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왜 사냐건, 웃지요

기사승인 2019.02.06  13:40:10

공유
default_news_ad1
article_right_top

왜 사냐건, 웃지요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받이 한참 갈이

괭이를 타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이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의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냔건

 웃지요.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

 

이 시는 내가 좋아하는 시들중 하나다. 이시를

 잃을 때마다 붓다와 수제가 마하가섭이 한 연꽃을

 두고 나누었던 이심전심의 미소, 염화시중이 떠오른다.

'왜 사냔건' 건 선가에서 말하는 일종의 공안이다. 그에

대한 언어적 대답은 있을 수 없다. 선불교의 대가 임제는

"깨달음이 무엇이냐?" 는 제자들의 질문에

"차나 한 잔 하게" 하며 찻잔을 내밀었다고 한다.

김상용은 이 시 외에 알려진 시가 없다. 무명에 가까운

시인이다. 그러나 이 시만큼은 내가 읽었던 어떤 선시들보다

훨씬 더 감질맛이 난다.

 

"왜 사냔건" 붓다가 전 일류에게 던진 공안이다.

이에 대해 김상용 시인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두 눈을 지긋이 감고 두 손을 펴고 무릎위에 올려논

 가부좌 자세로 은근한 미소로 이 공안에 화답했던

붓다보다 더 파격적인 화답이다.

그리고 예수를 포승줄에 묽어 앞에 세워두고

"진리가 뭐냐? " 다그치는 로마 빌라도 왕의 질문에

침묵으로 화답했던 예수보다 훨씬 더 역동적인

 화답이었다.

나도 가끔씩 나 자신에게 " 왜 사니?"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때마다 '씁씁한 미소' 로 화답하곤 한다.

 

나는 글을 직업적으로 쓰는 작가도 아니고, 시인도

아니며, 세상 사람들이 흔이 말하는 글쟁이는

 더욱 아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동하면 잡필을 쓴다. 누군가가

 나에게 "왜 글을 쓰느냐?" 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적당한 대답은 없다. 그래도 자꾸 되암마도 묻는다면

 아마도 김상용 시인처럼 웃음으로 화답할 것이다.

얼마전에 우연히 소설 '칼의 노래' 와 '남한산성' 의

작가 '김훈' 과 모 방송국 유명 엥커와 대담하는

 짧은 프로그렘을 시정한 적이 있다. 김훈은 단문의

작가로 유명하다.

"당신은 왜 글을 씁니까?" 하는 앵커의 단도직입적

질문에 김 작가는 "나를 표현하고 싶어서요" 하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 그러시다면 독자들의 인정을 받고 싶으셔서 글은

 쓴다고 가정해도 좋겠습니까?" 하는 앵커의 질문에

그는 " 독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면 물온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독자들의 인정을 받기위해서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듣고 나보다는 훨씬 더 정직한 사람이구나 하는

 인상을 받게 되었다.

공자 같은 성인도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40년

이상을 세상을 주유했다. 그러면서 그는

" 군자는 남의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는 나름대로의 군자론을

잊지 않았다.

 

인터넷 시대는 작가와 시인들이 그 글을 읽는

독자들 숫자보다 많은 것이 특징이다.

맘만 먹으면 누구나 자칭 작가나 시인이 될 수 있는

가히 만인 작가와 시인의 시대하고 표현해도

 그리 무리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옛날에 한 가난한 시인이 있었다. 그는 매일 시를

 쓰는 자칭 시인이었으나 그의 시를 읽어주는 독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의 조강지처 부인도 그 시인의

 시를 읽어본 적이 없었다.

보름달 달빛이 정원에 가득한 어느 겨울밤이었다.

그는 휘영청한 달빛에 취해 창문밖을 바라보며

 자신의 자작시를 큰 소리로 읽고 있었다.

정말로 시적인 겨울밤 풍경이었다.

그때 마침 시인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세상이

 어떻게돌아가는줄도 모르고 넑을 잃고 시를 읽고 있는

주인장 시인 덕분에 도둑이 자루에 값나가는 물건들로

가득 쑤셔넣고 막 문을 열고 조용히 도망가려는 순간이었다.

" 도둑님, 오늘 밤 당신이 내 소원 하나만 듣어주신다면

한 자루를 더 채워갈 수 있도록 성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뒤에서 들려오는 시인의 정중한 목소리에 자기 귀를

 의심하던 도둑님은 '어차피 살기 아니면 죽기다" 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시인 선비님의 소원이 무엇이길래 그러십니까?

비록 내가 도둑이기는 하지만 죽어가는 사람의

소원 하나쯤을 들어줄 수있는 순정파 입니다" 하며

시인 앞에 덜썩 주저 앉았다.

" 고맙습니다. 도둑님, 내가 바라는 것은 도둑님께서

 밤새껏 내 시낭독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를 큰 소리로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이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나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

 

나도 내 잡필을 읽는 독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받으면 기분이 좋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평이니 무관심에 대해 불편한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내가 사랑할 권리는 있어도

사랑받을 권리는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 가난한 선비 시인처럼 가련하게 살지는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다시 해 본다.

 

이래도 저래도 웃으면서 말이다.

 

02/05/2019 아침에

버지니아 숲 속에서

 박평일

박평일 BPARK7@COX.NET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