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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감옥

기사승인 2019.02.24  00:5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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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째 보일러 고장으로 집이 냉골이 되었다. 절기로 하마 우수(雨水)가 지나고 어언 경칩(驚蟄)을 앞두고 있으나 여전히 봄은 가깝고도 멀었다. 집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하니 18년 된 보일러 교체일망정 주저한다. 하긴 재개발이 코앞에 다가왔으니 누군들 선뜻 새 것으로 바꾸어줄 마음이 냉큼 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직 겨울은 물러가지 않았고 봄은 미처 다가서지 않았기에 추위가 더 느껴진다. 다분히 심리적 냉기일 것이다. 사람은 어찌어찌 보온을 한다지만, 평소 따듯한 아랫목을 즐기던 고양이는 안절부절 못한다. 온기를 잃은 처지에 값싼 동정심이 들었다. 종종 구박한 것이 미안해 고무 팩에 더운 물을 넣어 평소 비비던 자리에 두니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물렀다. 내 마음도 따듯해졌다.

  후두득 추위를 털어내던 중에 문득 겨울감옥 시절이 떠올랐다. 그 때에는 10월 말이었는데도 새벽에 오한이 들어 피식 운적도 있었다. 23살 청년에게 눈앞에 닥친 적은 엄연한 추위였다. 겨울이 오려면 아직 멀었고, 가을은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두터운 담장 안은 이미 엄동설한이었다.

  감옥의 겨울은 느닷없어서 이미 11월이면 겨우살이 준비를 시작한다. 그래야 창문에 홑 비닐 한 겹을 치고, 솜옷을 영치하거나 구입할 수 있으며, 청색 두터운 겨울이불로 바꾼다는 것뿐이다. 어쩌면 1983년 겨울, 서울구치소 독방에는 온기 한 점 없었다. 자고 나면 베개 곁에 두고 자던 ‘자리끼’조차 꽁꽁 얼어붙었다.

  성탄 직후 기결수가 되어 감옥 중 가장 춥다는 춘천으로 옮겼는데, 그야말로 점입가경인 셈이다. 다행히 기결 옥(獄)의 사정은 조금 나아서 독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난로가 있었다. 실은 두터운 문 밖 복도 한 복판에 있었으니 그림의 떡이긴 하였다. 다만 노란 주전자 안에서 밤새 설설 물 끓는 소리는 그나마 온기를 꿈꾸게 해 주었다.

  물론 상상도 못한 커다란 혜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유담뿌’라고 불렸다. 잔주름이 있는 둥글납작한 양철통인데 아마 거북이 등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저녁 식사 전에 미리 더운 물을 받아두어 잠자리 구석구석을 마치 다리미질 하듯 문질러 한기를 없앨 수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 두고 자면 그만큼 달콤한 겨울잠이 있을까 싶다. 게다가 다음 날 아침에는 미지근한 세숫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비교하기는 싫지만 더 커다란 혜택을 누리는 사람도 있었다. 같은 사동 여러 방 건너편에 주먹세계 보스가 함께 살았는데, 그는 우리 같은 학생들은 상상도 못할 황제표 특혜를 누리고 있었다. 딱딱한 유담뿌가 아닌 야들야들한 고무 팩의 주인공이었다. 붉은색 보온백은 오랜 감옥생활의 관록처럼 느껴졌지만, 고급스런 따듯함은 얄팍한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오늘 내가 고양이에게 베풀어준 자비가 바로 그 야들야들한 고무 팩이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부드러운 보온백 위에 엎드린 고양이는 그야말로 황제대우를 받고 있는 셈이다. 하물며 고양이도 고급스런 온기의 자유를 누리는데, 여전히 겨울감옥에서 몇 년 째 추위에 웅크리고 있는 양심수가 있다면 상상할 수 있을까? 민가협양심수 후원회가 올린 자료에 따르면 현재 모두 열 명으로, 대부분 노동자이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도 바로 그 중 한 사람이다. 2013년에 구속되었고, 9년 징역형을 받았으며, 여전히 수감생활 중이다. 그리고 6번째 겨울을 넘기고 있다. 아주 미묘한 시기에 동료들과 함께 구속되었는데, 죄목은 내란 예비음모사건이었다. 미묘하다고 한 이유는 국정원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고, 검찰에 의해 기소가 되고, 분노가 확산되어 크고 작은 촛불시위가 전국적으로 파급되던 즈음이란 점이다. 증거의 유효성에 대한 논박이 컸다.

  이 사건은 시국의 판을 뒤집고, 분노의 여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보수언론의 행태는 수사보다 앞섰고, 여론을 제 입맛에 맞추기 위해 도마질을 했다. 지긋지긋한 종편의 행패였다. 더 이상 ‘혐의가 있다 없다, 내란음모가 있다 없다’는 시비거리조차 못되었다. 사법권 남용으로 헌법상 권리를 파괴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어 비로소 법원의 정의를 세우는 과정이니만큼, 그 사건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은 자명한 노릇이다. 
  
  마침내 겨울은 지나갈 것이다. 올해는 비교적 혹한이 없었고, 36년 전 일제 잔재의 겨울감옥은 많이 현대화되었겠지만 여전히 봄은 멀었다. 이제 다가올 봄을 앞당기려면 겨울감옥에 남아있는 양심수들을 속히 석방하고, 또 널리 사면해야 한다. 바야흐로 봄이 온다.

송병구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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