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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증조할머니의 목화나무

기사승인 2018.11.12  00: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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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토요일 저녁 고성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가 있었습니다. 방과후 수업시간에 피아노를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께서 오케스트라 단장이셔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초대장을 받아 왔습니다. 추수감사주일 준비와 김장으로 부쩍 바쁜 주말이었지만 저녁에 아이들과 함께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참석했습니다. 가서 보니 피아노 선생님뿐만 아니라 지역 교회 사모님 두 분과  첼로 선생님도 단원이셨습니다. 문화생활이 어려운 고성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게 되니 마음이 새롭고 풍요로워졌습니다.

   주일에는 추수감사주일이자 교회 창립 50주년 기념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회가 생긴지는 훨씬 더 오래 되었지만 교단에 편입된 시점을 기준으로 50주년입니다. 이제는 농한기에 접어들어 마음의 여유가 생긴 교인들이 하나 둘 예배에 참석했고 절기에만 참석하는 교인들도 함께했습니다. 지금까지 교회의 역사를 정리하여 함께 나누면서, 어렵고 힘들었지만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교회와 함께 살다가 소천하신 교우들의 이름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믿음의 사람들의 역사입니다. 언젠가는 저와 남편도 교회 역사의 기록으로 남는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역사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믿음의 사람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지난 한 주간 친정아버지가 집을 비우게 되어 친정어머니가 혼자 집에 계시게 되었습니다. 거리가 멀어 세 딸들 모두 가보지는 못하고 전화 통화로만 안부를 물었습니다. 가장 느슨한 친밀도를 가진 저는 단 한 번 전화를 드렸습니다. 보통 아버지가 집에 계시지 않으면 어머니는 딸들에게 전화를 해서 긴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이번에는 아버지 없이 집에서 이불 정리를 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솜이불 사랑은 대단합니다. 명절에만 만나는 자녀들이지만 저희가 갈 때마다 솜이불들은 항상 풀을 먹인 천으로 기워져 있습니다. 이번 통화에서 ‘어머니가 결혼할 때 목화솜을 따서 만들어 온 이불’로만 알고 있었던 솜이불에 대한 좀 더 세부적인 추가 정보를 얻게 되었습니다.

   저의 외할머니는 결혼을 해서 첫 아이를 가졌습니다. 바로 저희 어머니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3남 2녀 중 맏이입니다. 어머니가 태어나던 해에 외증조할머니는 목화나무를 심으셨습니다. 맏손녀가 결혼을 하게 되면 솜이불을 만들어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어머니의 혼담이 오가고 23세에 결혼을 할 때 외증조할머니는 외할머니와 함께 목화솜으로 요와 이불을 지으셨습니다. 한 채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용하셨고 나머지는 증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결혼 후 10년 동안 저희 형제자매를 낳으셨고 저희는 그 이불을 덮고 컸습니다. 외증조할머니는 제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어머니는 위와 같은 내용을 이야기 하신 후 “서문시장에 솜을 트러 가면 이런 솜은 요즘 돈 주고도 못 산다고 말한다.”며 이미 여러 번 들어 익히 알고 있는 솜이불 자랑을 하십니다. 어린 시절에는 이불이 그것뿐이었고 어머니가 덮어주시는 대로 덮고 잤기에 잘 몰랐지만 제가 좀 자란 후에 친인척의 결혼식 혼수로 어머니가 받아오는 이불들은 저희가 덮고 자는 솜이불에 비해 훨씬 얇고 가벼웠습니다. 이후 저는 어머니의 솜이불을 무겁다는 이유로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풀을 먹인 천을 다듬돌에 올리고 두드리는 것도 팔이 아프고, 볕이 좋은 날 넓게 펼쳐 말리려면 긴 빨래줄을 장대로 높이 올려야 했고, 매번 다시 호총을 시치는 것도 힘들었기에 어머니의 솜이불은 제게 귀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전화기 너머 어머니의 말씀을 들어보니 어머니가 솜이불을 그렇게 애지중지하시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솜이불은 쉽게 사서 쓰다가 버릴 수 있는 상품이 아니었습니다. 외증조할머니의 오랜 사랑으로 만들어진 솜이불은 고된 하루를 보낸 어머니의 잠자리에서 몸뿐만 아니라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는 위로였을 것입니다. 솜이불은 돌아가신 외증조할머니, 외할머니 두 분과 잇닿은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본인이 돌아가시면 솜이불을 저와 언니들에게 한 채씩 물려주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옆에서 그 전화 통화를 듣고 있던 큰아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그럼 그 솜이불 엄마가 쓰다가 나중에 저한테 주시는 거죠? 그럼 저도 제가 아기 낳으면 물려줄께요.”

  저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지 생각해 봅니다. 세상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외증조할머니의 목화나무’는 무언가 물려주려면 오랜 시간을 인내해야 하고, 또 그 물려주는 것 안에 변치 않는 가치를 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사람은 그 누구라고 해도 이 땅에서 영원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어느 한 교회 역사의 기록이 될 때, 무엇을 남길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겠습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믿음과 사랑을 남기는 삶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홍지향 ghdwlgi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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