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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조용한 소리를 듣다

기사승인 2019.08.10  01: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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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허위단심으로 하나님의 산을 찾아가던 엘리야의 마음이 떠오릅니다.
이 여름, 주님의 부드럽고 조용한 음성(왕상19:12)을 듣고 싶습니다.
들뜬 마음 가라앉히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가늠해봅니다.
주님, 우리들이 평화의 바람, 생명의 바람이 되어
분단의 질곡 속에서 신음하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게 해주십시오. 아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은 바야흐로 바캉스 시즌이다. 바캉스는 ‘~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다’라는 뜻의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바캉스란 그러니까 분주한 일상을 잠시 떠나 비일상적인 공간과 정서 속에 머물며 자기를 비우는 행위와 연관된다. 사회가 요구하는 일과 자기의 쓸모를 입증하기 위해 해야만 했던 많은 일들을 떠나는 것은 그 자체로 해방감을 준다. 일상과의 거리두기, 자기 비움은 또 다른 생기를 모셔 들이기 위한 능동적 행위이기도 하다. 자기 비움의 계기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엘리야의 경우가 그러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야훼 사이에서 흔들리던 백성들에게 누가 참 하나님인지를 입증해보였다. 그리고 바알의 선지자들을 기손 강 가에서 도륙했다. 그 소식을 아합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맹세한다. 갈멜산의 엘리야라면 이런 위협 앞에 흔들릴 리가 없다. 그런데 뜻밖에도 엘리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급히 일어나 유다의 브엘세바로 도망친다. 영웅적인 용기를 보여주었던 엘리야의 처신에 적용된 단어들은 ‘두려워서’, ‘급히’, ‘목숨을 살리려고’, ‘도망하여’ 등이다.. 전형적인 약자의 모습이다. 엘리야는 영웅에서 졸지에 반(反)영웅으로 전락한 것 같다. 하지만 이게 인간이다. 어떤 일에 혼신의 힘을 다 쏟고 난 후에오히려 무력감이나 공허감에 빠지기도 한다.

뙤약볕 밑을 터벅터벅 걷다가 로뎀나무 아래 앉은 그는 무력감 속에서 하나님께 말한다. “주님,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내 조상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왕상19:4) 그런데 혼곤한 가운데 잠이 찾아온다. 잠은 두려움과 고독의 심연으로 내몰리던 그의 마음에 조그마한 틈을 만들어주었다. 그때 한 천사가 그를 깨운다. 잠에서 깨어난 엘리야는 자기 머리맡에 뜨겁게 달군 돌에다가 구워 낸 과자와 물 한 병이 놓여 있음을 보았다. 엘리야는 그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또 다시 잠이 빠졌다. 그가 잠든 동안 주님은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듯 그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고 계셨던 것일까? 주님의 천사가 다시 그를 깨우면서 “일어나서 먹어라. 갈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 하고 이른다.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리고 힘을 얻어서, 밤낮 사십 일 동안을 걸어 하나님의 산에 이르렀다.

그는 거기에 있는 동굴에서 밤을 보냈다. 종교학에서 ‘동굴’은 재생 속은 거듭남의 장소 혹은 참된 인식의 현관이라는 말이다. 일상과 구별된 그 자리, 그 가물가물한 관문에서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물으신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이 질문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도 아니고 ‘함’도 아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그가 누구인지, 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느냐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엘리야는 가슴에 울혈처럼 맺혀있던 말을 쏟아낸다.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던 자기 삶, 하나님과의 언약에 충실하지 못한 백성들에 대한 고발, 지붕 위의 참새처럼 외로운 자기의 처지에 대한 하소연이었다. 하나님의 질문과 엘리야의 대답은 이처럼 어긋나고 있다. 이 어긋남이 해소되기까지는 또 다른 절차가 필요하다.

“이제 곧 나 주가 지나갈 것이니, 너는 나가서, 산 위에, 주 앞에 서 있어라.” 이 명령은 출애굽 여정 가운데 벌어진 한 사건을 상기시킨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자기들을 이끌 신이라 경배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염증을 느낀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과 동행하지 않겠다 하신다. 모세는 하나님께 진노를 거두어달라고 청하는 한편, 그 일에 가담한 이들을 엄중하게 처벌한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백성과의 동행을 거절하신다. 모세는 하나님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마침내 동행의 약속을 받아낸다. 모세는 그 증거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청한다. 하나님은 그를 바위 위에 서 있으라고 하신 후에 그의 곁을 지나가셨다. 동행의 약속이 그렇게 가시화된 것이다.

엘리야는 새로운 모세가 되어 하나님 앞에 선다. 크고 강한 바람이 불었지만 하나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일어났으나 그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났지만 주님은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격정의 소용돌이가 다 지나간 후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열정과 환멸 그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그의 영혼을 고요히 가라앉혔다. 엘리야는 외투 자락으로 얼굴을 감싸고 동굴 어귀에 섰다. 그리고 새로운 소명을 듣고 역사의 현장으로 달려갈 용기를 회복한다. 삼복(三伏) 더위 한복판을 지나면서 우리는 무엇을 비워내야 할까?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김기석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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