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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예배에 목숨 걸지 말라

기사승인 2019.04.15  06: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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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 장사'의 함정

간혹 보면 "예배에 목숨 걸라"고 열변을 토하는 설교자들이 있다. 아울러 "설교에 목숨 걸라"고 강조하는 목회자도 많다. 물론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예배가 중요하고 설교도 중요하다.

 

일상의 삶이 예배다

문제는 이게 다소 과장하는 측면이 크고 더 나아가 이를 종교적 목적으로 악용하는 목회자가 많다는 점이다. 나는 이런 사상을 '예배주의'라고 분류하고 싶다.

만일 그 예배의 정의가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의미한다면 나는 그런 생각을 적극 지지하며 마음으로 동의할 것이다. 그것은 진정으로 성경이 가르치는 '거룩한 산 제물(롬12:1)'로서의 합당한 예배를 실천하는 것이기 떄문이다.

반면에 실제 현실은 크게 다르다. 상당수 설교자들이 말하는 예배란 주로 '공예배'다. 그리고는 그 예배를 교인 동원의 수단이나 헌금 유도의 용도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단이나 사이비로 갈수록 이런 현상은 극심하고 요즘은 심지어 소위 정통이란 교회들도 그것을 열심히 따라하고 있다. 일단 교인수 늘리고 돈 걷는데는 그 예배라는 거룩한 이름의 약발이 제법 잘 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과연 예배가 사람을 바꾸는 것일까. 사람이 예배를 바꾸는 것일까? 어느 것이 더 바른 순서일까.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고자 한다.

우선 한국인의 생활에 뿌리 깊은 무속 신앙을 살펴 보자. 자기 인성이나 생활은 바꾸지 않은채 굿이나 제사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평소 하고 싶은 대로 욕심 그대로 살면서 돈이나 정성을 바쳐 굿하고 제사하면 삶이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 이게 바로 전형적인 제사 신앙이나 주술 신앙이다.

 

예배주의는 제사주의의 아류

구약의 유대 백성들도 이와 비슷한 오류에 빠진 적이 많았다. 자기들 생활 속에서는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며 제멋대로 살면서도 성전 제사나 절기만 잘 지키면 그걸로 종교적 의무를 다 한 것으로 간주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이제 제물 타는 냄새에는 구역질이 난다. 초하루와 안식일과 축제의 마감날에 모여서 하는 헛된 짓을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사1:13, 공동번역)."고 하셨을까.

여기서 '헛된 제물'이란 그것이 손상된 제물이란 의미가 아니다. 제물 자체는 아주 멀쩡하지만 그 제물을 바치는 너희 행실이 아주 틀려먹었다는 걸 뜻한다. 그 뒤의 구절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1:16)"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현대 교회의 예배주의자들은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한다. "영혼이 살아나려면 예배부터 변화시켜라", "예배하는 자리를 단 하나의 목숨처럼 사모하라", "준비하는 예배에 은혜의 홍수가 범람한다", "우리는 예배만으로 충분하다", "다양한 예배 체험으로 영적 희락을 발견하라", "메마른 영혼이 예배의 강물에서 펄떡이게 하라", "예배는 인생 최상급의 사명이며 복의 통로다" 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숨차다. 그리고 "예배의 자리를 지키면 삶의 현장에서도 승리한다"는 이 마지막 구호에 그 본심이 들어 있다.

나는 지금 공예배가 필요 없다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마치 하나님은 교회당 건물 속에만 또는 주일 아침에만 특정 장소에 임재하시는 것처럼 허풍을 떨며 오히려 그 순수한 예배를 종교적 이권으로 오용하고 악용하는 일부 예배주의자들의 간교함을 지적하는 거다.

 

행실을 고쳐야 바른 예배다

과연 예배의 자리를 잘 지키면 삶의 현장에서 승리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자기 행실이 바뀌지 않는 신도는 매주 교회 마당만 열심히 밟고 있을 뿐이다. 그건 자기에게도 세상에게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 고작 성직자들 배를 불리는데만 도움이 된다. 도리어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역겨워 하실 뿐이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이런 공예배 중심 사상을 글자 그대로 따르는 맹신도들이 많다는 사실에 있다. 순진한 사람들은 예배만 잘 하면 삶이 해결되고 큰 복을 받는 것으로 오해한다. 마치 무당에게 돈 많이 바치고 큰 굿을 할수록 효험이 크다는 논리와 같다.

결론은 지금 순서가 바뀌었다는 거다. 지금 현대 예배는 인간을 바꾸는데에 크게 실패하고 있다. 오히려 스스로 행실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 그러면 예배는 저절로 바뀌게 될 것이다. 수십 년 동안 교회 다니며 예배해도 왜 만날 그 모양 그 꼴일까. 왜 동네 교회마다 예배가 그렇게 넘치는데도 방송에 보도되는 파렴치 범죄자들은 교회 직분자들 투성이일까.

평생 예배하고 심지어 평생 설교를 하고 산 사람도 잘 안 바뀐다. 교회 비리는 거의 다 설교자들이 저지르고 있다. 그런데 그런 예배에 참석하여 그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쉽게 바뀌겠는가. 웃기지 마시라. 설교로 사람 잘 안 변한다. 수십 년 동안 설교한 횡령, 표절, 학력 사기, 성추행, 세습 목사들이 그 생생한 증거다.

진정 공예배에 '목숨'을 걸 만한 힘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차라리 그 힘으로 먼저 성도다운 삶에 목숨을 걸기 바란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인애를 더 원하신다. 그러니 하나님의 정의에 목숨 걸고, 신자의 소명에 목숨 걸고, 이웃 사랑에 목숨을 걸라는 거다. 그리고 관습적인 설교 중독에서 벗어나 자기 스스로 하나님을 대면하여 기도하고 성경을 읽어야 비로소 삶이 점차 변화할 것이다.
 
그러면 주일마다 강단에서 설교자가 은혜 받으라고 굳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지 않아도 저절로 모든 예배에 은혜가 차고 넘칠 것이다.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 pixabay.com

신성남 sungnam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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