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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후회

기사승인 2019.11.14  22:4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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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밀레니엄이 시작된 해에 미국 위스컨신으로 갔다. 위스컨신 감독은 한인 교회가 없다며 나를 미국인 교회로 파송했다. 미국은 다민족 사회라지만 그곳 주민은 모두 백인들이었다.
젊잖은 교인들은 이방 목사가 어려워하지 않도록 힘써 도와주었지만, 나는 그들과 소통하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실제로 참을 수 없는 두통이 오면 마을 밖 자연보호구역으로 차를 몰고 나가 싸돌아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모스크바 박준성 목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애틀랜타에 와서 다시 폐암 수술을 받았노라고. 밝은 음성을 들으니 반가웠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얼마 전 목사님은 모스크바 집 근처에 차를 세우고 돌아오다 뭇 청년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 국술원 필살기가 통하지 않았던지 아니면 대항하지 않았던지, 갈비뼈가 부러지고 고막이 터지는 중상을 입었다. 그런 일이 있고도 목사님은 우리들과 명랑하게 지냈다. 그런데 이번엔 폐암 재발이다.

얼마 후 목사님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애틀랜타 병원 의사 왈,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하는군. 나는 러시아로 돌아가요.” 러시아 감독은 목사님을 상트페테르부르크 교회로 파송했다. 거기는 내가 개척한 곳이었다. 떠난 선교지가 걱정되던 터에 나는 무척 반가웠다.
나도 휴가를 내어 곧 그곳을 방문하리라 마음 먹었다. 그러나 얼마 후 걸려온 전화는, 목사님이 러시아에 도착하고 한 달 후 소천했다는 소식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던가? 전화를 받았을 때 지체 없이 비행기표를 사고 애틀랜타로 날라가 만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차일피일 때를 기다리던 나는 모든 것을 날려버렸다.
한 번뿐인 인생. 전도서는 말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헛되다. 그냥 헛된 것이 아니라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 그것을 알면 지혜에 이르는 길을 알게 된다.
‘청년의 때 하나님을 알라’고 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그 때가 ‘지금’임을 아는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늦다. 늦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없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지금’이 맞물려 있다. 그런데, 하나님을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만나는 사람의 얼굴에서 찾을 수 있다. 감리교인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거룩해지는, 성화하는 그리스도인의 얼굴에서 찾을 수 있다.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됐다는 얘기다. 이 세상에서 구별된 것은 두 가지다. 삶과 죽음,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이다. 거룩해진다는 것은 죽음에서 삶으로, 인간에서 하나님으로 진행되는 과정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둘은 명확히 구별되어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성서는 성화를 말하고, 웨슬리는 성화가 일어날 뿐 아니라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 성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나사렛 사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을 이유가 없다.
성화하는 이웃을 만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인간성이 좋은 사람과 만나는 것은 감리교인의 목표가 아니다. 성화하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런 사람은 지체 없이 만나야 한다. 그 만남은 ‘지금’ 내게 온 최고의 축복이기 때문이다. 외지에 나가 생활하는 선교사에게는 더욱 그렇다.

전화로 박준성 목사님의 음성을 듣고도 ‘지금’을 놓치고 나서 깊은 후회를 했다. 그 후 나는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누군가를 만나면 깊은 감사기도를 올린다. “만나고픈 사람을 지금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박준성 목사님을 만났다. “미국 가면 내 영어 성경책을 써요. 여보, 성경책 가져오시오.” 사모가 말했다. “그것은 사용하고 있는 성경책 아니에요?” 나는 그 성경으로 미국인들과 지냈다. 얼마 전 목사님의 아들 조나단 목사를 만나 약속했다. “아버지 성경을 내가 갖고 있으니, 은퇴할 때까지 쓰고 주겠소.”
사모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교회에 있다가, 부르심을 받들고 고려인의 첫 강제이주지인 카작스탄 우슈토베(Ushtobe)로 갔다. 이미 은퇴했건만 여전히 선교사역을 감당한다. 곱디 고운 자태가 시골 할머니로 확 바뀌었는데도, 웃음은 이 세상 웃음이 아니다.
이 세상에 복이 많아도, 성화하는 사람을 만나는 복보다 더 큰 복이 있을까?

박효원 hyo1956@yahoo.com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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