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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교한 혀가 우는 사자의 송곳니보다 무섭다 (다니엘 6장)

기사승인 2019.06.16  19: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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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교한 혀가 우는 사자의 송곳니보다 무섭다 (다니엘 6장)

 

0. 다니엘 6장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현대인들은 ‘사단(Satan)’을 거의 무시하고 산다. 붉은 몸뚱어리, 기괴한 눈빛, 뾰족한 꼬리, 머리에 뿔 달린, 그런 사탄은 없다. 사단(Satan)은 간악한 생각과 간교한 말을 통해 우리 삶에 실재(實在)한다.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고 믿음을 훼방하는 영적인 존재다. ‘우는 사자처럼 간사한 여우처럼’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서 떨어뜨리는 단 하나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한다. ‘믿거나 말거나’ 이와 같은 사단의 모략을 분별하지 못하면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비참한 죽음을 면치 못한다. ‘사단아 물러가라!’ 예수께서는 ‘진리의 말씀으로’ 무지와 편견, 거짓과 참소, 전쟁과 분쟁, 환란과 고통으로 삶을 망가뜨리는 사단의 세력을 대적하고 힘써 쫓아내시는 일을 하셨다.

다니엘 6장은 단지 사자 굴에서 살아나온 신기한 사건이 아니다. 다리오왕은 사자 굴에 떨어진 다니엘을 향해 소리친다.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그대가 충성을 다 바친 그대의 하나님이 그대를 사자들에게서 구해 주셨소?-메시지성경) 다니엘의 구원은 ‘하나님이 구원하실 능력이 있는 분이신가?’라는 의문에 대한 응답이다. 다리오왕의 던진 이 질문은 오늘 우리가 삶의 위기 가운데 빠질 때 던지게 되는 질문을 대표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신뢰하고 의뢰하는 사람을 사단의 손아귀에서 건져내신다.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결코 저버리지 않으시는 까닭이다.

 

 

1. 사단의 참소

➀ (1절~3절)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 바벨론제국을 멸망시키고 메대-바사제국이 고대근동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다. 다리오왕은 총리 3인과 방백 120명을 세워 제국을 안정시키고 재정비하고자 했다. 왕은 다른 신료들보다 탁월한 다니엘을 ‘세워’ 나랏일 전부를 맡기려고 했다. 도리어 그 일이 화근이 되어 문제가 벌어진다. 다니엘의 유능함에 대한 왕의 인정과 칭찬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무리가 있었다. 동료들이었다. 사실 다니엘의 탁월함의 원동력은 하나님의 은사(선물)였다. (단1:17) ‘하나님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시기하는 대적이 나타난다. 성령의 역사하실 때 사단도 함께 역사하기에 더욱 겸비해야 한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잘 나갈 때, 승승장구하여 모든 일이 형통할 때 반드시 ‘주위 사람들로부터’ 시험이 찾아온다.

 

② (4절~5절)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 다니엘은 나랏일에 ‘허물과 치부가 없고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흠잡을게 없는 사람이었다. 지도자의 덕목은 사심(사리사욕)이 없어야 한다. 다니엘은 믿음만 좋은 게 아니라 세상일에도 충성스러웠다.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 트집을 잡아 흠집을 낼 수 없게 되자. 신앙생활을 문제 삼는다. (욥1:8)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사단이 욥을 참소한 까닭은 하나님의 인정하시는 욥의 믿음에 대한 공격이었다. 사단이 사자의 전략과 여우의 전략으로 공박하는 목적은 오직 하나다. 우리의 믿음을 공격한다. 죄로 인한 고난만 있는 게 아니라 믿음의 시련도 있다. 죄로 인한 고난은 ‘회개’해야 하고 믿음의 고난은 선한 싸움으로 ‘인내’해야 한다. 이 둘을 혼동하면 안 된다.

