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역사는 어떻게 날개 짓 하는가?

기사승인 2019.03.24  02:23:09

공유
default_news_ad1
article_right_top

70여년을 견고하게 군림한 구 소련(蘇聯)은 어떻게 하루아침에 몰락했을까? 궁금증 때문에 옛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가 쓴 자전 이야기 <선택>을 읽었다. 이 책에서 발견한 것은 이미 역사가 된 격변시대나, 변화를 밀고 당긴 크레믈린의 내밀한 사정이 아니었다. 소비에트의 소용돌이 중에도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존재하였다.

몇 가지 가슴에 와 닿는 장면이 있었다. <선택>에서 공산당 최고 간부의 일원이 된 고르바초프가 자기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작별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그가 홀어머니를 모스크바로 모셔온 것은 평생 농부로 살던 모친이 병약해진 다음이었다. 크레믈린 병원에 입원시켜 드린 후 고르바초프 부부는 교대로 병문안을 하였다. 어느 날 저녁 늦게까지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는데, 그 밤에 갑자기 운명하였다. 마지막 순간, 의사가 아들에게 남길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어머니가 태평하게 이렇게 말하시더란다. “그 애가 다 알아요.”

<선택>은 비교적 일상의 이야기를 소상히 기록한다. 특권층의 암투를 기대했는데, 오히려 개인의 고뇌가 더욱 강조되고 있다. 특히 가족이야기의 속사정은 우리와 남다를 것도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소련 치하에서도 고르바초프의 부모를 비롯한 시골 사람들은 여전히 러시아정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믿었다. 아기들은 세례를 받았고, 아픈 사람이 있으면 교회에 촛불을 바쳤으며, 명절 때는 교회에 모였다.

나는 최고권력자의 자서전에서 거대담론이 아닌 기대 밖에 세밀한 인간의 이야기를 읽었다. 마치 외부의 충격이 대단한 격랑을 만들어 가는 듯하지만, 그 날개 짓은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시작하였다. 조상부터 대대로 물려온 하나님 신앙도 그 날개 짓 중 하나일 것이다. 이념은 어떻든 간에 사람들의 운명 역시 그런 따듯한 가족 관계 속에서 시작하고, 마치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이 옛 소련 뿐일까?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으면서 해방 직후의 역사가 부쩍 알고 싶었다. 일본 강점기에서 해방된 후 우리 민족이 누린 감격은 알 듯 말 듯 하지만, 분단국가로 나뉘는 과정에서 극단적으로 대립한 정치상만 부각될 뿐 사람들이 겪은 일상은 잘 다루어진 적이 없다. <미군정 3년사>를 읽은 배경이다.

물론 일상의 생활사를 다룬 내용이 아니어서 사진 자료와 사건연표의 행간을 통해 짐작할 뿐이었다. 남과 북은 미국과 소련 두 나라의 군대가 진주하면서 서로에게 유리한 정치세력을 지원하면서 유리한 배후가 되었다. 해방군이니, 점령군이니 하지만 실은 그 이름이 무색하게 두 나라 군대는 모두 외국군이었다. 3년 동안 미국과 소련의 군정은 일본 지배에 대한 청산, 토지개혁, 정치주체와 체제의 문제 등 오늘의 밑그림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해방공간에서 뾰족한 이념갈등과 폭력적 좌우충돌을 유난히 강조하지만, 남한의 경우 미군정 3년 동안 정국은 기대 이상 자유로웠고, 다양한 정치 스펙트럼이 공존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좌익과 우익, 찬탁과 반탁, 두 세력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와중에도 1947년 6월, 서울에서 열릴 미소공동위원회를 향한 엄청난 관심은 봇물이 터질 듯하였다. 미국과 소련 양측 대표에게 성공을 비는 진정편지가 무려 42만 통에 달했다니, 민중의 열망을 짐작할 만 하다.

새 나라를 건설하려는 우리 민족의 관심과 열의는 당시 출판물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47년 6월 1일 현재, 미군정 공보부는 허가 등록된 출판물이 일간 72종, 주간 76종, 반월간 13종, 월간 144종이라고 보고하였다. 해마다 쌀 부족 사태를 겪으면서도, 심지어 인쇄할 종이가 없어 종종 휴간하는 가운데서도 언로는 활짝 열렸고, 언론은 자유를 누렸다. 단독정부 수립과정을 공고히 하며 체제의 벽을 높이 담을 쌓은 남과 북은 자기 울타리 안에서 더 이상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았다. 분단은 3.8선으로 대표되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가슴에 더 두렵고 무섭게 존재하였다.

해방 직후 누군들 남과 북의 분단을 짐작이나 했을까? 게다가 이 체제가 74년이나 계속되리라고 꿈엔들 상상했을까? 남북 모두에 잘 알려진 ‘우리의 소원’(안석주 사, 안병원 곡)은 분단 이후 만든 노래가 아니다. 1947년 3.1절 기념식 날, 서울중앙방송국이 만든 3.1절 특집극 노래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이 노래는 애초에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었다. 그러나 훗날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불리게 된다.

마침내 1948년 8월 15일 상오 11시 20분, 서울 중앙청 광장에서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선포하였다. 광복3주년 기념식도 함께 열린 자리에서였다. 그리고 이날로 조선주둔 미 최고사령관 하지 중장은 군정종식 발표하였다. 정부수립을 기념해 전국적으로 표어를 현상공모 했는데, 응모작품 4,353편 중 1등이 없는 2등을 선정하였다. 그 내용은 공교롭게도 “오늘은 정부수립, 내일은 남북통일”이었다.

미군정 3년 동안 비교적 백가쟁명 식으로 누리던 다양한 색깔의 깃발들은 차츰 부러지고, 완전히 사라졌다. 단독정부 수립과 이어진 전쟁으로 아예 생각과 가슴에서 잊혀지고, 지워질 것을 강요받았다. 그리고 ‘우리의 소원’은 분단과 함께 널리 유행하였다. 그 소원의 유효기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여전히 알 수는 없다.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평범한 일상(日常)일 수 없었지만, 비록 작은 날개 짓일망정 결코 멈출 수는 없는 이유다.

송병구 sbkbochum@hanmail.net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