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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강제이주 이전 개신교 선교

기사승인 2019.05.10  02: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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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동쪽은 이르쿠츠크가 중심이었다. 그러다가 극동(프리아무르)지역을 분리했다. 극동지역은 하바롭스크가 중심이었고, 군 사령관이 주지사를 겸했다. 부동항 확보와 해군 강화가 목적이었는데, 1917년 공산혁명 때까지 이런 통치가 계속됐다. 1905년부터 1910년까지 극동 지역 군 사령관이었던 운터베르게르(Unterberger)는 심한 반감으로 한인을 대했다. 한인들 사이에서 원성이 높았다.

러시아는 연해주가 러시아 영토가 된 때부터 자국민 이민을 추진했다. 그러나 러시아인의 이주는 느렸고 한인들의 수는 빠르게 증가했다. 늘어나는 한인들을 위해 러시아 정부가 취한 정책은, 한인들을 정교회 신자로 만드는 일이었다.
한인이 ‘믿을 수 있는 러시아인’이 되려면 러시아 거주증(패스포트)으로는 부족하다. 정교회 신자가 되어야 한다. 러시아 정부는 한인 선교를 위해 정교회를 적극 후원했다. 1899년에는 정교회 블라디보스톡 교구를 설치하고 정교회 신자로 만드는 일을 본격화 했다.

한인들이 연해주로 많이 이주하자 한국 개신교회도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연해주 한인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 정교회와 한인 개신교회가 부딪쳤다.
한국 선교사와 미국 선교사가 연해주에 들어가 선교 활동을 시작한 해는 1905년경이다. 1907년 대부흥운동이 일어나고 조선예수교장로회는 독노회를 조직한 다음, 정식 선교사를 파송했다. 1909년 연해주로 파송한 첫 선교사는 최관흘 목사였다.

1920년 조선남감리회 선교연회도 시베리아 선교를 결의하고 블라디보스톡에 선교사를 보냈다. 감리교는 아직 독립 교단이 아니었다.
연해주 선교는 길지 않았다. 1930년에 이르러 장로교 감리교 모두 선교를 중지했다. 순교자도 나왔다. 현지에 남아 사역하던 감리교 김영학 목사가 소련 당국에 체포되어 목숨을 잃었다. 감리교 최초의 순교자다.

최관흘은 1909년 신한촌(新韓村)에서 한인 60명과 함께 장로교파를 조직했다. 그리고 연해주 지사 겸 총사령관인 운터베르게르에게, 일요일과 수요일 예배를 허가해 달라고 청원했다. 교인 중에는 이상설도 있었고 성재 이동휘도 있었다.
정교회 블라디보스톡 교구는 법을 통해 장로교 활동을 막으려 했다. 장로교파 설립 허가를 해주지 말도록 연해주 당국에 압력을 넣었다. 그러나 러시아 내무부 종교부서 이민족선교담당자는 연해주 지사에게, 조건부로 청원을 허가해 주라는 공문을 보냈다. 예배 장소와 시간을 지역 경찰에게 미리 알리는 조건이었다.
최관흘은 더 나아가, 한인촌이 블라디보스톡 내 새 한인촌(신한촌)으로 이주할 때 그곳에 교회 건축 부지를 달라고 청원했다. 또 허가가 났다. 장로교회는 부흥하며 연해주 다른 도시들로 퍼져나갔다.

최관흘의 설교는 연해주 한인들에게 힘이 됐다. 그는 감동적인 조선어 설교로 한인들을 끌어 모았다. 1909년 10명에 불과했던 신자가 두 해를 지나 800명으로 불어났다. 한인들을 부당하게 대하는 연해주 당국에 대한 불만도 급속한 교인 증가의 다른 이유였다.
정교회는 거꾸로 봤다. 개신교 선교사가 정교회에 입교한 한인들을 개종시킨다고 봤다. 개종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교회가 극도로 싫어한다. 러시아인이면 모두 정교회 신자다. 사도권을 이어받은 정통교회에서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러시아인을, 개신교회 따위가 어찌 개종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정교회는 늘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잘 나가던 연해주 한인선교가 갑자기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1912년 체포된 최관흘이 정교회로 개종한 것이다. 그의 세례명은 ‘인노켄티’였다. 충격을 받은 조선예수교장로회는 최관흘의 목사직을 박탈했다. 연해주 선교는 중단됐다.
연해주 교인들은 숨어서 계속 예배를 드렸다. 조선예수교장로회는 공산혁명이 일어난 1917년 이후에도 연해주 선교기금을 모금했고, 1922년에는 두 선교사를 파송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연해주가 계속 내전 중이어서 적군(혁명군)도 백군(반혁명군)도 연해주를 장악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최관흘은 1922년 복직되었다. 그러나 1926년 모든 한인 선교사를 소환하면서 연해주 선교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서울 주재 러시아 영사관은 많은 연해주 한인들이 개신교로 개종한 사실을 지적하며, 개종을 막기 위해서 한인에 대한 선교 강화를 러시아 종교청에 건의한 일이 있다. 중앙정부의 지시에 따라, 블라디보스톡 교구는 한인들에게 호소했다.
“정교회로 돌아오라! 러시아 황제의 은혜로 러시아 백성이 되었으면서, 개신교로 개종하는 것은 배신 행위다. 구원은 오직 정교회 신앙으로 얻을 수 있다.” 이런 내용이었다.
여기서 개신교와 정교회의 차이를 보게 된다. 개신교는 종교개혁 신앙을 이어받았다. 내가 믿어 내가 구원 받는 것이다. 근거는 성서다. 그러나 정교회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예수 때부터 이어진 전통을 지키는 정통 교회에 머물러야 구원을 받는 것이다. 이 정교회의 믿음은 지금도 변함없다.

박효원 hyo1956@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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