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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호세아 4장 1절~19절

기사승인 2019.09.22  18: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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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호세아 4장 1절~19절

 

0. 호세아 4장 요약

호세아서는 크게 2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 선지자 호세아과 그의 아내 음란한 고멜을 통해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의 실상을 실 예로 제시한다. 2부는 하나님께서 행음한 북이스라엘을 향해 선포하시는 말씀이다. 호세아 4장은 총 9편의 설교 가운데 첫 번째 예언이다. 하나님을 떠난 북이스라엘의 죄악을 9가지로 고발하며 죄로 인한 참혹한 결과를 증거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경외’, ‘준행’, ‘축복’으로 이어지는 심플한 삶의 기본 법칙을 가리킨다. 이 지식을 잃어버리면 번영과 성공이 복이 아니라 도리어 독이 된다.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렸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방신을 섬기는 제사에는 신전창기들이 있었다. 본래적인 능력이 없으면 다른 보상물을 주어 대리만족을 얻게 한다. 한마디로 제사보다 젯밥으로 관심을 끄는 행위다. 북이스라엘의 죄악은 예배를 안 드린 게 아니라 잘못 드린 것이다. 하나님 안 믿는 게 아니라 잘못 믿는 것이다. 길갈과 벧아웬은 한때 이스라엘의 성지였지만 결국 산당을 세우고 금송아지를 세운 우상숭배의 본거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본래적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거룩한 예루살렘성전도 무너뜨리신다.

 

 

1.이스라엘의 죄악

 

➀ (1절상)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죄악을 낱낱이 고발하신다. ‘이 땅의 거민’ 약속의 땅에 거하는 선민, 택하신 백성들이 축복을 빼앗긴 원인을 증거 하신다. 우리는 왜 이 지경이 됐는가, 성찰을 요구하신다. 북이스라엘의 죄악을 총 아홉 가지로 열거하는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세 가지 죄악, 이웃과의 관계에서 일곱 가지 죄악으로 기록한다.

 

② (1절하~2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 ⑴ ‘진실도 없고’ 성실과 신실, 충성대신 배신과 배은망덕이다. ⑵ ‘인애도 없고’ 히브리어로 헤세드는 하나님의 사랑, 은혜와 긍휼이다. 은혜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지 않았다. ⑶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경외’다. 경외는 준행, 준행은 축복으로 이어진다. (신28:6) ‘네다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 (신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그 반대도 성립한다. 이것이 신앙의 근본이자 기본이다.

▶ ⑷ ‘오직 저주’ 훼방하는 말이다. (시109:17~20)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하더니 저주가 물같이 그 내부에 흘러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 뼈에 들어갔나이다...악담하는 자가 여호와께 받는 보응이니이다’ ⑸ ‘사위’는 거짓말과 위선, 속이는 것 (잠11:1)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⑹ ‘살인’은 타인을 칼로 해치는 것뿐만 아니라 말로 타인을 음해하는 것을 가리킨다. ‘촌철살인’(寸鐵殺人)과 같은 악성댓글이다. ⑺ ‘투절’은 도적질, 남의 물건을 훔치고 빼앗는 것이다. 불로소득과 횡령이다. ⑻ ‘간음’은 간통죄다. 2015년 헌재가 위헌(성적 자기결정권, 사생활 보호, 자유침해) 판결로 62년 만에 폐지되게 되었다. 간통죄는 폐지되었으나 ‘집을 두 채 가진 자 이성을 잃고 두 여자를 가진 자 영혼을 잃는다’ 프랑스격언처럼 간음은 분명한 죄악이다. ⑼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강포는 폭력과 폭행, 압제와 탄압이다. ‘뒤대다’ 끊임없이 계속되다. 흘러넘치다. 피바다처럼 선혈이 낭자하다. 위의 아홉 가지 죄악은 북이스라엘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떠난 모든 인생들의 실상이다.

