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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

기사승인 2019.07.18  14: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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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에서 목회를 하면서 느끼는 작은 행복이 있다. 소소하기로 말하면 아주 하찮은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사람들은 이를 ‘소확행’이라고 한다. 굳이 풀이하자면,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또는 그러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을 말한다.

난 요즘 그런 행복에 빠져 산다. 내가 심거나 가꾸지 않았는데 꽃을 보고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가까이 산재한 여러 수목원들에서 그럴 수 있고, ‘나문재 카페’에서도 그럴 수 있다. 심지어 길을 가다 흐드러지게 핀 수국을 보며 그런 행복을 가슴으로 안는다.

교회 입구 길가로 우리 교회 신 장로님께서 심어놓은 서양 채송화가 퍼지면 이런 행복을 얼마나 쉬 만끽할 수 있으랴. 벌써부터 가슴이 벌렁거린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는 길에서 꽃들의 춤 향연을 볼 수 있을 것이니. 흠.

꽃도 꽃이려니와 내 소확행의 압권은 바다다. 아내와 함께 해질녘 찾는 태안 해변길의 안면도 코스 산보는 안면도 살이 2년 반 동안 늘 해 온 빼앗기기 싫은 하나님의 은총 중 하나다. 아내와 달리 나는 그것만으로는 운동이 좀 부족하여 새벽기도회 후에 산등성이를 하나 넘는다.

물론 해변길이다. 두여해변에서 밧개해변으로 넘었다 돌아오는데 쉬는 시간을 제외하면 한 시간가량 걸린다. 바닷물이 빠지면 갈 때는 바닷가로 걷는다. 모래와 자갈, 날카로운 바위 둔덕을 넘는 길이 만만치 않지만 소요되는 칼로리를 생각하며 그렇게 걷는다. 돌아올 때는 깔딱 산을 하나 넘는다.

그런데 그 중간에 내 비밀 아지트(?)가 있다. 두여 전망대다. 절벽에 새워진 전망대 벤치에 앉아 쉬면서 간단 식사로 아침을 먹는다. 쉼과 아침끼니를 이 아지트에서 해결한다. 원래 이름이 ‘도여’인데 이는 도인들이 ‘도를 닦던 마을’이란 말에서 유래한다.

전망이 끝내준다. 근데 먼 바다 전망도 전망이려니와 그보다 더 아름다운 건 눈 아래 해변의 계곡이다. 지각변동으로 인해 생긴 지층이 구부러져 언덕을 이루고 있는데 만조와 간조 때 그 모양새가 다르다.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별난 세계, 그렇다. 한참을 앉아 물이 점점 빠지며 드러나는 계곡을 감상하는 것은 참 별난 행복이다.

밀물 때 그 아래를 보면 아무것도 없다. 계곡 언덕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소용돌이만 친다. 하지만 내 눈엔 이미 그 자리에 지층의 언덕이 있음을 안다. 그래서 물이 소용돌이를 친다는 걸 안다. 그래서인지 전망대에서 아래를 보면서 떠오르는 시가 있다.

눈으로 보고서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사람 맘이 사람 맘대로 되는
그런 사람 있다.

고창영의 〈그런 사람〉이란 시다. 밀물 때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난 그 언덕을 본다. 마음으로 본다. 안 보이지만 거기 있음을 믿는다. 불현듯 나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게 만든다. 보지 않고도 있다는 걸 믿을 수 있는 바다 속 언덕! 나는 누구에게 안 봐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일까.

 

   
▲ 김학현 목사

김학현 nazunja@gmail.com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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