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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승리를 얻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다니엘 9장)

기사승인 2019.07.14  2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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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승리를 얻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다니엘 9장)

 

0. 다니엘 9장 요약

다니엘이 본 이상은 스룹바벨성전 건축의 전후에 벌어질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예언이다. 함축적이고 난해한 다니엘의 이상을 온전히 깨닫기 위해서는 ‘바벨론 느부갓네살에 의한 솔로몬성전의 파괴에서 바사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한 스룹바벨성전 재건까지, 헬라제국의 셀류코스왕조에 의한 스룹바벨성전 모독과 마카비가문에 의한 스룹바벨성전의 정화까지의 시대적 배경과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알아야 한다.

왜 다니엘은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때를 가리켜 ‘70이레, 7이레, 62이레’라는 은유로 기록했을까? 다니엘서는 수천 년 전의 것이고 특정한 상황과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한 것이지만 성경의 기사가 다 그런 것같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칠십 이레, 칠 이레, 육십이 이레’를 경험하고 있는 모든 시대와 상황에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동영상)

 

1.칠십년만에 마치리라

 

➀ (1절)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는 ‘메대 사람 다리오’다(단5:31). 바사왕 다리오1세(페르시아전쟁 1차 원정), 다리오2세(성전재건축 포고) 다리오3세와 동명이인이다.

 

② (2절 전반부)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 메대 사람 다리오원년은 바벨론 멸망했던 B.C 538년이다. 고레스 원년(B.C 537년) 포로 귀환령이 내려지기 약 1년 반 전에 벌어진 사건이다. 다니엘이 본 서책은 예레미야 25장11절 말씀이다. 말씀을 읽고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다. 말씀이 성취되기 위하여 기도했다. 예루살렘이 황무케 된 원인은 누누이 강조한대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무시하며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우상숭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징계는 멸망이 아니라 구원에 있다.

 

 

2. 다니엘의 기도

 

➀ (4절~7절)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욕은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날과 같아서...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다”

▶ 다니엘의 기도는 참회(회개)의 기도다. 타인(민족)의 죄악을 짊어지고 기도했다(대속, 중보) 다니엘이 사자굴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쉬지 않았던 이유다. 개인의 안위보다 민족의 구원 즉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길 위해 먼저 기도했다. 징계의 원인은 하나님이 사랑 없기 때문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패역(배은망덕)과 반역(배신)의 결과다. (6)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말씀하신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공의는 주께 수욕은 우리 얼굴로’ 마침내 판가름하신다.

 

② (8절~15절) “주여 수욕이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다마는...우리가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 ‘율법(말씀)을 행치 아니하였음이니다’ 불순종을 회개해야 한다.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임하였사오나 은총을 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 빨리 회개치 않은 완고함을 회개해야 했다.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듣지 않고 외면한 이유는 스스로 지혜 있는 체 오만했기 때문이다.

 

③ (16절~19절) “주여 내가 구하옵나니 주의 분노를 떠나게 하옵소서...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굽어 살피소서)...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함이오니...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 간구하기 전에 먼저 ‘회개’해야 한다. 회개하는 깊이만큼 새롭게 되기 때문이다. ‘들으시고 비취 시옵소서’ 기독교는 자력구원이 아니라 타력구원이다. 우리의 의(공로, 열심, 노력)가 아니라 주의 긍휼(은혜)을 구해야 한다.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소서’ 우리의 허물은 주님의 수치다. 나를 통해 주의 이름을 존귀케 해야 한다. 우리는 배반하지만 주님은 변함없이 신실하시다.

 

 

3.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

 

➀ (20절~23절)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찌니라”

▶ 기도가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위해서 기다리며 동시에 기도해야 한다. 기도할 때 역사하신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신다. ‘은총을 입은 자’ 하나님의 은혜 곧 하나님이 하신 일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도 언약이 성취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방해가 많기 때문이다.

 

② (24절)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 ‘칠십 이레’는 70*7(일곱 번씩 일흔 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때다. 여기서 지극히 거룩한 자는 바사 왕 고레스다. (에스라1:1) 바사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아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누가 하나님의 자녀냐?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사람이다.

 

③ (25절)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찌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중단16년)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마침내 완공될 것이다)

▶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여기에 해당하는 왕(지도자)은 스룹바벨이다. 그는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는데 시드기야왕의 손자(왕족)다. (학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는 스룹바벨 성전건축이 방해로 중단 되어 두 단계에 걸쳐서 이루어졌음을 증거 한다. ‘일곱 이레’는 (에스라3:11~12) 스룹바벨이 ‘여호와의 단 지대’를 놓기 까지다. 이민족의 방해로 16년 동안 성전건축이 중단된다. ‘육십 이 이레’는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작해서 완공될 때까지의 기간이다. 학개의 예언과 다리오왕에게 조서를 올려보내서 다시 성전건축이 시작되고 많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완공되었다. 학개의 예언 후 4년 후 (에스라6:15) ‘다리오왕 육년 아달월 삼일에 전을 필역하였더라’ 총20년의 기간이다.

 

④ (26절~27절)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 ‘육십 이 이레 후에’ 예루살렘성이 다시 중건되는 일을 다 마친 후에 여기에 나오는 ‘기름 부음 받은 자’는 성전 건축 곧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위해서 쓰임 받았던 이들(스룹바벨과 학개, 스가랴, 에스라, 느헤미야, 바사왕 고레스, 바사왕 다리오2세 등 하나님의 사람들)과 더불어 바사제국의 멸망까지 가리킨다.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헬라제국과 셀류코스왕조의 에피파네스다. 지난 시간에 본대로 제사와 예물을 금지, 미운 물건의 날개를 의지하며 성전을 모독하겠지만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을 예언한다. ‘장차 한 왕’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대적을 통칭한다. ‘칠십 이레,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많은 방해도 있지만 마침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최후승리를 증거 한다.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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