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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 대한 조계종 총무원의 무례와 BBS의 보도태도

기사승인 2019.03.25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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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교안 대표의 악수인사와 문재인 대통령의 합장인사,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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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 사족으로부터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절까지는 아니더라도 오십년도 더 되었으니 꽤 오래 전의 일이다. 그때 필자는 군으로부터 제대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지도 일천한 초신자였다. 말하자면 혈기를 누르기 힘들만큼 젊었고 인격도 신앙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대부분인 그런 때였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에서 결혼식이 있었다. 당시 필자가 다니던 교회, 그러니까 필자의 모교회는 바닥이 마루로 항상 반질반질하게 닦여 있었고 시골이라서 아직 왼쪽에는 남자가 앉고 오른쪽에는 여자가 앉아 예배를 드렸다.

식이 시작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있어 하객들은 몇 명 와 있지 않았다. 그런데 40 전후로 보이는 한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구두도 신은 채였다. 필자는 속으로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했다. 예배당에서, 그것도 잘 닦인 마룻바닥에 구두를 신은 채 들어와서 담배를 피우다니 예의로 보나 상식으로 보나 이해가 되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필자는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은 채 담배는 밖에 나가서 피워 달라고 했다. 그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필자를 한 번 쏘아보고는 그래도 더는 어쩌지 않고 밖으로 나가 주었다.

그가 왜 그 같이 예의에 어긋난 상식 밖의 짓을 했는지 필자로서는 지금도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설마한들 알고도 그러기야 했겠는가마는 행색으로 봐서 그만한 것도 모를 만큼 밑바닥 사람은 아닌 것 같았으니 더욱 모를 일이다.

 

황교안 대표의 조계종 총무원 방문과 불교계의 무례

그런데 최근에 불교계의 기독교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고 상식을 벗어난 일이 있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청사를 방문한 황교안 자한당 대표에게 총무원 측이 대웅전 참배를 요청한 것이다. 말이 ‘요청’이지 ‘강요’나 진배없는 일이었다. 국민의 말이라면, 그것도 많은 사람이 소속되어 있는 집단의 말이라면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정치인 아닌가. 그것도 그는 거대 정당의 대표가 아닌가.

이에 대해 기독교계는 당연히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많은 이들이 불쾌감을 드러냈다. 한국언론회는 논평을 내어 반박했고 당당뉴스도 사건의 개략을 보도했다. 필자 또한 여기에 필자 나름의 의견을 피력해 보고자 한다.

사건은 조계종 총무원에서 비롯됐으나, 사건이 사건으로 발단하여 비화된 건 BBS불교방송에 의해서였다. BBS는 황 대표의 조계종 총무원 방문 사실을 <‘원장 스님께 합장도 안하고...’ 독실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총무원 찾은 까닭은?>이라는 제목으로 ‘개신교 신자 황교안 대표, 총무원 찾은 까닭은?’이라는 자막까지 커다랗게 넣어 대대적인 보도를 했다. 그 실상을 잠깐 들여다보면 이렇다.

  

BBS불교방송 보도의 개략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황 대표는, 스님들의 요청으로 마지못해 대웅전 참배를 하고, 총무원장 스님께 합장도 하지 않는 등 이번 예방에도 이런 저런 논란과 구설수를 낳았습니다. 

최선호 기자의 보돕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을 예방하기 위해 총무원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시작부터 녹녹치가 않습니다.

총무원 청사 입구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는 조계사 부주지 원명 스님 등 종회의원 스님들은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듯이, 절집에 오면 절집 법을 따라야 한다”며 황 대표에게 대웅전 참배를 요청합니다.

마지못해 발길을 돌린 황 대표는, 서서 삼배를 하면서 부처님 전에 참배를 합니다.