 

③ (6절~9절)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려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 밖으로는 보국안민의 대의를 내세우지만 속셈은 자기안위를 구하는 저의가 깔려있다. 겉으로는 안정적인 통치를 위한 제안 같지만 숨겨진 본심은 다니엘을 넘어뜨리려는 중상모략이었다. 사단은 간악한 마음(시기와 질투)과 간교한 혀(말)로 기량을 펼친다. 다수결이 정의가 아니다. 그럴 듯한 입바른 소리로 포장한 숨겨진 의도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마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주님을 위한 충언 같지만 본심은 십자가를 안지겠다는 의도다.(부활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배당은 은행 빚내서 지으면 안 된다’ 맞는 말인데 그 본심은 자신은 희생하고 헌신하기 싫다는 거다. 사단은 ‘그럴 듯한’ 말로 사람을 현혹한다. 말의 이면에 감춰진 본심을 간파할 수 있는 분별력이 요구된다. 열매로 드러난다.

 

 

2. 하루 세 번 감사기도

 

➀ (10절)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 다니엘은 자신을 잡으려는 함정임을 ‘알고도’ 죽음을 무릅쓰고 기도했다. 어떤 방해와 핍박에도 굴복하지 않는 불굴의 믿음이다. ‘행하던대로’ 잘 되면 할렐루야~하하 호호, 안 되면 원망과 불평하는 양은냄비 같은 신앙과 대비되는 비바람, 눈보라가 앞 길 막아도 상록수처럼 한결같은 믿음의 진수를 보여준다. 어떻게 기도했을까? ‘하루 세 번(시간을 정하고), 골방에서(정해진 자리), 무릎을 꿇고’, 무슨 기도했을까?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기도는 나의 필요를 구하는 간구만이 아니다. 바벨론 노예생활 중에서 건져내시는 하나님을 기억할 때 날마다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돌리지 않고는 못 견디는 거다. 무슬림은 어디 있든지 메카를 향해서 하루 세 번 기도하는데 우리는 생명, 건강, 물질, 삶을 허락하신 주님께 하루에 단 한 번도 기도를 안 해서야 되겠는가?

 

② (11절~13절)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이 일이 적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않는 규례대로 된 것이니라”

▶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적들은 저걸 어떻게 잡아 죽일지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가 왕에게 고발했다. 왕이 대답한다. ‘이 일이 적실하니’(적법하다) 규칙과 법으로 올무를 씌워 의로운 사람을 잡는 전략이다. ‘SLAPP’(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 공익을 위한 문제제기를 방해하기 위한 전략적인 소송)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이 예수님에게 안식일규례를 어겼다는 이유로 이적과 기사를 폄하하고 흠집을 내는 데 사용한 수법이다. (눅23:2)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소하여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예수를 죽이려고 누명을 씌워 빌라도에게 고소했다.

 

③ (14절~15절)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인하여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 내려고 힘을 다하여 해가 질 때까지 이르매”

▶ 왕은 다니엘을 고소하는 이들의 숨겨진 의도를 간파했다. 그를 건져 내려고 힘을 다하여 백방으로 노력했다. 모함에 빠진 것을 알고 구원해야 하지만 자신이 내린 법령을 스스로 어길 수 없는 진퇴양난의 딜레마(Dilemma, 兩刀論法)에 빠졌다.(읍참마속) * ‘하나님의 공의(율법)와 하나님의 사랑(용서)의 딜레마’다.(cf.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 왕의 명령을 어긴 아들에게 죄의 삯은 마땅히 사망(공의)인데 아들을 살리기 위해(사랑) 왕이 스스로 아들 대신 죄 값을 치르고 대신 죽음으로써 공의와 사랑을 모두 완성했다. 시험을 당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는지 의심하고 원망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변함없이 사랑하고 믿어주신다. 고난은 하나님이 능력이 없거나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단의 시험이다. 하나님을 원망과 불평할게 아니라 사단의 모략을 분별하고 더욱 믿음을 굳게 해서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다가 넘어진다고 부모가 대신 타 줄 수 없고 또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럼 영영 스케이트를 탈 수 없기 때문이다. 고난에도 내가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 고난의 순간에도 여전히 함께 아파하시며 우리를 업고 가신다.(모래 위에 새겨진 하나의 발자국은 내 발자국이 아니라 나를 없고 걸어가신 주님의 발자국이다)

