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군포지방 성지순례 ‘신(新) 사도행전’2

기사승인 2019.08.19  22:49:07

공유
default_news_ad1

- 터키-그리스-이탈리아-스위스

지난해 4월, 13일 일정으로 터키-그리스-이탈리아-스위스를 다녀온 경기연회 군포지방의 성지순례를 소개합니다. 군포지방은 바울의 길을 따라 걸으며 그의 믿음과 선교의 유산을 보았고 이를 계승하려는 열망을 그들이 집필한 순례기 ‘신(新) 사도행전’에 담았습니다. 순례에 참여한 36명중 26명의 목회자와 사모들이 편찬한 군포지방의 성지순례 기록 ‘신 사도행전’을 6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다른 분들의 기고 또한 환영합니다. - 당당뉴스 편집부 -

차례
성지순례 자료집 편찬을 축하하며 (김경호 감리사)

Part 1 신사도행전 교회사적 배경
1 세계 3대 그리스도교를 찾아 (송병구 목사)
2 동방정교회를 아십니까 (김봉균 목사)
3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열과 화해 (이선재 목사)
4 WCC에 대한 오해와 이해 (천영태 목사)

Part 2 터키(Turkey)
5 비잔틴 문명과 오늘의 이스탄불 (김명환 목사)
6 성 게오르기오스 성당 (김경호 감리사)
7 이스탄불의 과거와 현재 (배승룡 목사)

Part 3 그리스(Greece)
8 그리스 한 눈에 보기 (이선미 목사)
9 이콘과 성상에 대해 알아봅시다 (배중장 목사)
10 메테오라와 수도사들 (이은파 목사)
11 바울의 2차 전도여행 (정봉용 목사)
12 성경에 나오는 그리스 도시들 (한희준 목사)

Part 4 이탈리아(Italy)
13 이탈리아 인상기 (주기석 목사)
14 바울과 선교지에 보낸 편지 (우명순 목사)
15 로마 박해와 순교의 역사 (김기흥 목사)
16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코 (임남선 목사)
17 피렌체와 르네상스 예술 (이상국 목사)
18 이탈리아의 발데제 교회를 탐방 한 후 (김종은 목사)
19 아름다움과 슬픔의 일교차 몬테비앙코를 읽다 (조성철 목사)

Part 5 스위스(Switzerland)
20 존 칼빈의 제네바 신정정치를 통한 신정국가 (박흥윤 목사)
21 종교개혁 500년 그 후<스위스 제네바> (최명관 목사)

Part 6 순례후기
22 에그나티아에서 산본으로 (우귀자 사모)
23 행복한 순례길, 소중한 시간들 (푸른초장교회 이혜영 사모)
24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이경미 사모)
25 신사도행전 후기 (김은영 사모)
26. 콜래트럴 뷰티 (이미옥 사모)

   
 

 

비잔틴 문명과 오늘의 이스탄불

 

평안교회 김명환 목사

 비잔틴 문명? 누구나 들어본 적 있는 말이지만, 그 이름을 제외하면 사실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비잔티움이 현재 터키 이스탄불의 옛 이름이며, 서기 330년 로마에서 분리된 동로마 제국으로 출발했던 비잔틴 제국이 15세기 투르크 족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천 년 이상 지속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항상 이슬람 문명과 헷갈리는 비잔틴 문명이 사실은 독실한 기독교 문명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비잔틴 문명을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무래도 성 소피아 성당일 것이다. 또한 이스탄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 역시 이곳이다. 성 소피아 성당은 현재 성 소피아 박물관이라는 정식 명칭을 가지고 있지만, 이곳은 최초에는 성당이었다.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규모 면에서도 세계 최대를 자랑하던 성 소피아 성당은 오늘날까지도 비잔틴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비잔틴 제국 시대에 그리스도교를 처음으로 공인하고 이곳에 거하기로 정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새로운 도시의 큰 사원’으로 325년 창건했던 성 소피아 성당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명에 따라 532년~537년에 다시 크게 개축되었다. 하지만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한 성 소피아 성당은 회교사원, 즉 모스크로 그 용도가 바뀌면서 성당을 둘러싸고 미나레트가 세워지고, 성당 안벽은 회칠로 덮이고 그 위에 이슬람교 코란의 금문자와 문양들로 채워졌다. 그런데 1934년 성 소피아 박물관이란 이름으로 정식 명칭을 바꾸면서 어떤 종교행위도 금지되었고, 복원작업이 진행되어 두꺼운 회칠이 벗겨지면서 성모마리아를 비롯한 비잔틴 시대의 화려한 흔적들이 드러났다.

