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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한국교회의 같음과 다름

기사승인 2019.03.10  0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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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하노이 정상회담에 대한 북한 방송의 내용을 들으면서 그들이 하는 일이 한국 교회에서 하는 일과 아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에서는 결렬된 회담을 성과를 거둔 회담이라고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 북한의 지도자들은 국민을 외부 세계와 차단시켜놓고 위정자들의 말에 복종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교회에서도 교인들을 세상과 담을 쌓게 해놓고는 지도자들의 말에 순종하게 만든다.

일찍이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1945)에서 닫힌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열린사회의 문을 열었다. 지금 정치는 닫혔던 전제주의의 틀을 벗어나서 열린 민주주의의 시대에 진입해 있는데, 아직도 북한을 비롯해서 몇몇 나라에서는 닫힌 사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요한일서 2장 15절을 앞세워서 교회와 세상 사이에 울타리를 쳐놓고 교인들을 교회 안에 가두어 놓았다.

그런데 요한일서에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할 때 거기서 의미하는 것은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구절을 인용하는 사람들은 보통 세상 문화 전체를 가리키데, 여기서는 인간을 죄로 끌어들이는 하위문화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한 이래로 그 말은 지금 상식으로 통하고 있다. 인간은 주어진 사회의 문화 안에서 숨 쉬며 사는 존재다. 그런데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을 외면하게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삶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그렇게 인간의 삶의 터전을 왜곡시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북한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볼 수 있는 것은 동원된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서 열광적으로 깃발이나 꽃을 든 손을 흔들고 펄쩍펄쩍 뛰며 소리 지르는 장면이다. 거기서 우리는 잘 훈련된 사람들의 광기를 본다. 자유스러운 사람들로 보이지 않고 가르치는 대로 복종하는 잘 훈련된 동물들처럼 보인다. 국외자의 눈으로 보는 우리는 그렇게 보지만,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모습을 올바로 보지 못한다.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아주 자연스러운, 응당 그렇게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교회에서는 세상을 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한다. 육적인 것을 벗어버리고 영적인 것을 사모하라고 한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영적인 사람을 만들려는 부흥회에서 사람들은 박수치고, 노래하고, 울부짖는다. 여기서 우리는 교인들의 광기를 볼 수 있다. 육신적인 것을 외면하고 지나치게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교인들을 광신자라고 부르는데, 그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교회에서는 전적으로 순종하는 광신자를 원하다.

물론 교회에서 강조하는 순종은 원칙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지만, 그 순종이 인간에 대한 복종으로 쉽게 바뀐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려고 노력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말씀을 가르치는 지도자를 따르게 된다. 성경에서는 가르치는 사람을 존경하라고 했다(딤전 5:17). 특히 스승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되는 것으로 가르친 한국의 전통에서 자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목사를 아주 존경하게 된다. 지도자를 존경하다 보면, 특히 종교 지도자들의 경우, 그 지도자가 우상이 된다.

그러면 목사에게 맹종하게 된다. 우리는 사이비 종교 단체들에서 추종자들이 지도자의 가르침에 따라서 집단 자살을 하는 것을 본다. 자살까지 가지 않는다 하더라고 온 재산을 바치거나 가정을 외면해서 가정이 파탄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교회에서도 이런 일은 흔히 일어난다. 이단을 판별할 때 그 단체로 인해서 가정이 파탄 나는 것을 상당히 중시한다.

중요한 것은 신앙과 가정의 양립이다. 한 걸음 나아가서 교회와 세상의 양립이다. 이것은 믿음과 행위의 균형 그리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균형과 맥을 같이 한다.

교회에서는 세상을 본받지 말라는 성경구절을 앞세워서 교인들을 급변하는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려고 한다. 그러면 나이든 사람들은 전통적인 삶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별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지만, 급변하는 세상 안에서 부대끼며 살고 있는 젊은이들은 견디지 못하고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 세상 속으로 뛰쳐나가려고 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면, 신앙인도 인간이기에 사회를 등져서는 안 된다. 북한에서만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외부 세계와 단절하면 비인간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교인들을 비인간화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하늘에 소망을 두지만 일면 세상 안에서 산다는, 이 양면적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북한과 한국교회 사이에는 다른 점도 있다. 그들은 무신론자들이고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들은 공산정권의 폐쇄적인 사회에 살고 우리는 열린 민주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은 곤궁하게 살고 우리는 풍요롭게 살기 때문에 북한과 한국교회는 많이 다르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주목하려는 것은 세상과 관련된 문제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은 핵을 짊어지고 북경에도 가고, 싱가포르에도 가도, 하노이에도 가고, 판문점에도 와서 그 핵을 팔려고 애쓰고 있다. 달리 말하면, 그는 자기 국민을 살리려고 이념과 국경을 가리지 않고 세상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협상하려고 노력한다. 북한의 지도자들은 주로 북한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었고, 김정은도 처음에는 그렇게 했지만, 요즘 그는 세상으로 나가야 산다는 것을 자각하고 문재인도, 시진핑도, 트럼프도 만나러 돌아다닌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여전히 교회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너도나도 이념과 국경을 넘어서 교류하지만,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런 교류를 꺼린다. 한국은 다종교 사회이고 신앙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데도 교회 지도자들은 마치 한국은 기독교 국가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상대주의와 다원주의가 상식이 되어 있는 세상에서 교회 지도자들은 다원주의를 말하는 신학자들을 내몰았고 지금도 교단 신학대학에서는 그들의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한국 밖에서는 종교학 학자가 각광을 받고 있지만,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종교학자들을 탐탁하게 보지 않는다.

북한의 지도자는 자기 국민을 위해서 세상으로 나가서 여러 사람을 만나 협상하려고 노력하는데,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세상을 등지고 교회 안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아마도 머지않아 북한 사람들은 그 지도자의 덕택으로 세상에 나가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날이 올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한국의 교인들은 세상과 소통하려 하지 않으려는 지도자들로 인해서 교회가 쇠퇴할 때 교인들이 서로를 부등켜안고 신음할 것이다.

 

 

최재석 jschoi4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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