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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오 빌라도, ’무죄‘ 변호’에 대한 반론

기사승인 2019.04.18  1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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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택규(UMC 목사)

수난절 시즌이 되면, 예수 수난에 관련된 설교들이 많다.  지남주 어떤 목사님이 설교에서, 빌라도는 “예수 처형에 죄가 없다. 하필 그는 재수없게 그때 유대지방 로마 총독이 되어, 그도 하나의 십자가를 진 셈이다”라며 빌라도가 왜 ‘무죄’한지를 몇가지 성경에 기록된 사실들을 들며 설명했다.

저 유명한 노만 쥬이슨(Norman Jewison)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수퍼스타 지저스 크라이스트’ (Super Star Jesus Christ)에 보면, 1막, 11편에 ‘본디오 빌라도’가 등장한다.  그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나는 꿈에서 한 갈릴리 사람을 보았네,.... 나는 그에게... 물었네... 하지만 그는 아무 말이 없었네.  다음순간 성난 거친 사람들이 가득 모여들었네. 그들은 이사람을 미워하는  것처럼 보였네.... 그다음에, 나는 수억만의 사람들이 이사람을 위해 울고.... 그리고 내 이름을 들먹이며 나를 비난하는것을 보았네”(필자의 의역)

기원 26년경, 20대말(혹은 30대초)의 젊은 나이에, 본디오 빌라도는 티베리우스 황제에 의해 당시 로마의 속주인 유대지방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대체로 33년경, 유대의 대제사장 등 지도층에 의해 고소된 예수를 십자가 사형에 처했다. 그후 그는 2천년간, ‘수퍄스타’ 뮤지컬에서 그가 노래한 것처럼, 오고 오는 세대를 거치며, 기독교인들에 의해(그들의 사도신경에 기록되어 있는대로), 예수 사형 처벌의 책임자로 비난 받아오고 있다.

 예수 처형에서 빌라도에게 책임이 없다고 보는 관점은 지금도 강단에서 주장되어지고 있다. 그것은 또한 역사적으로 계속되어 있어 온 일이다.  빌라도는 여러해 후에 크리스쳔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심지어 에티오피아 콥틱교회는 빌라도와 그 아내를 ‘성자’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빌라도는 과연 ‘무죄’한 예수 십자가 처형에 아무런 책임이나 잘못이 없을까?  만일 빌라도를 법정에 세운다면 배심원단은 그를 무죄라고 할까 유죄라고 평결할까?  ‘교회’라는 ‘배심원단’은 그에게 ‘유죄’를 선언해 왔다.  교회의 그 ‘유죄 선언’은 틀린것인가?

빌라도를 변호하는 측에서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데는 몇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빌라도가 예수의 집회에 대하여 단속하거나 탄압하지 않은 점을 내세운다.