이윽고 총무원장 원행 스님을 뵙고서는 합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원장 스님이 먼저 합장으로 인사를 했는데도 악수만 청했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만큼 개인적인 신앙이야 얼마든지 자유롭게 갖고 피력할 수 있지만, 국민의 민복인 공인으로서 이웃종교의 성지에 와서는 당연히 그 예법을 따라야하는데도, 개인의 종교적 신념만을 고집스럽게 고수한 겁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알려진 황교안 대표의 총무원장 스님 예방으로, 황 대표에 대한 불교계의 오랜 의구심과 불신이 씻겨 질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감정의 찌꺼기가 여과 없이 그대로 표출된 것이었다 

‘스님들의 요청으로 마지못해 대웅전 참배를 하고, 총무원장 스님께 합장도 하지 않는 등 이번 예방에도 이런 저런 논란과 구설수를 낳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기들이 옳지 못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황 대표가 스님들의 요청으로 마지못해 대웅전에 참배했다면 ‘요청’이 아니라 ‘강요’가 아닌가 말이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듯이, 절집에 오면 절집 법을 따라야 한다’니 이는 또 무슨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말인가. 그리고 ‘원장 스님이 먼저 합장으로 인사를 했는데도 악수만 청’한 것을 문제 삼는 것은 이 나라의 제일야당을 책임지는 황 대표를 ‘원장 스님’의 손아래쯤으로 낮춰 본 결과가 아닌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만큼 개인적인 신앙이야 얼마든지 자유롭게 갖고 피력할 수 있지만, 국민의 민복인 공인으로서 이웃종교의 성지에 와서는 당연히 그 예법을 따라야하는데도, 개인의 종교적 신념만을 고집스럽게 고수한’ 것이라 비난한 것에 대해서는 한국언론회의 논평에 귀를 기우려 보고자 한다.

‘종교의 자유가 있고 공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불교예법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아무리 공인이라지만 자신의 종교와 예법이 있는데 굳이 불교 예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그야말로 황 대표는 공인으로, 공적인 일로 조계종에 간 것이지 불교로 개종하거나 참배하러 간 것이 아니다.’

BBS는 황 대표가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이 같은 무례라기보다 망언에 가까운 우를 범한 것일까. 깊은 성찰까지는 아닐지라도 무엇인가 조금만 생각했다면 그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별 생각 없이 그런 보도를 했다면 너무 무책임하고 무신경한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것 같지는 않다. BBS는 ‘황 대표에 대한 불교계의 오랜 의구심과 불신’을 말하고 있는데, 그 같은 감정의 찌꺼기가 여과 없이 그대로 표출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게 아니라면 어떠한 설명이 가능한가.

 

황 대표의 악수인사와 문 대통령의 합장인사가 비교의 대상인가 

그로도 성에 차지 않는지 BBS는 <포토뉴스>에 ‘합장은 이렇게 하는 거죠!’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설명까지 곁들여 사진 두 장을 게재한다.

‘15일 불교국가 캄보디아 인사들과 합장으로 인사를 나누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천주교 신자)과, 14일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 예방 당시 합장 없이 악수로만 인사를 나눈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개신교 신자).’

왼쪽에는 문 대통령의 합장 인사 모습 사진, 오른쪽에는 황 대표의 악수 인사 모습 사진을 올린 것이다.

BBS는 아마 그 두 장의 사진을 통해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듯이, 절집에 오면 절집 법을 따라야 한다’고 하는 자기들 관점으로 문 대통령을 예절 바른 사람이라 말하고 싶었을 것이고, 반대로 황 대표는 예절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인 우리는 이 두 경우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황 대표의 신앙은 철저하지만, 문 대통령은 그렇지 못하다고 봐야 하는가.

BBS는 황 대표를 ‘민복인 공인’이라 했는데, 맞는 말이다. 그러니만큼 자연인처럼 자의에 의해서만 행동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통령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국민들은 종교인으로서의 대통령을 뽑지 않는다. 기독교인이니까, 아니면 불교인이니까 뽑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교회의 장로를 뽑는 것이 아니고, 조계종의 총무원장을 뽑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천주교 신자라 해서 불교국가의 수반과의 공식적인 자리에서 십자가를 긋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하면 되겠는가. 아니면 불교 신자라 해서 기독교 국가의 수반과 합장으로 인사를 해도 되겠는가. 혹 안 될 것까지는 없을지 몰라도 대통령은 종교인 아무개가 아니라 나라를 대표하는 대표자로, 원수로 국민들이 뽑아 준 것이다.

