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하나님의 뜻만을 따라 사는 길

기사승인 2019.10.22  14:23:29

공유
default_news_ad1
article_right_top

<이 글은 지난주일(10월 20일) 필자가 전에 섬겼던 장애인 공동체 교회인 우리집교회에서 한 설교의 원고입니다.>

 

 

하나님의 뜻만을 따라 사는 길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롬14:8)

 

안녕하세요?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사실 좀 오래전에 박성훈 목사님(우리집교회 담임목사)께 언제 공동체에 가게 되면 그때 설교를 하게 해 주시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 뒤에 바로 후회를 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가야 할 길도 바르게 가지 못하고 만취한 사람처럼 갈지자걸음으로 걸으며 넘어지는 일이 다반사인 주제에 설교를 한다는 것이 언어도단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러나 이 나이에 한 번 한 약속을 번복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해서 이렇게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어떤 목사님께서 한기총의 전광훈 목사 같은 사람 때문에 목사인 자신이 창피하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말에 충분히 이해가 가면서도, 그런 목사들 때문이 아니라, 전광훈 목사 같은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될 자신이, 목사 자격이 없는 저 자신이 목사가 되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많습니다. 목사는 누가 뭐래도 신앙의 지도자인데, 지도자는커녕 자신의 신앙 하나 바르게 갖는 시늉조차도 내지 못하고 있으니 목사 된 것이 부끄러운 것이지요. 그러면서도 그런 것을 생각지도 못한 채 이제껏 살아 왔으니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늦었지만 이제이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자신이 목사라는 것을 아예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되도록 임종석이라는 이름과 목사라는 말을 같이 쓰지 않으려 하고도 있습니다. 그러는 것보다 목사다운 목사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신앙의 자세가 아니냐고 할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닙니다. 그보다는 제 자신의 신앙부터 바로 세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집 공동체 홈페이지에 올린 저의 칼럼에는 저를 원로목사로 소개하고 있는데, 박성훈 목사님께 시정해 주실 것을 말씀드렸으나 아직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정식으로 말씀드립니다. 저 같은 사람이 원로목사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냥 제 이름으로만 소개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떻든 제가 박 목사님께 설교할 수 있게 해 주시라고 말씀드린 것은 우리집공동체를, 우리집교회를 섬기고 계시는 여러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여러분들이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일을 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마25:40)이요,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45)이라 말씀하시는데,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 성경대로 말하다 보니 표현이 이상해저 죄송합니다만, 여러분들께서 돌보고 계시는 이 우리집공동체의 가족보다 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어떻든 여러분은 우리의 주인 예수님을 돌봐 드리고 있는 것이 되는데, 그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그토록 귀하고 귀한 일을 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줄로 압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방심은 금물입니다. 어떠한 일이 됐건 하는 그 일 자체보다 어떠한 마음으로 하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잠자리에 누워 있을 터이나, 한 사람은 데려가고, 다른 한 사람은 버려 둘 것’(눅17:34)이라 하시고, 또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을 터이나, 한 사람은 데려가고, 다른 한 사람을 버려 둘 것’(35)이라 말씀하십니다. 두 사람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고 다른 한 사람은 버려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어떠한 마음으로, 어떠한 영적 마음의 상태로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나는 좋은 일, 복된 일을 하고 있으니 내가 너보다는 낫다고 하는 마음이 은연중에라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곧 우월감이고 우월감은 교만과 함께 우리가 가져서는 안 되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열등감을 가져선 안 되듯이 우월감 또한 금물입니다.

