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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라고 무시하지 말자

기사승인 2019.04.12  12: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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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주인이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하면 이 건물이 무법천지로 변한다. 곧 깨진 유리창처럼 사소한 것들은 사실은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한다.”

마이클 레빈의 말이다. 그의 책 <깨진 유리창의 법칙>에서 한 말이다. 깨진 유리창 법칙은 고객이 겪은 단 한 번의 부정적 경험, 한 명의 불친절한 직원, 매장 벽의 벗겨진 페인트칠 등 기업의 사소한 실수가 결국은 기업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1982년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을 <월간 애틀란틱>에 발표함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요즘 받은 한 메일에서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이야기를 읽었다. 소개하면 이렇다.

어느 마을에 400년이 넘은 나무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거목이었다. 그동안 나무는 참 많은 일을 겪었다. 수십 차례의 산불의 위험도 있었고 자그마치 14번이나 벼락을 맞는 고초도 겪었다.

그러나 나무는 그 많은 위험 속에서도 긴 시간을 꿋꿋이 견뎌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굳건한 나무가 앞으로도 더 오랜 시간 동안 당당히 서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 강대한 거목이 말라 죽었다. 당황한 사람들이 알아낸 원인은 작은 딱정벌레였다.

나무속 줄기를 갉아 먹는 딱정벌레 때문에 결국 나무 속살에 상처가 생기게 되었다. 이 거목에 비한다면 흔적조차 보이지 않던 상처들은 조금씩 모이면서 회복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가 된 것이다. 결국 나무는 죽었다.

아주 작은 것. 우리는 작은 것은 무시해도 된다는 암묵 속에서 산다. 거대함을 좋아하는 우리는, 특히 우리 민족은 사소함에 대한 배려가 적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교각의 이름에는 여지없이 ’대(大)‘자가 붙어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금문교‘와 ’한강대교‘, 이 차이를 아는가. 그건 실제 크기의 차이가 아니다.

재벌이 살면 나라 경제가 산다. 대형교회가 살면 한국교회가 산다. 이런 무지막지한 이론이 이미 우릴 지배하고 있다. 세상이 교회를 보는 눈도, 교회가 세상을 보는 눈도 똑같다. 큰 것만 보인다. 어느 목사가 바른말을 하면 저 목사 교회 몇 명이나 모이는데 그리 큰 소리야, 한 마디면 잠잠해질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산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의 죽음은 어떤 거였을까. 예수의 십자가는 어떤 것이었을까. 거대한 것이었을까. 작은 것이었을까. 결과는 어마어마한 인류의 속죄이지만, 십자가는 구레네에서 온 청년 시몬이 지고도 남을 작은 것이었다.

십자가가 한 사람을 달아맬 정도의 크기이지만 예수는 그 십자가를 짐으로 인류를 구원하셨다. 교회가 작다고 믿음이 작은 게 아니다. 초라해 보여도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아무리 대단해도 작은 것에 구멍이 나면 모두가 죽는다.

예수의 십자가를 묵상하는 이때 우리 속에 난 신앙의 구멍을 점검해야 할 때다. 아주 작아서 보이지 않는 작은 구멍일수록 더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이제 눈을 씻고 우리 신앙에 난 작은 구멍을 보자. 그리고 메꾸자.

 

   
▲ 김학현목사

김학현 nazunja@gmail.com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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