 

③ (3절)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무릇 거기 거하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 아담이 범죄로 인해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저주가 온 것처럼 북이스라엘의 죄악으로 땅과 땅위에 만물들이 황폐해질 것을 경고하신다. ‘땅이 슬피 울고’ (창4:10~12)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거기거하는 자’ 승자독식과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가장 큰 고통을 당하는 것은 사회적인 약자들이다. ‘들짐승, 새,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오늘날 아프리카돼지열병(음식물쓰레기사료), 광우병, 조류독감(공장식 축산업), 일본산 가리비(핵발전소 해양오염) 인간의 탐욕으로 만물이 고통을 받는다. 죄의 확장성을 고발한다.

 

 

2. 백성만도 못한 제사장

 

➀ (4절~5절) “그러나 아무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 같이 되었음이니라 너는 낮에 거치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거치리라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

▶ ‘다투지도, 다투는 자’ 싸우는 게 아니라 경쟁하다는 뜻이다. 죄악을 저지르는데 백성들이나 제사장들이 차이가 없다. 막상막하, 오십보백보, 도긴 개긴,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낮에 거치고 밤에 거치리라’ 제사장들은 대 놓고 죄를 짓고 선지자들은 암암리에 죄를 저지른다. ‘어미’는 선조, 우두머리를 치시겠다. 본보기가 되어야 할 책무를 망각한 교회 지도자들에게 더 큰 책임을 물으신다. (롬3:11~12)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

 

② (6절~7절)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라 저희는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 하니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 지식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을 가리킨다. (사1: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 우리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준행함으로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거두게 된다. 북이스라엘은 이와 정반대의 길로 걸어서 마침내 앗수르의 칼에 삼키 우는 비참한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롬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저희는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 하니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오늘날 한국교회에 주시는 말씀이다. 급성장과 대부흥이 도리어 독이 되었다. 부패와 타락으로 교회가 급속하게 무너지고 있으며 다음세대를 이끌어갈 젊은 목회자들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개인의 삶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을 잃어버리면 번영과 성공이 복이 아니라 독이 된다.

 

③ (8절~10절) “저희가 내 백성의 속죄 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저희의 죄악에 두는 도다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일반이라 내가 그 소위대로 갚으리라 저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행음하여도 수효가 더하지 못하니 이는 여호와 좇기를 그쳤음이니라”

▶ 권리와 특권은 누리면서 의무와 책임은 감당치 않는, 한마디로 밥값을 못하는 제사장들이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특권이 없다. 메시지 성경은 ‘누가 제사장이고 누가 일반 백성인지 구분할 수 없다. 나는 그들 모두가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여 그들이 살아온 잘못된 삶의 결과를 맛보게 할 것이다’ 죄악이 가로막히면 수고해도 열매가 없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 말씀을 들어도 은혜가 되지 않고 전도해도 부흥되지 않는 이유는 죄악 때문이다. 지금은 체육관에서 대규모 행사를 벌이며 전도할 때가 아니라 저마다의 삶의 자리에서 진정으로 회개할 때다.

 

 

3. 타락한 제사, 변질된 예배

 

➀ (11절)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 성(性, Sex) 음행 VS 금욕주의, ‘아우성’(아름다운 우리들의 性)은 본래 필요하고 좋은 것이지만 지나치면 해가 된다. (난로, 산불) 포도주는 기쁨과 즐거움을 상징하는 좋은 것인데 지나치면 해가 된다. 운동(레저와 스포츠, 다이어트)은 좋은 것이지만 마음을 빼앗기면 중독이 된다. 지나치면 아니한 것만 못하다. 필요와 욕심의 차이를 구별해야 한다. 욕심은 필요이상의 것을 구하는 것이다.