그런데 같은 공인이라 해도 이번의 황 대표와 문 대통령의 경우는 같지 않다.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황 대표의 경우는 ‘우리’라고 하는 동질성이 있다. 황 대표도 조계종 측도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경우는 상대방이 ‘우리’가 아닌 ‘남’이다. 그리고 황 대표가 조계종 총무원에서 무엇인가 실수를 했다면 그 영향은 한 정당에만 미칠 것이고 그 정도도 그다지 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무엇인가의 과오를 범했다면 그 영향이 온 나라와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는 큰 것이 된다. 공인으로서의 책임의 한계가 다르다는 말도 된다.

 

꽃이 피지 않는 썩은 뿌리는 뽑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출처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매체들이 ‘기독교인인 황교안 대표는 대웅전에서 세 번의 참배 대신 세 번의 반배(半拜)로 예만 표함으로 자기의 신앙 소신을 지켰다’ 쓰고 있는데, ‘참배’는 무엇이고 ‘반배’는 또 무엇인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둘 다 불상에게 절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세 번씩이나 한 반배가 예만 표한 것인가. 큰절을 하지 않고 선 채로 허리만 굽혀 절을 했으니 자기의 신앙 소신을 지킨 것이라는 말인데, 황 대표의 신앙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 아닌가. BBS조차 ‘황 대표는, 서서 삼배를 하면서 부처님 전에 참배를 합니다’라고 인정한 일이다.

황 대표는 그렇게 과소평가해도 좋은 사람이 아니다. 대단하다는 말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썩은 뿌리에선 꽃이 피지 않는다’며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기독인회 주최 조찬기도회에 참석해서는 자기 당 의원들에게 이런 당부도 했다. “전부 다 욕하고, 비난하고, 헐뜯는 그런 세상 속에서 그래도 장점을 찾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풍성한 우리 자유한국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필자는 이 같은 그에게 부디 그리 되게 해 주시기 바란다는 당부를 하고 싶다. 진짜로 썩은 뿌리를 찾아 뽑아 주기를 바란다. 파란 안경을 쓰면 온 세상이 파랗게 보이고 노란 안경을 쓰면 노랗게 보이는데, 만약 그런 안경을 썼다면 눈에서 그런 것을 벗겨내고 사물이 왜곡 없이 보이도록 눈을 밝혀 부디 그래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밝은 눈으로 어느 당이 다른 당을 더 많이 ‘욕하고, 비난하고, 헐뜯’는가를 찾아 그런 정당을 혼내주기 바란다. 그러며 자한당이 다른 당의 ‘장점을 찾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정당이 되도록 해 주기 바란다. 그래서 자신을 따라다니는 ‘독실한’ 또는 ‘신실한’이라는 수식어에 걸맞는 기독교인이 되어 주기 바란다. 그러면 국민들이 그대를 대통령으로 뽑아 줄 것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황교안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서고자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필자도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기독교인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독교인이지만 기독교에 조금이라도 특혜를 주거나 다른 종교에 불이익을 주지 않고 공평한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 교회도 기독교인이라서 표를 주는 것이 아니라 국정운영을 바르게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불교신자나 다른 종교인에게라도 표를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기독교가 소중한 것처럼 그들에게는 그들의 종교가 소중하다

글의 끝을 맺고자 한다. 한국교회언론회는 예의 논평에서 ‘불교가 소중하다면 이웃 종교인 기독교도 소중하다’고 했다. 이를 뒤집어서 말하면, ‘기독교가 소중하다면 이웃 종교인 불교도 소중하다’가 되는데, 이 또한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이웃 종교인 불교에 대해 어떻게 했는가. 일부 지각없는 신자들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땅밟기’라는 이름으로 불교계에 상처를 주었던 일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봉은사 땅밟기’ ‘동화사 땅밟기’ 등이 그것인데, 멀리 미얀마까지 가서 사찰 법당에서 예배를 보는 일까지 있었다. 그런가 하면 사찰에 난입하여 불상을 훼손하는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우리는 이번 조계종 총무원의 무례와 BBS의 무개념을 나무라기 전에 우리가 불교에 저질렀던 잘못부터 반성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그들만 탓한다면 우리는 그들보다 나은 것이 없으며 그야말로 내로남불이 된다. 무슨 일이 됐건 그게 누가 됐건 남을 탓하거나 비난하려면, 그러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보는 것이 순서이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7:3)

 

 

 

임종석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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