저는 소심한 사람이라서 노파심에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진짜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역시 여러분은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돌봐 드리는 것 같은 축복받은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일하고 계신다는 말도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산다는 말이지요.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고 그런 것은 아예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저 적당히 믿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신앙생활이라고 해 온 것이지요. 그렇다고 잘 믿으려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잘 믿게 해 주시라고 기도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신앙생활이라고 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70대 중반을 지나면서야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당신의 자녀인 우리에게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은 하라고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에도 전혀 몰랐다면 거짓말이 되는데, 체험적으로는 몰랐다면 사실이 됩니다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브라함에게 그러셨듯이 자식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시지 않고,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셨듯이 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나를 따르라고도 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백 살에 얻은 목숨보다도, 무엇보다도 귀한 외아들 이삭을 죽여 번제물로 드린다 해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바칠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삭 대신 수양을 번제물로 준비해 두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땅에 계시지도 안으신데 어떻게 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육체를 가진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으니 영적으로 따르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 주고 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노숙자가 되어 비참한 삶을 사는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예수님께서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살아 계실 때였다면, 그분을 따라다니면 사도의 반열에까지는 들지 못한다 해도 훌륭한 제자가 되었을 것임이 분명할뿐더러, 배가 고풀 때는 있다 해도 어떻게든 먹고 살 순 있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식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지 않으실 뿐더러 그와는 반대로 부모형제 처자식을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되 진정으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식들을 입시지옥으로 몰아넣는 것 같은 욕심을 사랑으로 착각하지 말고 진정으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의 부모형제 처자식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마19:19) 하시는가 하면 심지어는 “너희 원수를 사랑”(마5:44)하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요. 좀 전에 저는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은 하라 하시지 않는다 했는데, 그리되면 제 말에 모순이 생기는 것이 되는데요, 그러나 아닙니다.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려 기도하며 노력하고, 원수조차도 사랑하려 노력하라는 말로 이해하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만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것으로 인정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19:24)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한다면 부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 되는데, 그러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가난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그렇게 말씀하신 것일 뿐입니다. 소위 과장법을 써서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도 여러분은 축복받은 분들입니다. 혹 여러분들 중에 큰 부자가 계시다면 죄송합니다만, 부자가 아니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부자들보다 더 쉬운 게 사실이니 말입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경우는 있어도,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사랑에는 물질이 수반되기 마련입니다. 물질적으로 인색한 사랑은 없다는 말이지요.

현직시절 제가 소속되어 있던 충남대 인문대학 기독교수회에서 김용복 교수님(우리집교회 협동목사)을 모셔다 말씀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저는 김 교수님의 말씀에 크게 공감한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월수입 천만 원의 십일조 백만 원보다 월수입 백만 원의 십일조 십만 원이 더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천만 원의 수입이 있는 사람은 십일조로 백만 원을 드리고도 9백만 원을 쓸 수 있지만, 백만 원 수입의 사람은 십일조 같은 것을 드리지 않아도 9백만 원의 1/9인 백만 원밖에 쓸 수 없다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물질이 없어 우리에게 헌금을 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힘이 모자라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도 하시지 않습니다. 온 우주가 당신 것이며, 전지전능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헌금을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라 하신 것은 당신의 부족을 채우시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축복해 주시기 위해서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물질을 교회에 내는 헌금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아닙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일만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쉬운데, 그 또한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곧 ‘사회적 약자’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되고, 그들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정말로 큰 축복을 받은 분들입니다.

방금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사랑으로 나누는 데에 물질의 많고 적음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나눔을 위해 좀 더 절약하여 좀 더 검소한 생활을 하면 됩니다. 먹고 싶은 것 좀 덜 먹고,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사지 않으면 됩니다. 정말 물질이 없으면 나누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으로 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충분히 나눈다고 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 이고,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 정도라면, 각오하고 결단만 내린다면 여러분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까.

또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것처럼 자식을 죽여 번제몰로 바치라고는 하시지 않습니다. 모세나 여호수아처럼 능력 있게 살라고도 하시지 않습니다. 다윗이나 솔로몬처럼 힘 있거나 지혜 있는 왕이 되라고도, 이사야 같은 선지자, 삼손 같은 힘센 장사가 되라고도 하시지 않습니다. 베드로나 바울 같은 사도가 되라고도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만 그들을 통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며 그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를 깨달아 그대로 실천하려고 기도하며 노력하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라면, 각오하고 결단만 내린다면 여러분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우리는 지금 예수 믿기 가장 좋은 시대의 가장 좋은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수를 잘 믿어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 못 믿어 자신도 욕을 먹고 하나님께도 욕이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손해를 감수하며 남을 이롭게 하며 사는데, 손가락질을 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칭찬이 따르게 되고, 그 칭찬으로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저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가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됩니다.각오하고 결단만 내리면 우리는 너도 나도 모두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축복받는 사람이 됩니다.

사실 우리에게 실제로 원수 같은 사람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설혹 자신에게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사랑하게 해 주시라고 기도하며 노력만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우리는 그것만으로, 기도하며 노력하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신다면 우리라고 원수를 사랑하지 못할 것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도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도, 나도, 사랑을 위해 할 수 있는 대로 절약하여 검소한 생활은 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게만 한다면, 절약으로 검소한 생활을 하여 나눔으로 사랑의 삶을 산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천국의 부요를, 풍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로써 조물주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섭리에 순응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문제는 마음에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너도 나도 모두가 다 하나님의 뜻만을 따라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습니까. 우리 모두 다 같이 두 눈 꼭 감고, 아니 눈을 크게 뜨고 그 길로 가보시지 않겠습니까.

 

임종석 seok9448@daum.net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