 

② (12절) “내 백성이 나무를 향하여 묻고 그 막대기는 저희에게 고하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그 하나님의 수하를 음란하게 떠났음이라”

▶ 목석을 섬기는 우상숭배를 고발한다. 삶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의지하는 것이 음행이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의뢰한다. 의뢰와 신뢰가 믿음이다. (사44:15) “무릇 이 나무는 사람이 화목을 삼는 것이어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더웁게도 하고 그것으로 불을 피워서 떡을 굽기도 하고 그것으로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기도 하는 구나”

 

③ (13절~14절) “저희가 산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아름다움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을 행하는도다”

▶ 잘못된 예배의 실상을 고발한다. ‘제사’는 예배, ‘분향’은 기도다. 북이스라엘의 죄악은 예배를 안 드린 게 아니라 잘못 드린 것이다. ‘성전에서’ 아니라 ‘산꼭대기에서’ 그리심산 산당이다. ‘나무 아래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아름다움이라’ 편의주의와 자기만족이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기뻐하신다. 제사(예배)는 뜻대로, 말씀대로, 자기부인과 희생으로 드려야 한다. 상황 따라 형편 따라 멋대로 자기만족과 자기과시가 아니다. 북이스라엘의 죄악은 예배를 안 드린 게 아니라 잘못 드린 것이다. 북이스라엘은 하나님 안 믿는 게 아니라 ‘우상을 하나님으로’ 잘못 믿는 것이다. 이것을 여성들(딸과 며느리)의 간음, 행음 곧 우상숭배로 규정한다.

▶ (14절) 남성들은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렸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고유의 신앙이 이방신앙과 혼합으로 변질된 것을 가리킨다. 이방신을 섬기는 제사에는 신전창기들이 있었다. 왜 일까? 본래적인 능력이 없으니 다른 보상을 주어 대체한다. 제사보다 젯밥으로 관심을 끄는 행위다. 오늘날 선교의 다양화라는 명목으로 교회카페나 어린이도서관, 문화강좌나 편의시설, 복지시설에 주력하는데 주객이 전도되어 본질을 망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멀티-테스킹(multi-tasking)의 가장 큰 문제는 비효율성이다. (행 6:2~4)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 기도하는 곳,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곳이다.

 

 

4.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는 교회

 

➀ (15절) “이스라엘아 너는 음행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치 못하게 할 것이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지어다”

▶ 하나님은 남유다(다윗, 예루살렘)는 북이스라엘의 전철을 밟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남유다에게 북이스라엘의 최후를 보고 그 뒤를 따르지 말 것을 친히 경고하신다.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길갈은 이스라엘의 출발점, 사울왕국의 시작, 엘리야의 선지자학교가 있던 곳이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다. 길갈과 벧아웬은 한때 이스라엘의 성지였지만 결국 산당을 세우고 금송아지를 세운 우상숭배의 본거지로 전락했다. 본래적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예루살렘성전도 무너뜨리신다.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찌어다’ 하나님 앞에서 과거의 고백이 아니라 ‘오늘 나의 고백’이 중요하다. 시작은 화려했으나 끝이 부끄러운 용두사미의 신앙을 경계하신다.

 

② (16절~17절)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

▶ 북이스라엘의 멸망한 이유는 완강(완악, 고집)함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1:2~3)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니라”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을 가리킨다. “버려두라” 징계보다 더 무서운 형벌은 내버려두는 것이다. (롬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두사’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빨리 돌이키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이 열려 있지만 모든 사람을 구원할 순 없다.

 

③ (18절~19절) “바람이 그 날개로 그를 쌌나니 그들이 그 제물로 말미암아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 ‘바람’은 칼바람 앗수르에 의한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가리킨다. ‘그 제물로 말미암아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제물은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이다.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제물을 안 드린 게 아니다. 예배 안 드린 게 아니라 잘못 드렸다. 하나님을 안 믿은 게 아니라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섬겼기 때문이다. (삼상15:22~23)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기뻐하신다.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 행음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형식적인 관계는 유지했지만 중심은 멋대로 방종한 것이다.

▶ (출20:23~25)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 신상이나 금으로 신상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고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인위적이고 세속적인 방식의 신앙생활을 경계한다. 체육관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집회, 화려한 건물, 연예인초청집회, 선물과 행운권추첨 따위의 세속적인 방식을 경계해야 한다. 작고 소박하더라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참된 예배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려야 한다.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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