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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브리스카야

기사승인 2019.04.10  23: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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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사람들에게 낭만이고 바람이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더 그런 것 같다. 부산을 출발해서 블라디보스톡, 바이칼 호수를 지나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달리는 기차여행은 멋있을 것 같다. 실제는 그렇지 않다. 침대 넷의 좁은 칸에서 차창 밖 자작나무숲을 바라보며 일주일 이상을 지내야 한다. 그렇게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것도 낭만이라면 낭만이겠다.

철도는 근대화와 제국주의 팽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1891년 착공했다. 연해주를 확실히 지배하고 인구를 늘리기 위해 연해주 철도건설도 서둘렀다. 1897년 먼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까지 철도를 놓은 다음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연결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북쪽 아무르 강을 향해 달리면 하바롭스크(Khabarovsk)에 닿는다. 12시간 거리다. 열차는 다시 서쪽으로 꺾어 달린다. 그러면 비로비잔(Birobidzhan)과 블라고벤첸스크(Blagoveshchensk)가 나오고, 계속 달리면 치타(Chita)를 거쳐 이르쿠츠크(Irkutsk)에 이른다.

꺾어서 달리지 않으려면 블라디보스톡에서 하얼빈을 지나 치타로 달리면 된다. 만주를 가로지르는 이 철도가 동청철도(Chinese Western Railway)다. 러시아가 소유하다가, 일본이 만주를 지배하자 만주국에 팔았다. 1909년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실행하러 블라디보스톡에서 하얼빈까지 간 길이 동청철도다.

철로가 꺾어지면 나오는 두 지역, 비로비잔과 블라고베센스크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비로비잔은 유대인의 집단 이주 지역이고, 블라고베센스크는 찬란했던 항일 독립운동이 슬픈 역사로 끝난 곳이다. 바롭스크 서쪽은 자치주다. 비로비잔이 주도인 이곳 이름은 ‘예브리스카야 아브토놈나야 오블라스치’. 유대인 자치주라는 뜻이다. 유대인의 집단 이주는 고려인의 강제이주 이전에 이미 있었다.

포그롬(pogrom)이라는 단어가 있다. 대학살이나 대약탈을 뜻하는 낱말로 본래 러시아 말이다. 러시아는 근대 국가로 도약하면서 유대인들을 등용했다. 그러다가 1881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 암살사건 공모자 중 유대인이 끼어 있다는 소문이 났다. 황태자 알렉산드르 3세는 그 동안 러시아인의 재산을 약탈해온 자들이 유대인 집단이라며 분노했다. 도시건 마을이건 닥치는 대로 유대인을 때려잡았다. 이때부터 포그롬은 일상이 됐고 유대인들은 공포에 떨었다.

포그롬이 잦아드는가 싶더니 다시 폭발했다. 1903년 몰도바의 키시네프(Kishinev)에서 한 러시아 아이가 살해됐다. 한 신문이 유대인의 소행일지 모른다는 기사를 냈다. 다른 신문이 덩달아 황색 기사를 냈다. “유대인은 유월절 빵을 만들 때 그리스도인 아이의 피를 쓴다.” 폭동이 일어났다. 사흘 계속된 폭동으로 유대인 수백 명이 죽고 다쳤다. 살해 용의자는 아이의 친척이었는데도, 죽이라는 함성과 함께 유대인들을 사냥하고 집을 불태웠다. 경찰은 방관했다. 이 사건으로 시오니즘은 전환기를 맞았다. 유대인 수만 명이 러시아를 떠나 서유럽과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 

러시아 황제는 계속 유대인들을 격리하고 차별했다. 상황이 이러니, 유대인들이 볼셰비키 혁명 대열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레닌이 유대인 자손인 것은 비밀이었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레닌과 함께 볼세비키 당을 이끌었던 트로츠키도 유대인이었다. 초기 러시아 공산주의 운동과 그들은 불가분리의 관계였다. 유대인들은 혁명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24년 레닌이 죽자 스탈린이 정권을 장악했다. 스탈린은 반유대주의자였다. 그는 레닌이 유대인인 것을 철저히 숨겼다. 국가주도의 경제개발 정책을 추진했던 스탈린은 유대인 노동자 정착촌 건설을 계획했다. 처음 거론한 크리미아(크림) 반도는 취소되고, 하바롭스크 서편 지역이 결정됐다.

유럽 쪽 러시아에서 포그롬을 겪던 유대인들은 멀고먼 시베리아를 지나 동쪽으로 이주했다. 1928년 첫 유대인 공동체가 이주했고 1934년에는 자치권을 받았다. 그곳은 추운 곳이고 습지가 많은 곳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문화와 풍습을 지킬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아무르 강을 건너면 연해주와 맞닿은 그 지역은,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지나가고 한인들이 오고 가는 길목이었다. 유대인들은 이미 정착한 한인들에게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웠다.

유대인 이주는 증가하여 한 때 인구가 4만 명인 적도 있었으나, 이스라엘 건국(1948년)과 스탈린 사망(1953년)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대거 이스라엘로 이주해서 현재는 일이천 명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

유라시아를 가로질러 이주하면서 유대인들은 심한 고생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유럽 쪽에 살았더라면 독소전쟁(2차 세계대전)을 겪었을 것이고, 소련 남서 지역을 휘저었던 독일군에게 떼죽음을 당했을 것이다. 앞을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역사인가 보다.

 

박효원 hyo1956@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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