 

 

3. 하나님을 바라라

 

➀ (16절~18절)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은 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 ‘사자굴에 던져 넣는지라’ 다니엘이 결국 사자굴에 떨어졌다. 우리의 삶에도 사자굴에 떨어지는 순간, 고난의 때가 있다. 인간적인 모든 노력이 끝장나고 누구도 도울 수 없는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으매’ 아무도 구해줄 수 없도록 봉인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돌무덤에 머문 순간이 겹친다. 모든 희망이 끝난 절망의 순간이다. (마16:21)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고난과 죽음이 끝이 아니고 제3일에 다시 살아나리라. 이것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다.

▶ 다리오왕의 다니엘을 향한 마지막 외침,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모든 것이 다 끝난 절망의 순간, 오직 하나님의 손을 의지해야 한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빠진 그 시간 동안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맟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폐하니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위기의 순간, 절망의 순간에 금식하며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이방인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

 

➁ (19절~22절)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로 가서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 왕이 질문한다. 다니엘이 대답한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서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이 사건은 단순히 사자굴에서 살아나온 신기한 사건이 아니다.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이 구원하기에 능하신지 아니신지,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를 드러내는 사건이다.

 

③ (23절)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 하나님이 다니엘을 털끝하나 상하지 않도록 지켜주셨다. 왜, 어떻게 이런 기적이 가능했나?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믿음은 의뢰다. 사자굴에 빠졌을 때 곧 삶에서 만나는 위기의 순간에 무엇을 의뢰하는지 드러난다. 의뢰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신뢰는 경외다. 경외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시선이다. (시편42:3~5)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이 사건은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바라보는, 우러러보는) 자들을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증거 한다. 단순한 예배당건축의 기적이 아니다. 돈 없어서 안 된다.(물질의지) 사람이 없어서 망한다.(사람의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지켜주신다.(승리하게 하신다)

 

 

4. 인생역전

 

➀ (24절)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더라”

▶ 자기들이 다니엘을 죽이려고 파놓은 함정에 자신들이 빠져서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타인에게 ‘함정을 파는 인생’은 자기 스스로 그 함정에 빠진다. 타인을 위해 ‘길을 내는 인생’은 자기 스스로 그 길을 걷게 된다. 속담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overreach oneself), 격언 ‘사필귀정’(처음에는 시비와 곡직을 가리지 못하여 그릇되더라도 모든 일은 결국에 가서는 반드시 정리로 돌아간다), 우리는 ‘의의최후승리’를 믿는다. (롬16:19) ‘너희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하나님이 속히 사단을 너희 발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때가 이르면 하나님께서 친히 사단을 멸하신다.

 

➁ (25절~27절) “이에 다리오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려...내 나라 내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찌니...사시는 하나님이요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시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 다니엘 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삶의 주관자 되심을 이방인이 다스리는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 사자 굴에서 구원하신 목적, 기적의 목적, 치유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나타내는데 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의 사자 굴에 빠졌다면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주여 나를, 우리 가정을 이 환란에서 구원하옵소서. 이 문제로 망하고 죽는게 아니라 나를 통해서, 우리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뚜렷하게 증거 하게 하옵소서. 믿음의 보고서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③ (28절) “이 다니엘이 다리오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 다니엘은 시대와 상황을 넘어(바벨론, 메대-바사로 권력이 바뀌어도) 끝이 아름다운 인생, 끝까지 아름다운 인생이었다. 시대와 상황은 변한다. 돈과 권력, 명예(인기)와 건강은 변한다.(영원하지 않다) 변하는 것을 의지하면 변하는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날, 자신이 의지하던 것들과 함께 무너져 내린다. 하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은 어떤 시대와 어떤 환경, 어떤 인생의 문제를 만나도 흔들리지 않는다. 다니엘처럼. ‘무섭게 바람 부는 날 물결이 높이 설렐 때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위에 지은 연고니라’ ‘비가오고 창수가 나는 날’에도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반석위에 세워지길 축복한다.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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