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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기사승인 2019.03.11  22: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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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주간 안녕하셨습니까? 경칩인 지난주 수요일 밤에 진부령에는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올해 겨울을 지나는 동안 가장 많은 눈이 내린 날이었습니다. 목요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마당에 눈이 두텁게 쌓여 있었는데 마을 이장님이 트렉터를 몰고 와 신속하게 눈을 치워주셨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입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여 정리해서 상자에 넣어놓은 스키복을 다시 꺼내 가방에 넣고 학교에 갔습니다. 그 날 선생님이 보내주신 사진에는 언덕 위의 학교 건물에서부터 지대가 낮은 운동장까지 눈을 쓸어 모아 긴 눈길을 만들고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과일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 중 성인이 된 이후부터 먹기 시작한 과일 중 가장 빈번히 먹는 과일은 바나나입니다. 바나나는 저렴하고 휴대가 용이하며 먹으면 금세 배가 부릅니다. 그래서 가끔 아침식사 대용으로, 허기질 때를 대비해서 바나나를 구매합니다. 마트가 많지 않으니 주로 속초나 인제의 대형마트에서 장을 볼 때 적은 양의 바나나를 사서 저 혼자서 먹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은 다른 과일에 비해서 바나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에는 수입과일인 바나나가 아주 귀해서 바나나 하나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지금은 흔한 과일이 되었습니다.

   제가 바나나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부터였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아놓은 돈 200만원을 들고 뉴욕 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예약을 해 놓은 어학원에서 학업을 시작하기 까지 등록을 유예할 수 있는 2개월 동안 저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모아야 했습니다. 간신히 학비를 모아 어학원에 등록하고 어학연수를 하는 동안에도 저는 오후 시간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당시 어학원과 아르바이트를 하던 식당은 다운타운에 있었고 저는 함께 연수를 간 언니들 두 명과 방값이 싼 외곽에 살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거주하던 곳은 이북에서 도미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아파트였고 방만 달랑 하나 얻어서 살고 있었기에 취사는 불가했습니다.

   아침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향하면서 배가 고프면 저는 편의점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른 아침 편의점에서는 조금 시든 과일을 따로 분리해서 가판대에 올려놓고 싸게 판매를 했습니다. 그 중에는 단연 바나나와 검붉은 자두가 제 시선을 끌었고 저는 거의 매일 아침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바나나와 자두를 사서 먹었습니다. 자두는 간혹 시들어 껍질이 무르기도 했지만 바나나는 제가 보기에는 전혀 시들지 않아 먹기에 딱 좋은 상태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편의점 문화를 접해보지 않았던 저였기에 미국의 편의점은 신세계였습니다. 1달러를 내면 바나나를 3개에서 5개까지 살 수 있어서 한 자리에서 3개도 먹었습니다.

   유학생활이 조금 익숙해진 후에 저는 바나나 보다 유학원 앞 노점상에서 파는 크림치즈를 바른 베이글을 더 즐기게 되었고 마치 지금 우리나라의 다이소와 같은 ‘Jack’s 99‘ 이라는 가게에서 1달러를 내면 베이글을 6개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먹거리의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하지만 바쁜 아침에 간단히 과일을 먹고 싶으면 여전히 바나나를 사서 가방에 넣고 지하철을 탔습니다.

   진부령으로 이사를 오기 전 남편이 부목사로 사역하던 교회에 사무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사무집사님이 일하시던 교회 사무실에 들어가면 집사님의 책상 위에 자주 바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우울증이 있으셨던 집사님은 햇빛을 받기 위해서 점심시간에 항상 걸어서 집에 다녀오셨고 바나나를 드셨습니다. 집사님은 “사모님 바나나 드세요. 바나나가 우울증에 아주 좋대요.”라고 하시며 바나나 한두 개를 제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런 집사님 덕분에 저도 어린 두 아이를 기르며 힘들던 시절에 바나나를 먹으며 힘을 냈습니다.

   사다놓으면 아무도 먹지 않아 거뭇거뭇해 질 때까지 저 혼자서 먹는 바나나를 살 때마다 ‘사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최소한의 양을 삽니다. 먹으면 속이 든든하고 영양도 풍부한 저렴한 과일, 바나나는 한때 저에게 범접하기 어려운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언제든지 함께하는 일상의 음식이 되었습니다. 먹는 음식 하나에도 이렇게 추억이 있고 이야기가 있습니다. 혹시 ‘내 인생은 참 무료하고 별 볼일 없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면 주변의 사물 하나에도 이처럼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성경 속 인물들에게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저 역시 이야기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습니다. 오늘 하루, 제 삶이 하나님의 역사에 기록되고 있음을 상기하고 최대한 즐겁게, 또한 정직하고 올바르게, 바나나처럼 흔하지만 풍부한 영양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홍지향 ghdwlgi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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