성 소피아 성당의 중앙에 서면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기묘한 장면이 연출되는 역사적인 장소임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세계 8대 불가사리 중 하나로 독특한 건축 양식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나는 이곳에서 기독교를 철저히 배제하기 위해 회칠을 하고 이슬람 문자와 이슬람식 등을 장식하고, 정중앙에 있어야 할 재단을 메카방향으로 틀어 이슬람식으로 바꾸어 놓은 것을 보면서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이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며 경배드릴 수 있었으면 내 인생의 벅찬 감동으로 왔을 곳이, 그렇지 못하고 아픈 흔적으로 그냥 묵묵히 지켜 봐야하는 내 자신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리고 유명한 곳이기에 이곳의 아픈 과거에 대한 궁금증 보다는 현재 나의 모습을 추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있는 이 상황이 무언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비잔틴 시대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정성이 성 소피아 성당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표현되어지고 보여 지는 것이 전부는 아닐 수 있지만, 우리의 시각적 판단은 충분히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기에 부족하지 않았다고 생각되었다.

오늘의 이스탄불은 98%의 무슬림으로 이루어져있다. 이슬람교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모스크의 돔 모양일 것이다. 그런데 이 모양은 사실 비잔틴 문화를 흉내 낸 블루모스크에서부터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블루모스크는 오스만 제국의 제14대 술탄 아흐메트 1세의 지시 아래 건축가 시잔의 제자인 메흐메트 아아가 1609년 착공을 시작해 1616년 완공했다. 성 소피아 성당의 건축 양식을 모방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즉 기독교의 신앙으로 이루어진 비잔틴 문명이 지금의 이스탄불을 표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애써 기독교의 흔적을 지우려고 했지만, 결국 그들의 삶의 바탕에 있는 기독교의 흔적은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비록 지금의 이스탄불은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는 땅이지만, 하나님은 이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실 것을 나는 믿는다. 또한 그곳에서 하나님을 찾는 자, 예배하는 자, 찬양으로 영광 돌리는 자들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일으켜 세워지기를 소망하고 기대한다.

   
 

 

 

 

   
▲ 총대주교

게오르교 총대주교좌 교회 방문기

영은교회 김경호감리사

 

성 게오르기오스 성당(그리스어: Καθεδρικός ναός του Αγίου Γεωργίου 카테리코스 나오스 투 아이우 요르이우[*], 터키어: Aya Yorgi)은 터키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1453년까지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의 수도(당시의 명칭은 콘스탄티노폴리스)였던 이스탄불에서 아직까지 남아있는 그리스 정교회의 가장 으뜸가는 대성당이다. 1600년 이래 그리스 정교회의 총대주교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를 맡고 있으며,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는 오늘날 전 세계 정교회 신자들의 영적 지도자로 인식되고 있다.

성 게오르기오스 성당은 옛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역사적 중심부였던 북서부였던 현 이스탄불의 페네르(전통적으로는 판나르라고 하며, 터키어로 등대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그 기원은 고대 오스만 튀르크어로 그리스를 뜻하는 단어 페나르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성 게오르기오스 성당은 현재 동방 정교회 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에 비해 비교적 규모가 협소한 성당이다. 그 이유는 모든 비(比)이슬람교의 건물은 이슬람교의 건물보다 작고 간소해야 한다고 규정한 샤리아(이슬람법)의 영향 때문이다.

성 게오르기오스 성당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개방되지만, 엄중한 보안 검색을 거쳐야 한다. 방문객은 보통 그리스와 기타 정교회 나라들에서 오는 사람이 많다. 성당 뒤편에는 총대주교청과 총대주교청 산하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총대주교좌가 되기 전에는 수도원의 부속 성당이었으며, 건물의 외관은 간소하지만 실내는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나는 사실 동방 정교회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 못하며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동방정교회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와의 만남에서 정교회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대주교의 권위에 놀랐다. 그의 말씀중에 대한민국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남북의 문제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교황 처럼 대주교의 권위가 대단함을 느끼며 오늘날 한국목사의 권위를 생각해본다

금번 군포지방 성지 순례를 계획하면서 많은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은혜주셔서 지방 교회들과 각 기관 그리고 장로님들의 협력으로 넉넉히 행사를 마칠수 있게 되어 감사했다. 특히 준비위원들의 세밀한 준비를 칭찬해 주고 싶다

신 사도행전의 성지순례가 목사님과 사모님 모두에게 오래도록 기억될수 있기를 바라며 끝으로 사정상 함께하지 못한 목사님,사모님들께 아쉬움을 남기며 자랑스런 군포지방이 되길 기원한다

