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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넘어

기사승인 2019.08.09  21: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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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의 마음 깊은 곳에는 일본, 일본인에 대한 깊은 응어리가 자리 잡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우리 국민의 정신의 내부에서 그 응어리가 부글거리는데 작금 벌어지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침탈은 기름을 부은 격이다.

거리마다 ‘아베 아웃’, ‘일본 NO’ 하는 구호와 현수막이 거리에 나부낀다. 마음으로 동조한다. 하지만 구호로 일본을 저지할 수 없다. 물론 그리 생각하기에 보이콧이나 불매운동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의 정서가 하는 일은 반일이다.

이런 움직임은 당연한 국민운동이긴 하지만 좋은 방향으로의 결과와는 좀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반일, 그 언덕을 넘어 항일해야 한다. 항일, 그 언덕을 넘어 극일 해야 한다. 극일, 그 언덕을 넘어서 같이 가야 한다. 참 까칠하고 참 함께하기 너무 힘들지만 어쩔 수 없는 이웃이다.

항일하려면 그와 맞먹거나 더 큰 힘이 필요하다. 극일하려면 그들이 상대하기 힘들 정도의 막강한 힘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물론 그 힘은 경제일수도 있고 국제적 능력을 얻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승리는 같이 가는 것이다.

왜 이런 험악한 상황에서 후세 다쓰지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그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변호사였다. 그런데 일본인으로 200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우리 정부로부터 받은 사람이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은 독립 운동가들을 변호한 사람이다.

그는 독립유공자 박열의 아내인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일본인 독립유공자 중 한 사람이다. 일본인으로 독립유공자가 두 명 있는데 그와 후미코가 바로 그들이다. 후세 다쓰지는 관동대지진 후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와 학살 속에 체포된 박열과 그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를 변호한 변호사다.

1923년 관동대지진의 혼란 속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느니, 불을 놓아 일본인을 죽였다느니 하는 유언비어가 퍼지며 조선인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이 때 후세 다쓰지는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고 일본군과 경찰이 학살에 가담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독립 운동가들을 변호하고 식민지 정책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등 인간의 양심과 진실을 따르는 활동을 계속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그의 변호사직을 박탈했다. 후에 신문지법 위반으로 3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2년의 징역살이를 했다.

후세 다쓰지는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 못지않게 일본 정부의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끝까지 일본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조국을 사랑했기에 일본이 잘못된 길을 버리고 올바르고 떳떳한 나라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따듯한 하루’ 참조)

오늘 일본에 이런 이가 없다. 정부 각료는 한결 같이 아베의 대변자들뿐이다. 후세 다쓰지는 ‘나는 양심을 믿는다’는 말을 남겼다. 일제강점기 이후 가장 험악한 한일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이 때 왜 후세 다쓰지 같은 이가 없는지 아쉽다.

의미가 다르겠지만, 차제에 우리에게도 또 다른 후세 다쓰지가 필요하다. 민족감정을 앞세우는 이가 아니라 양심과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그리스도인이야말로 감정이 아니라 신앙과 양심에 따라 말하고 행동해야 하리라.

 

   
▲ 김학현 목사

김학현 nazunja@gmail.com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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