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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이라는 이름

기사승인 2019.02.20  22: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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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에게 한 말씀 구하면 답 대신 쳐다보며 뜸을 들인다. 말할 만한지, 상대방이 진정 들으려 하는지 살피는 것이다. 내가 고려인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들으려 할지 자못 궁금하다.

고려인은 한반도에서 이주하여 옛 소련 지역에 사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옛 소련지역이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앙아시아의 다섯 나라, 그리고 카프카즈(Caucasus) 지역 나라들을 가리킨다. 발틱(Baltic) 세 나라도 소련이었으나 지금은 유럽에 편입되었다. 그곳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자신을 더 이상 고려인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고려인은 러시아말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불리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어로 한국인을 ‘카레이찌’ 또는 ‘카레이스키’라고 부르고, 이것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고려인이 된다. 그렇게 번역해 부르기 시작한 사람은 고려인 자신들이다. 그런데 왜 하필 고려인인가?

1988년 서울올림픽이 고려인에게 일으킨 반향은 컸다. 올림픽 때문에, 수십 년 세월 동안 그리움조차 사라진 고향 한반도가 기억 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한반도 동포와 한반도 풍광을 집에서 앉아 보다니, 저 한반도가 내 고향이란 말인가?
그러다가 1991년 소련(소비에트 연방)이 나라별로 갈리고 말았다. 중앙 아시아에 살던 이들은 그나마 경제사정이 나은 러시아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사할린 동포들이 남한으로 돌아갔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다른 이들도 짐을 싸기 시작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대도시로, 농사짓기 좋은 흑해연안 로스토프(Rostov-on-Don)와 볼가 강변 볼고그라드(Volgograd)로, 혹자는 조부모가 살던 블라디보스톡(Vladivostok) 지역으로 돌아갔다. 비자를 만들어 동대문 시장을 들락거리며 보따리 장사를 시작한 이들도 있었다.

고려인은 본래 자신들을 가리켜 조선인 또는 조선사람이라고 했다. 러시아가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체제였던 이유이다. 그러다가 서울 올림픽 무렵 고려인 협회를 조직하고부터 고려인이라는 말이 퍼지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고향이 북한 함경도임에도 조선인이 아니라 하고, 남한이 부쩍 가까워졌는데도 한국인이 아니라 한다. 고려인은 독립적인 말 같지만 독립적인 말이 아니다. 고구려에서 고려로 이어지는 한민족 정체성에서 나온 말도 아니다. 그것은 사회주의를 벗어나면서 북한인도 남한인도 될 수 없었던 처지에서 어줍게 만든 이름이었다.

나는 어쩌다가 세기적 변동기마다 변동의 현장에 있었다. 독일 동서 장벽이 무너졌을 때 독일에 있었고, 소련이 해체되며 극심한 혼란을 겪을 때 러시아에 있었다.
짙은 회색 거리를 불안한 표정으로 바삐 오가던 사람들, 아침에 물건을 깔아주고 저녁에 돈을 수거하며 흰소리로 떠들어대던 양아치 사업가들, 들고나온 집 물건을 팔아 손에 쥔 보드카로 나발 불며 떵떵거리던 사람들.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Sankt-Peterburg) 90년대 풍경은 그랬다.
나는 거기서 고려인들을 만나고 선교사가 됐다.

 

박효원(UMC러시아선교사)

박효원 hyo1956@yahoo.com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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