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말짱 도루묵’일지라도 감사하라.

기사승인 2019.11.12  22:45:09

공유
default_news_ad1
article_right_top

11월 중순이 되니 바람이 차갑다. 무엇을 먹을까 생각하다가 떠오르는 것이 있어 생선가게로 향했다. 도루묵을 사기 위해서이다. 10마리에 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숯불에 구워먹으면 좋았겠으나 집이 아파트인지라 절반은 소금을 쳐서 오븐으로 굽고 나머지는 찌개를 끓였다. 구워 먹어도 맛있고, 찌개로 먹어도 맛이 있었다.

도루묵은 지금이 제철이다.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산란을 하기 위해 동해안 일대에서 많이 잡힌다. 특히 암컷은 살 절반, 알 절반일 정도로 몸에 알이 가득하다. 도루묵의 알은 미끌한 점액이 묻어나고 씹으면 토독토독 알이 터지는 촉감을 즐길 수 있다. 흰 살은 아주 연하고 부드러워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첫 목회지였던 강원도 양양에서 주일 오후에 성도들과 구워먹은 추억이 있어서인지 겨울바람이 부는 이 때쯤이면 생각나는 생선이다.
 
도루묵은 이름도 특이하다 보통 생선의 이름은 물고기 ‘어’(魚)자나 참치, 갈치처럼 비늘 없는 생선에 붙은 ‘치’자로 지어지기 마련인데 유독 도루묵만 이런 이름으로 지어졌을까? 그 이름에 관해 알려진 일화는 조선의 선조(1552-1608)왕 때로 올라간다.

선조 25년부터 시작된 임진왜란 당시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을 막아내는 것이 어려웠던 조선은 결사적으로 싸웠지만 연이어 패전하였고 1592년 한양까지 함락되었던 급박한 상황이 되었다, 결국 선조는 궁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황급히 피난길을 준비하다 보니 매번 부실한 수라상을 올려야 했던 신하들은 황망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이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한 어부는 손수 잡은 생선을 구워 진상하기에 이르렀다.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생선의 맛을 본 선조는 참 맛이 좋다 하여 어부를 불러 생선의 이름을 물었는데 그 이름이 ‘묵’이라 하자 선조는 맛에 비해 이름이 하찮다 하여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선조대왕의 시장기를 가시게 해 준 ‘묵’이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받게 된 것이다.

전쟁이 끝나자 궁으로 돌아간 선조의 호화로운 수라상에는 그리운 것이 하나 있었다. 은어였다. 선조는 전쟁터에 먹었던 그 맛을 느끼기 위해 은어를 진상할 것을 명하였다. 그런데 다시 받은 은어의 맛은 그 맛이 아니었다. 호화로운 입맛을 되찾자 은어가 입에 맞지 않게 된 것이다. ‘시장이 반찬’이란 말처럼 허기가 졌을 때 먹던 음식 맛과 모든 것이 풍족할 때 먹는 음식 맛은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에 실망한 선조는 은어의 이름을 ‘도로 묵이라 불러라’고 하였고,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도로묵’이 된 이 생선은 구전으로 전해오며 편한 발음으로 바뀌어 ‘도루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때부터 하던 일이 아무 소득 없는 헛된 일이나 헛수고가 되었을 때, "말짱 도루묵이네."라고 말하게 되었다.

조선 중기 인조(1595-1649) 때 대사헌과 이조판서를 지내고 당대에 한문 4대가로 일컬어지던 택당 이식(李植·1584~1647)이 남긴 택당집(澤堂集)에 도루묵을 읊은 ‘환목어(還目魚)’라는 시가 전해지는데 인용하면 이렇다.

목어라 부르는 물고기가 있었는데
해산물 가운데서 품질이 낮은 거라
번지르르 기름진 고기도 아닌데다
그 모양새도 볼만한 게 없었다네
그래도 씹어보면 그 맛이 담박하여
겨울철 술안주론 그런대로 괜찮았지

전에 임금님이 난리 피해 오시어서
이 해변에서 고초를 겪으실 때
목어가 마침 수라상에 올라와서
허기진 배를 든든하게 해드렸지
그러자 은어라 이름을 하사하고
길이 특산물로 바치게 하셨다네

난리 끝나 임금님이 서울로 돌아온 뒤
수라상에 진수성찬 서로들 뽐낼 적에
불쌍한 이 고기도 그 사이에 끼었는데
맛보시는 은총을 한 번도 못 받았네
이름이 삭탈되어 도로 목어로 떨어져서
순식간에 버린 물건 푸대접을 당했다네

잘나고 못난 것이 자기와는 상관없고
귀하고 천한 것은 때에 따라 달라지지
이름은 그저 겉치레에 불과한 것
버림을 받은 것이 그대 탓이 아니라네
넓고 넓은 저 푸른 바다 깊은 곳에
유유자적하는 것이 그대 모습 아니겠나

'환목어'는 '도루묵'을 말한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이 물고기의 이름이 '환목어'가 된 유래를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이 시는 택당 자신이 좌천되었을 때 당시의 심정을 목어에 비유해 풍자한 시이다. 시절의 변화에 따라 귀함과 천함이 뒤바뀐 이 물고기의 운명에 빗대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 또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뭔가 열심히 했지만 소득이 없었는가? 힘써서 한 일이 소용없게 되어 버렸는가? 수고했지만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돌아왔는가? 때로는 내 실수와 부족으로 공들이고 수고한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된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수고의 소득이 없게 된 경우도 있다. 그러니 너무 속상해하지는 마시라.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다시 상황이 내 편으로 돌아설 때까지 도루묵처럼 넓은 저 푸른 바다 깊은 곳에서 유유자적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더 유익하다.

11월은 감사의 계절이지 않는가? 혹 “말짱 도루묵”인 상황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해보자. 힘들고 어려워도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면 성숙한 신앙인이다. 도루묵이 그 옛날 선조왕에게도 결국 인정받지 못했고, 1960-70년대에는 너무 흔해서 어민들에게 천대받았고 안 먹던 생선이었지만 지금은 도루묵축제가 있을 정도로 별미가 된 사실을 기억하시라,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대접받는 때가 올 수 있다.

이 글을 읽은 김에 생선가게에 가서 도루묵을 사서 구워먹거나 조림을 해먹어 보시라. 비타민과 지질, 그리고 오메가3이 많다고 하니 건강에도 유익하다. 12월이 넘어가서 산란시기에 거의 다다른 도루묵의 알은 껍질이 질겨 오독오독 씹히는 도루묵 알의 식감이 확 줄어드니 서두르시라. 도루묵, 생각보다 꽤 맛이 있다.

임석한 skygrace1@hanmail.net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