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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아드벤트!

기사승인 2018.12.01  23:5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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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림절은 빛의 절기라고 불릴만하다. 성탄 직전의 이 맘 때는 춥고, 어두운 시기이다. 곧 동지가 다가오니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때이기도 하다. 캄캄한 어둠은 역설적으로 빛의 의미를 더욱 눈부시게 한다. 그런 까닭에 대림절에는 따듯한 불씨를 널리 나누고, 등불을 높이 밝혀왔다.

  무엇보다 대림절은 아이들의 절기이다. 유럽의 슈퍼마켓에는 대림절을 앞두고 다양한 어린이용 대림절 상품을 판다. 대림절 달력의 경우 12월1일부터 24일까지 하루하루 24개의 작은 창문을 열 때마다 여러 가지 쵸코렛을 얻을 수 있다. 매일 아침 달콤함을 빼 먹는 재미에 빠진 아이들에게 대림절은 최고의 시간이다. 그런 기다림과 설레임으로 성탄을 맞이한다.

  대림절은 기다림의 절기이다. ‘아드벤트’(Advent)라는 이름 안에 기다림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곧 임박한 도착을 기대하는 나날이다. 따라서 대림절의 등불을 가리켜 ‘기다림 초’라고 부르는 것은 자연스럽다. 과거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이 임무교대를 하는 대림절 첫날, 어둠 속에서 하나의 빛을 밝히는 일은 하나님의 달력이 지닌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어둠이 점점 깊어가는 때이기에 빛에 대한 기다림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동지가 지난 며칠 후 어둠이 밑바닥을 치면서 성탄을 맞이한다.

  기다림 초를 밝히는 일은 대림절 4번 주일을 맞을 때마다 차례로 하나씩 하나씩 양초에 불을 켜는 행위이다. 네 개의 초에는 각각 고유한 이름이 있다. 맨 처음 밝히는 초는 예언의 초이며 하나만 켠다. 둘째는 베들레헴의 초이고 두 개의 초를 켠다. 셋째는 목자들의 초이며 세 개의 초를, 넷째는 천사들의 초이며 모든 초를 밝힌다. 네 개의 초는 서로 키 높이를 달리하는데, 계단 형의 모습에서 성탄에 대한 오랜 기다림의 의미가 느껴진다.

  대림절에 기다림 초를 밝히는 전통은 독일인 요한 힌리히 비헤른(1808-1881)이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독일교회에서는 150년 이상 누려온 대림절 전통이 되었다. 비헤른은 성탄을 손꼽아 기다리는 자기 고아원의 아이들을 위해 만들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네 개가 아닌 여러 개의 초를 켰다. 전통은 여러 시대, 여러 사람의 손길을 거치면서 자라나는 법이다. 지금 대림절의 기다림 초는 가장 일상화된 성탄문화로 자리 잡았다.

  색동교회는 창립하던 해인 2010년부터 대림절 초를 만들어 보급하였다. 일찍이 독일에서 경험한 경건한 문화체험을 나누려는 의도였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대림절에 대한 이해가 없다보니 딱히 문화랄 것도 없었다. 누군가 경건한 문화를 보급해야 한다면 우리부터 시작하자는 소명에 공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적 대림절 초를 ‘기다림 초’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 대림절을 뜻하는 언어 중에서 기다림이 가장 중심에 있다는 생각을 모았다.

  기다림 초를 보급하겠다고 결심하면서 10월 중순부터 대림절 준비로 근심하게 되었다. 기다림 초를 만들기 위해 마음부터 분주했던 기억은 아마 예수님 탄생을 고대하며 기다리는 심정과 같지 않을까 싶다. 11월 초부터 남보다 일찍 대림절을 준비하는 일은 마치 생체리듬보다 먼저 절기 소식을 일깨워주는 알람처럼 느껴졌다. 10년 안에 대림절 ‘기다림 초’를 전국의 가정마다 보급하여 성탄을 예비하는 절기문화로 정착시켜보자고 호기를 부렸지만, 틀림없이 실패할 것이다. 목숨을 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성탄에 대한 기다림의 과정이 없다면 성탄은 늘 일회용 축하에 그치고 말 것이다. 뜻밖의 탄생이 있기까지 기다림이 없고, 진정어린 축하 이전에 마음 아픈 산고가 없으며, 고난 후의 기쁨 이전에 설레는 기대감이 생략되면서 성탄은 소비적인 상품화에 휩쓸렸고, 교회의 기쁨을 세상의 즐거움으로 바꾸는데 번번이 실패하였다. ‘기다림 초’는 무엇보다 가난한 구유에 오신 예수님의 마음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대림절은 목마름을 체험한 이들의 긴 갈증의 시간이다. 대림절의 기다림은 모든 기다림의 절정과 같다. 그러면서 희망을 키워내는 것이다. 종말론적 사건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대망은 이 시대와 역사 속에 다시 오실 메시아에 대한 ‘그리움’ 그 자체이다. 자신의 마음과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 ‘기다림’의 불씨를 담은 촛불을 켜는 일은 얼마나 평화롭고 또 거룩한가?

  해피 아드벤트!

 

   
   
 

송병구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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