 

   
 
   
 
   
 
   
 
   
 

 

 

이스탄불의 과거와 현재

 

참좋은교회 배승룡 목사

 지금으로부터 천년전 터키 땅에는 터키 사람들이 한명도 살지 않았다고 한다. 몽골 초원에 유목민으로 살다가 점점 좋은 땅으로 서쪽으로 남쪽으로 이동해 오다가 6세기, 7세기 사우디에 도착하면서 이슬람 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이 왜 받아들이기 쉬웠냐하면 본인들이 섬기고 있던 신의 개념과 이슬람에서 이야기하는 신과 비슷한게 많았기에 이슬람에서 알라신이 유일신이고 창조주다 하니 우리가 믿고 섬기는 신과 별반 다르지 않고 이름만 다르다 생각하여 이슬람 종교를 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당시 이슬람 종교를 받아들이고 개종을 하게 되면 특혜를 주어 승진과 출세도 얻을 수 있었기에 이들은 사우디를 지나쳐 오면서 이슬람종교를 받아들이고 무슬림들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상태에서 처음들어오게 된 터키 땅에는 동로마제국이 지배하고 있었기에 로마와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땅을 조금씩 조금씩 빼앗아가기 시작하면서 터키인들이 처음 발을 들인 것은 1071년이라는 불과 천년이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날 터키 쪽으로 성지순례를 많이 오게 되는데 바울사도가 전도를 하며 돌아다니셨던 곳들이 보려고 오지만 막상 성지순례와서 보면 제일 안타까워 하는 것이 그렇게 바울사도가 힘을 다하여 열심을 다했던 그 땅에 98% 이상이 무슬림 이슬람종교를 믿는 사람들로 채워 있다는 것에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는 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때 당시 있었던 그리스도인들이 배교를 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떠나 이슬람종교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전에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오스만제국에서 몰아내고 죽이고 쫒아내고 한 번에 쫒아낸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큰 도시 유목민으로 살아오다가 정착해서 터키를 큰 도시를 만드는 것이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정교회 총본사를 정복했던 술탄(북한의 김정은 위치) 정치 종교적으로 최고권력자인 술탄이 각 종교들이나 각 민족마다 ‘밀레트’(millet) 라는 할 수 있는 권한을 그리스정교에 쪽에도 직접 주게 되었다고 한다.

‘밀레트’(millet)란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 이 말은 주로 그리스도교도와 유대교도 같은 특정한 비이슬람교 소수집단을 가리켰으며 여러 이 민족으로 구성된 오스만 제국 시대(1300경~1923)에 밀레트는 자치권을 지닌 종교 공동체를 뜻했다. 밀레트는 자신들의 고유한 법률을 가졌고 종교지도자를 수반으로 삼았으며 이 지도자는 중앙정부에 대해 특히 세금 납부와 지역 내 치안확보와 같은 책임과 의무를 졌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각 밀레트는 외부 간섭 없이 공동체간의 회의(meclisimilli)를 통해 자신들의 업무를 처리함으로써 중앙정부가 부여하지 않은 사회·행정에 대해 책임을 졌다고 하며 1856년부터 오스만 제국이 취한 일련의 개혁명령으로 모든 시민에게 세속법 체계가 도입되어 ‘밀레트’의 행정자치권은 대부분 상실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처음에는 그 땅에서 같이 서로 어울려 살다가 시대가 좀 지나고 지나면서 그전에 같이 어울려 살았던 사람들도 떠나게 되고 내쫒게 나가게 되면서 1950년대 까지만 해도 그리스 사람들이 있었으나 현재는 터키 땅에 거의 없는 상태라고 한다.

지금도 상당한 그리스도인들이 성지순례를 오게 되면 터키 이스탄불에서 동로마제국과 오스만제국의 유적을 보는 시간을 갖지만 이스탄불 일정이 가장 힘든 곳이 라고 한다. 왜냐하면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제 지구여서 일방통행이 많고 길들이 좁기에 버스가 진입하기에 어려워 첫날부터 도보로 다녀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스탄불을 경험해보니 결코 만만치 않은 일정이었다. 그렇지만 바울사도의 꺼지지 않은 그 땅을 향한 복음의 열정을 보게 되면서 힘과 은혜를 얻게 되었으며 지금도 이슬람과의 보이지 않는 영적싸움은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신사도행전의 성지순례의 길이였다.

 

   
 

 

   
 
   
 
   
 

 

 

당당뉴스 webmaster@dangdangnews.com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