하지만 당시 로마제국이 방대한 영토를 다스리면서 내세운 정책은 ‘팍스 로마나’(Pax Romana)였다.  로마 황제에게 복종하고 로마에 항거만 하지 않으면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포용정책’을 썼었다.  그래서 점령지, 속지 주민들의 언어, 문화, 풍습, 종교활동에 대해서는 대체로 자유를 주고, 간섭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와 그 추종자들은 로마에 항거하지도 않았고 ‘반 정부적’ 태도나 ‘반란’ 요소 같은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로마황제에게 세금바치는 문제에 대해서도 예수는 “가이사Caesar)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태도를 취했다. 예수도 때로는 지도층에 향하여 강한 비판과 공격을 했는데, 그 대상은 주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었다.  로마황제나 로마제국에 화살을 겨누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빌라도총독이  예수의 집회나 활동에 대하여 간섭하거나 탄압할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예수의 활동범위는 대체로 수도 예루살렘에서 거리가 먼 북쪽 변방, 갈릴리지역이었다. 그곳은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의 관할지역이다.  총독에게 항상 보고되는 정보에 예수는 전혀 로마제국에 위험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빌라도가 예수의 집회에 대하여 탄압하지 않았다는것이 그의 ‘무죄’의 조건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유대 지도층에 의해 극형에 처하라고 고소된 예수를 빌라도는 석방시키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사형시킬만한 죄가 없음을 발견하고 그의 재판을 ‘기피’하거나 혹은 그를 풀어주려는 시도를 한것이 세 번쯤 있다. 첫 번째는 예수가 갈릴리 출신임을 알고 그를 갈릴리 분봉왕인 헤롯에게 보낸 것이다. 그것은 예수 재판을 피해보려 한것이였다. 두번째는 태형으로 처벌하면 유대인들이 더 이상 십자가형을 요구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여 39대를 때리는 무서운 형벌을 가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에게 더 혹심한 고통만 안겨주었을 뿐이다. ‘39대’ 태형을 당하면 매를 맞다가 죽는 사람도 많다. 세 번째 시도는 유월절 명절때에 시행하는 ‘특별사면’을 제시했지만, 유대군중은 바라바를 택했다. 그런데  빌라도는 이때 바라바와 예수 둘중 하나를 택하라고 군중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그가 만일 예수를 진정 석방시키려 했다면 총독의 권한으로 ‘예수를 유월절 특별사면시킨다’고 공포하면 되는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예수 사형의 책임을 면해보려고 비겁하게 군중에게 그 선택을 하게 했다.

빌라도가 예수를 풀어주려고 시도한데는 또 세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그가 볼 때 예수에게는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고, 다음은, 평소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에게 호의를 가졌던 그의 아내의 간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예수를 사람들이 신이 보낸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신을 두려워했다. 그러므로 ‘신이 보낸사람’, 또는 ‘신의 아들’로 불리는 사람을 죽였다가는, 신이 자기에게 어떤 벌을 내릴수도 있다는 두려움때문에, 그는 예수를 죽이지 않고 석방시키려 했던 것이다.  헤롯 안티파스도 세례요한을 감옥에 처넣었기는 했지만, 그를 죽이는 것은 처음에는 퍽 주저했었다. 그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물론 추종자들의 ‘민란’ 우려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무력으로 진압하면 되는 때였다.

그러면 빌라도의 치명적인 ‘과오’, ‘죄’는 무엇인가? 
그는 예수에게 아무런 죄가 없음을 알고도,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기 출세를 위해, 자기 이익을 위해, ’정의를 굽히고, 양심을 버렸다는 것이다.  빌라도는 예수를 몇마디 심문해보고는, 그에게 사형에 처하거나 어떤 처벌을 가할 죄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고소인인 제사장과 유대인들에게 “내가보니 이사람에게 죄가 없도다”(눅23:4, 요18:38)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죄가 없다면 당연히 ‘무죄석방’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만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했다. 그에게는 자기‘자리’가 하찮은 피점령지의 한 초라한 ‘광신 종교인’의 생명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예수라는 점령지 백성 하나쯤 희생시키는 것은 큰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당시 광대한 제국을 통치하는 로마황제는 거미줄같은 각종 정보망을 가지고 있었다. 각 속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 특히 그곳에 나가 있는 총독들에 대한 정보도 수시로 보고받고 있었다. 만일 속지의 ‘총독’이 일을 잘못 처리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면. (조사과정이 있지만) 대체로 목이 날라간다. 빌라도는 ‘예수 케이스’처럼 ‘치리’를 잘해서였는지, 10년씩이나 총독자리를 지킬수 있었다.)

한데 3세기말-4세기초에 활동왰던 역사가 요세프스는 빌라도의 말로는 행복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즉 빌라도는 극심한 고뇌와과 심적갈등 때문에 ‘자살’로 그의 생을 마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정치인들, 특히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들중에 (혹은 종교인들중에도) 빌라도처럼 ‘자기 자리를 지키기위해, 출세를 위해, 자기 이익을 위해’ 정의와 양심을 헌신짝같이 버리는자들이 있다면, 빌라도의 경우에서 엄중한 교훈을 받아야 할것이다.
 

김택규 petertk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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