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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을 위한 변명

기사승인 2019.05.24  15: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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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의 불교 행사 참여 태도 때문에 말들이 많았다. 한 마디로 “그럴려면 왜 갔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황교안은 바보가 아니다. 그는 광주에 매 맞으려고 가는 것처럼 그럴려고 간 것이다. 자신의 결연한 신앙의 자세로 보수 기독교인을 결집 시키는 효과를 기대했을 것이다. 영남, 보수 기독교의 결집으로 자기 떡이 굳어지기를 기획한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자기가 얻을 표, 얻지 못할 표를 계산하는 것은 기본적인 산수이다. 그는 통합이 아니라 분열을 원한다. 분열해서 보수세력이 살아 남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공은 보수 기독교에 넘겨졌다. 비난을 받으면서도 결연한 신앙적 자세를 유지하는 황교안을 지지해 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이다. 이승만 장로, 김영삼 장로, 이명박 장로에 이어서 황교안 전도사 덕분에 한국 보수 기독교는 또 한번 시험을 당할 것이다. 이길 수 없는 시험을. 왜냐하면 보수 기독교의 한계는 명확하기 때문에.

한국 문화에서 체면은 지켜야 하는 방어적 의미가 있고 눈치는 끼어 들어가는 공격적 의미가 있다. 상급자나 나이 든 사람은 하급자나 젊은이들에게 권위에 흠이 되거나 약점을 잡히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언행을 조심해서 ‘체면을 지켜야’하고 한다면 아래 사람이 윗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눈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아랫 사람이 눈치 없이 놀아서 윗 사람의 체면이 깍이게 하는 경우도 있다. 30 여년 전 양구에서 목회할 때에 평소에 사병들의 정신무장 교육에 공로가 많다면서 사단장이 식사를 초대해서 갔었다. 그런데 식사 후 해프닝이 벌어졌다.

식사를 마치고 사단장과 장교 식당 현관을 나서는데 사단장 운전병이 20m 정도 떨어진 차를 끌고 식당 현관으로 오려고 했다. 아마도 평소에 사단장이 현관으로 나오면 차가 정확하게 대기하고 있도록 되어 있던 모양이다. 현관에서 나를 배웅하는 입장인 사단장은 차를 끌고 오려는 운전병에게 순간적으로 얼굴을 찡그리면서 왼 손으로 오지 말라고 신경질적인 제스처를 보냈다.

아마도 사단장은 짧은 대화 중에서도 내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를 파악하고는, 평소처럼 차가 자기 발 앞에 대령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30년 후에 똑같이 재현 되었다. 울산에 있는 현대중공업 노조 위원장과 식사를 하고 위원장이 나를 배웅하기 위해서 호텔 현관으로 나섰을 때 위원장은 주차장에서 자기를 향하여 다가오는 승용차에게 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는 것이었다. 나는 그제야 현대중공업 노조 위원장은 운전기사 딸린 승용차까지 제공 받는 자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나에게 자기가 운전사 있는 승용차를 타는 입장이라는 것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체면은 꼭 올려야 사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에 따라서 적당히 내려야 살 때가 있는 것이다.

이번 경우는 황교안이 예수의 체면을 크게 깍이게 만든 경우라고 하겠다.

 

지성수 sydneytax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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