의 세습 탓으로 돌리는 언론의 진단은 조금씩 공감대를 얻고 있다. 공교회 의식이 마비된 오늘의 교회가 얼마나 타락할 수 있을지 시금석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해당 교단에서는 노회에 해당 목사를 해임케 하는 등 급히 꼬리를 자르고 있다.

  성범죄에 대한 수백 건의 수치를 보면 그동안 얼마나 꼬리 자르기가 일상화 되었나 짐작할 수 있다. 톱뉴스를 장식한 몇몇 이단은 논외로 치더라도, 메인 스트리트 교단의 경우에도 크고 작음을 가릴 것 없이 그 잘린 꼬리가 즐비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꼬리만 자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서 꼬리를 자른다고 믿어줄 만큼 더 이상 만만하지 않다.

  감리교회는 어떤가? 앞서 언급한 ‘초유의 일’은 목회자 성범죄가 ‘꼬리’를 잘라 감출 수 없는 ‘머리’의 문제라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추문이건, 범죄 건 그런 당사자가 감독에 출마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또 아무런 제지 없이 해당연회에서 무투표 당선된 경우를 누가 용납할 수 있을까? 당사자가 적극 부인하니 그냥 ‘혐의’라고만 하자.

  아무리 땅에 추락한 권위와 명예라 하더라도 감리교 감독직이 성범죄 ‘혐의자’가 넘볼 만큼 그리 녹록한 자리는 아니다. 설령 꼬리에 꼬리를 잘랐다고 하더라도, 만인 앞에서 나보란 듯 자신의 치부를 공식화하여 머리를 들이대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있던가? 아무리 미련한 사람도 그럴 경우에 더 큰 표적을 피하려 한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감독직은 반드시 공개적인 판단을 받아야 하는 거울과 같은 자리다. 부도덕과 몰양심으로 ‘유흠 한 자’에게는 오히려 단두대와 같은 위험천만한 무대이다. 모름지기 감독은 자신의 임기는 물론 은퇴하기 까지 성찬과 목사안수는 물론 온갖 행사 때마다 연회의 얼굴노릇을 할 테니, 성범죄 ‘혐의자’에게라도 감독직이 가당키나 한 자리인가? 아예 출마 엄두를 내기는커녕, 자기검열을 통해 스스로 배제시키게 마련일 것이다.

  정상적인 행정이라면 그런 ‘혐의’를 지닌 목사는 감리사와 감독의 치리대상일 것이고, 행정이 비정상이라도 비릿한 소문만으로도 가까운 동료들이 ‘망신살’ 운운하며 ‘쉬쉬’ 뜯어 말리는 것이 상식 아니던가? 더군다나 몇 해 전 전국교회에 배달된 추문자료나, 연회마다 배포된 경찰조서가 여전히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마당에 그 당사자가 감독이 되려고 했다면 과연 사실규명에 대한 자신감일까, 감리교회를 한껏 조롱하는 것일까, 정말 모를 일이다.

  감리교회나 당사자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지만 때 늦게 드러난 ‘초유의 일’은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다. 부끄럽게도 그동안 연회 본부든, 선거관리위원회든, 연회 피선거권자의 판단과정이든, 언론홍수시대를 구가하는 기자의식이든 누구도 양심과 도덕, 상식과 법의 잣대를 들이밀지 못하였다. 나중에야 여선교회와 여목회자들의 문제제기로 사태가 급반전되었지만, 이 일이 여성들에게만 국한 된 일인가?

  아마 모두가 당사자가 느낄 수치심을 기대했을 것이다. 적어도 누군가가 고양이 목에 달 방울을 준비했을 것이라고 안심했을 것이다. 총회에서 취임식을 둘러싼 다툼이 있기 전, 이미 예고된 전조는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취임식 당일이 되어서야 “제33회 총회 감독 일동은 성추행의 문제가 있는 당선자의 취임을 반대하며 이 취임식에 나가지 않기로 천명한다”는 결정은 결과적으로 안일한 대응이 되고 말았다. 모두가 다 아는 사안을 너무 오래 방치한 까닭이다.      
 
  굳이 위로를 얻자면 이번 기회에 도덕적으로 무능한 감리교회야말로 적폐 중의 적폐임을 알게 했으니 이것은 당사자와 우리 모두가 이루어낸 공헌이다. ‘아이를 낳으려고 해도 힘이 없는 산모와 같은’ 우리의 비참한 현실을 깨닫게 했으니 기여한 바가 크다. 재판의 과정이든, 선관위의 심사든, 감독 선거과정에 참여한 모두가 성범죄 ‘혐의’를 애써 무시하고, 부도덕과 몰양심에 일조했으니, 그런 공범의식을 세상에 드러낸 것만으로도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요즘은 얼마나 교회재판이 권위가 없는지 꼬리가 잘린 명백한 성범죄자도 판결에 좀처럼 승복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우리 모두를 한배에 탄 범죄자로 여긴다는 심리가 아닌가? 꼬리에 불과한 범죄를 제척하는 일조차 이렇게 힘이 드니, 잘라낸 꼬리가 다시 기형적으로 달라붙어 교회의 머리를 흔드는 일이 여전히 반복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젠 꼬리를 자르는데서 그칠 수 없다.

  감독회장은 답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기대할 자숙이나 자정능력은 우리 가운데 없다. 공교회 총회의 수장이라면 임기응변으로 책임을 회피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꼬리를 자르는 임시조치가 아니라 머리를 바꾸는 비상조치가 필요한 때이다. 총회에서 취임식만 안하면 될 것이란 생각은 얼마나 알량했던가? 게다가 오늘 당사자의 취임식에서 감독회장이 축도를 예정하고 있다니, 우리의 기대는 얼마나 순진한가? 문제는 꼬리가 아니라, 바로 머리다.

 

송병구 sbkbochum@hanmail.net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